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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다산 정약용이 지은 '하피첩(霞帔帖)'은 '노을빛 치마로 만든 소책자' 입니다. 지난 2005년, 수원의 어느 건물 주인이 파지를 마당에 내놓았는데, 폐품을 모으는 할머니가 지나가다 그 파지를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그때 할머니의 수레에 있던 서첩(書帖)에 눈이 갔고, 그는 책과 파지를 맞바꾸었습니다. 그리고는 혹시나 싶어 KBS의 '진품명품'에 내놓았습니다. 감정위원은 '책을 보는 순간 덜덜 떨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감정가 1억 원을 매겼고, 주인 없이 떠돌던 그 보물은 후일 경매에서 7억5천만 원에 국립민속박물관에 팔렸습니다.

 하피(霞帔)는 옛날 예복(禮服)의 하나입니다. '붉은 노을빛 치마'를 말합니다. 다산은 천주교를 믿은 죄로 전남 강진으로 귀양을 갔었습니다. 그러자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에 남아 있었던 아내 홍 씨는 남편의 귀양살이가 10년째 되던 해에 남편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담아 시집올 때 입었던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다산에게 보냈습니다. 부인의 그리움을 전달받은 다산은 치마에 두 아들에게 주는 당부의 말을 써 책자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피첩인 것입니다.

 다시 다산은 치마의 한 조각을 남겨 매화와 새를 그려 족자로 만들어 시집가는 딸에게 주었습니다. 바로 매조도(梅鳥圖)입니다. 매조도에는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한 평생을 써도 닳지 않을 것'이라는 당부의 말을 담았는데, 남편을 못내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치마폭에 담긴 아버지의 애정 가득한 그림과 글씨, 세상에 이보다 더 값진 보물이 있을까요?

 다산 부부의 애절했던 사랑을 담고 세상을 떠돌던 하피첩은 지금도 국립민속박물관에 고이 보존돼 있습니다. 정약용의 위대함과 함께 아내의 노을빛 치마로부터 비롯된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가슴을 잔잔하게 적십니다.

 다음은 다산의 생존 시절로부터 180여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현세의 어느 부부 이야기입니다.

 "어디예요?"

 "응, 지금 동사무소 근처야."

 올해 초 갑작스럽게 회사를 퇴직한 남편은 한동안 전전긍긍하더니 봄이 시작될 무렵 지인의 회사에 나가게 됐습니다. 아직 아이 둘이 대학생이고 모아둔 돈도 없어 당장의 생활마저 걱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계절 내내 한 켤레의 구두로, 그것도 낡아서 비라도 오는 날이면 양말이 젖어 수선집에서 창을 갈아 신는 남편은, 남방셔츠도 목 부분이 닳아 해지면 세탁소에서 바꿔 달고, 소매가 수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낡으면 접어 입고, 청바지는 짜깁기해서 입는, 절약이 몸에 밴 사람입니다.

 새 직장은 집에서 제법 먼 편입니다. 퇴근 후 동료들과 술이라도 한잔하는 날이면 시내버스가 끊기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남편은 40분 남짓의 거리를 걷기로 했습니다. 처음으로 그 먼 길을 걸어서 귀가한 날 남편은 안쓰러워하는 아내에게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택시비가 할증이 붙다 보니 너무 많이 나와. 운동도 할 겸 걷기로 했어. 좋던데?"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 땀에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코를 골며 자는 모습을 보며 아내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아내는 남편을 마중 나가기로 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고 다독여주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내일의 희망도 함께 가지게 되고요.

 소중한 가족의 이야기를 공모한 어느 이벤트에 입상한 정순옥이라는 분의 고백입니다. 가난하지만 정겹게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전해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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