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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지난 1월, 오랜만에 버스를 탔습니다. 빈자리가 있어 기분 좋게 앉았습니다. 잠시 후, 스무 살 즈음의 여대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버스에 오르더군요. 그녀는 내가 앉은 좌석의 손잡이를 잡고 섰습니다. 뽀얀 피부에 단아한 옷차림, 한 눈에 봐도 귀하게 자란 티가 역력한 예쁘장한 여학생이었습니다. 잠시 후, 버스가 횡단보도의 파란 신호 때문에 급하게 멈췄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남루한 옷차림의 중년이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물건이 잔뜩 실린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있더군요. 뒷좌석에서 누군가가 혀를 찼습니다.

"불쌍하기도 하지.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추운데 고생이 너무 많네."

모든 승객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앞에 서 있던 예쁜 여학생이 바삐 창문을 열더니 밖을 향해 소릴 치더군요.

"아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창밖을 향했습니다. 손수레를 끌던 중년이 걸음을 멈추더니 버스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오, 예쁜 우리 딸, 이제 집에 가니?"

"옷을 왜 그렇게 얇게 입고 나오셨어요. 감기 들면 어쩌려고요?"

딸의 걱정스런 목소리를 들은 아빠는 딸을 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딸 또한 아빠를 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둘의 웃음에서 빛이 나는 듯했습니다. 남루한 차림의 아빠는 많은 사람 앞에서도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딸이 너무도 고맙고 흐뭇했겠지요. 이 아이,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참 곱구나, 싶었습니다.>

지금은 '행복한가(家)'로 이름을 바꾼 '사랑밭새벽편지'가 오래 전에 배달해 준 가슴 뭉클하고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어린 딸로부터 충격을 받은 어느 프리랜서 작가의 고백을 재구성해 보겠습니다.

<문득 둘째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엄마, 아빠와 이혼한 거 맞아?"

추석 다음날, 둘째가 눈물 섞인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이혼했어?"가 아니라 "이혼한 거 맞아?"라고 묻는 것으로 보아 추석 때 제 사촌으로부터 무슨 소릴 들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아빠가 사업차 부산에 장기 출장 가 있다는 하얀 거짓말이 5년 만에 들통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혼할 때 첫째는 중2라 그나마 이해를 구하기가 쉬웠지만, 겨우 6살밖에 안 된 딸에겐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비밀로 했던 것입니다.

언젠가 아이가 사실을 눈치 채고 묻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에 그 상황을 가정하고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대본 연습을 했는데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천장을 쳐다보며 눈을 몇 번 깜빡인 뒤, 그동안 엄마가 거짓말을 해서 정말로 미안하다는 사과부터 했습니다. 그리고는 너무 어려 충격을 받을까 봐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고, 그래서 좀 더 큰 뒤 남은 가족 셋이 아빠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먼저 보여준 뒤 나중에 말하려고 했다고, 거짓말을 한 이유를 솔직히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둘째가 눈물을 훔치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건 부탁인데 오빠나 다른 친척들한테는 지금처럼 내가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해줘."

의아해서 그 이유를 물었는데, 아이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눈에 힘을 주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위로받고 싶지 않아.">

그날 작가는, 존엄성이 뭔지도 모르면서 본능적으로 자기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어린 딸에게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은 물론 미안함과 함께 동질감까지 느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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