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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6.01 17:40:15
  • 최종수정2020.06.01 17:40:15

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작년 2월이었습니다. 광주MBC와 제주MBC에서 아나운서로 근무했고, 퇴사 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경인방송에서 '임희정의 고백라디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임희정 씨가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과거 그녀가 한 블로그에 올린 글이 '역주행'을 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훌륭하게 키워준 부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털어놓은 글인데, 읽다보면 시나브로 감동에 젖습니다. 그녀의 글을 주요 부분만 간추려 봅니다.

<1948년생 아빠는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도 채 다니지 못했다. 몸으로 하는 노동을 일찍이 어렸을 때부터 해왔다. 밭일, 동네 소일거리…. 그러다 몸이 커지고 어른이 되자 가장 많은 일당을 쳐주었던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시작했다. 그 일은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1952년생 엄마는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8남매의 장녀였고 아래로 동생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10대의 나이에 자식 대신 동생들을 돌보는 엄마 역할을 해야 했고, 집안일과 가족들 뒷바라지를 해왔다. 삼시 세끼 밥을 짓고 청소와 빨래를 하는 가사 노동. 그 일도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1984년생 딸인 나는 대학원 공부까지 했다. 10년 차 아나운서이고 방송도 하고 글도 쓰고 강의도 하고 아나운서 준비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사람들은 아나운서라는 내 직업 하나만을 보고 당연히 번듯한 집안에서 잘 자란 사람, 부모의 지원도 잘 받아 성장한 아이로 여겼다. 그 당연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물어오곤 했다. 내가 건설 쪽 일을 하신다고 운을 떼자마자 아버지는 건설사 대표나 중책을 맡은 사람이 됐고, 어느 대학을 나오셨느냐 물어오면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아버지는 대졸자가 됐다.

부모의 시절과 나의 시대는 아주 달라서 부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난과 무지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원망도 창피함도 되어서는 안 된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대단한 일도 아니고, 막노동이 변변치 않은 직업도 절대 아님을 나도 너무나 늦게 깨달았다.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 아래서 잘 자란 아나운서 딸이다. 한글조차 익숙하지 않은 부모 아래서 말을 업으로 삼는 아나운서가 됐다. 내가 개천에서 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정직하게 노동하고 열심히 삶을 일궈낸 부모를 보고 배우며, 알게 모르게 체득된 삶에 대한 경이(驚異)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움직인 가장 큰 원동력은 부모였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신들이 부족한 만큼 사랑을 채워 나를 돌봐주었고, 무엇이든 스스로 하는 나를 대견해했고,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해 주었다. 물질적 지원보다 심적 사랑과 응원이 한 아이의 인생에 가장 큰 뒷받침이 된다. 나는 그것을 잘 알았으므로, 내 앞에 놓인 삶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여유가 없던 부모의 인생에 나는 목숨을 걸고 생을 바쳐 키워낸 딸이었다.

길거리를 걷다 공사 현장에서 노동을 하는 분들을 보면 나는 속으로 생각이 든다. 저분들에게도 번듯한 아들이, 잘 자란 딸들이 있겠지· 그 자식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처럼 말하지 못했을까· 내가 했던 것처럼 부모를 감추었을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내가 증명하고 싶다. 평생 막노동과 가사노동을 하며 키운 딸이 아나운서가 되어 그들의 삶을 말과 글로 옮긴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생도 인정받고 위로받길 바란다. 무엇보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 모두의 부모가 존중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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