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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올여름 무더위는 에어컨 판매량을 최고치로 올려 줄만큼 찜통이었습니다. 한낮에는 거리가 한산할 정도로 사람들은 외출을 피했지요. 밤엔 열대야로 잠을 설쳐 무기력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 더위에도 텃밭의 옥수수는 익어 수염이 말라갑니다. 사람들이 바다로 계곡으로 또는 집에서 에어컨을 켜놓고 피서를 하는 동안 자연은 말없이 자기 임무를 수행하여 수확물을 내놓습니다. 옥수수를 땄습니다. 늦저녁을 먹었으니 낮 열기가 식을 때쯤 옥수수를 쪘습니다. 노동력이 없어 여남은 개 심은 것이라 채반에 펴놓고 보니 빈약합니다. 그래도 구수한 냄새가 여름 별미로 구미를 당깁니다.

텔레비전 연속극이 끝나고 밤은 깊어 가는데, 아파트 창마다 불이 환합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밤을 보내느라 잠이 쉽게 들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옥수수 세 자루를 비닐봉지에 담아 마당으로 내려갔습니다. 따끈따끈한 옥수수를 들고 아파트 경비실로 갔지요. 좁은 공간에서 낡은 선풍기 한 대로 경비를 서는 경비원이 어느 날 혼자 양은 도시락을 먹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있거든요. 연세도 있는 분이 도시락을 혼자 먹는 모습이 마음에 꽂혔나 봅니다.

경비실엔 희미한 불빛만 새어나오고 순찰 중이라는 푯말을 붙여놓고 비어있습니다. 창문을 열고 봉지를 내려놓고 얼른 돌아섰습니다.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깨소금 같은 기쁨이 차오릅니다. 공연히 혼자서 빙긋빙긋 웃고 화단에 핀 꽃들에게도 말을 겁니다. 마당을 두 어 바퀴 도는 동안 가만가만 성가를 불렀습니다. 누가 보면 치매 걸린 노인 아니냐고 머리를 갸웃댈지도 모르는데, 마냥 좋기만 합니다.

가끔 우리 집 문고리에 비닐봉지를 걸어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용물은 애호박 한 개가 들어있거나 노각 반 토막이 들어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며 고운 미소가 저절로 열려 하루가 은근하고 행복했습니다.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고 가만히 걸어두고 간 마음이 오래가는 향기가 됩니다. 굳이 누구냐고 캐묻지 않는 것은 저 혼자만의 비밀입니다. 우리 이웃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기에 누리는 기쁨도 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확실한 것을 좋아해서 이럴 경우 메모지를 붙여놓거나 모바일 문자로 알려 주었지요. 변변찮지만 맛있게 드시라고 생색을 내면서요. 그런데 여름밤 아무도 모르게 두고 온 옥수수 세 자루의 기쁨은 참 은밀하고 깊습니다. 이래서 좋은 일 하는 분들이 익명을 사용하는 모양입니다.'

위의 글은 천주교 청주교구에서 발행하는 청주주보에 실린 수필가 반숙자 선생님의 글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따스한 마음씨가 잔잔하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눈을 들어 주변을 돌아보면 세상은 온통 삭막하고 잔인합니다. '묻지마' 살인이며 폭행이 난무하고, 시기 질투로 인한 사회문제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집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한 지진이 발생하는가 하면 북한에서는 심심하면(·) 미사일을 발사합니다. 이처럼 주변이 온통 어수선한데 그래도 아직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반숙자 선생님 같은 분이 사회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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