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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혜자(惠子)가 장자(莊子)에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죽나무라 하네. 큰 줄기는 뒤틀리고 옹이가 가득해서 먹줄을 칠 수도 없고, 작은 가지들은 꼬불꼬불해서 자를 댈 수도 없을 정도라네. 때문에 길가에 서 있지만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네."

장자가 말했습니다.

"그 큰 나무가 쓸모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옮겨 심어놓고 그 주위를 유유자적 거닐거나 그 밑에서 한가로이 낮잠을 자보게. 도끼에 찍힐 일도 없고, 달리 해치는 사람도 없을 걸세. 그리하면 쓸모없다고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일이 없지 않을까?"

혜자는 위나라 재상을 지낸 사람으로 본명은 혜시(惠施)입니다. 고대 중국의 명가(名家)인 이론학파의 대가로 책 '장자'에서 장자의 호적수로 등장합니다. 장자와 줄곧 마주앉아 말씨름을 하지만 혜자가 죽자 장자는 그 무덤을 찾아가 "나는 이제 같이 이야기할 상대가 없구나"하며 슬퍼할 정도로 막역하게 지낸 사이입니다.

장자의 말대로 굽은 나무는 집을 지을 때 재목으로는 그다지 쓸모가 없지만 다른 용도로는 활용이 가능합니다.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은 물론이고 노인의 지팡이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며, 과일을 따는 도구나 물의 깊이를 재는 잣대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굽은 나무는 땔감 외에는 사용처가 없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쓰임새는 무한합니다.

어느 건축업자가 버린 돌이 다른 건축업자에 의해 머릿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세히 살피면 세상에 버려야 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견해를 '시각주의적 접근'이라고 합니다. 시각에 따라 모든 것의 용처나 쓰임새가 다르다는 것이죠.

장자는 혜자의 얘기를 반박하기 위해 다른 예도 듭니다.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큰 바가지가 있다고 가정하며, 물을 푸거나 담는데 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강이나 호수에 띄워 놓고 술을 담아놓고 마시며 즐기는데 쓴다면, 그 큰 바가지의 활용도는 조그마한 쪽박의 활용도와 비교할 수 없다고 설파합니다.

사상가와 민권운동가, 문필가로 활동하다 1989년에 세상을 뜬 함석헌 선생도 그의 저서 '바보새'에 비슷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동네 안에 늙은 나무는 왜 서 있습니까? 사람들이 그늘을 찾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일도 하지만 또 쉬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 살림도 하지만 상상의 세계도 갈구합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해묵은 밤나무나 느티나무 가지의 그늘입니다. 젊은이들이 도시의 맘몬(manmon, 셈어에서 기원한 이 말은 재물이나 부를 가리키기도 하고 재물의 신을 가리키기도 함)의 졸병으로 끌려가는 이때에 마을의 느티나무는 찍혀 장작으로밖에 쓸 수 없습니다. 마을의 느티나무가 찍히는 날 앉아서 쉴 그늘을 잃은 마을의 늙은 혼은 두견새가 되어 뒷동산으로 날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늙은 나무가 찍히고 거기 깃들었던 혼은 산으로 도망갈 때, 마을에 남는 것은 주고받기와 시비와 깔고앉음과 깔리움밖에 있을 것이 없습니다.'

장자는 혜자가 사물을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실용성이나 현금의 가치로 판단하는데 반기를 들며 자기의 말이 일견 쓸모없이 보이더라도 계속 귀 기울이라고 끈질기게 설득합니다. '장자'에 등장하는 매미나 새끼 비둘기, 또는 메추라기처럼, 하늘높이 날아가는 전설 속의 새인 붕(鵬)을 비웃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시야를 넓혀 큰 세계를 보고, 사물의 더 크고 참된 쓸모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마을의 늙은 느티나무가 찍히는 날 늙은이들의 혼도 함께 날아간다는 함석헌 선생의 생각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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