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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서해안의 천리포 수목원을 들렀을 때의 일입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출신으로 1945년 미군 정보장교로 입국한 뒤 한국에 정착해 귀화한 '민병갈'이라는 사람이, 1962년 사재를 털어 매입한 천리포 해변의 2㏊ 부지를 기반으로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목을 식재하여 식물원을 조성하기 시작한 곳인데, 서해안에서는 보기 드물게 짙푸른 바닷물을 끼고 펼쳐져 있어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곳이라는 아내의 설명을 들으며, 입구의 화장실을 들르기 위해 걸음을 옮길 때였습니다. 20대의 젊은 여자가 주춤거리며 아내에게 다가왔습니다. 곁의 필자를 보며 머뭇거리기에 서둘러 몇 발짝 떨어졌지요. 여자가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생리대 있으세요?"

순간, 일흔의 나이에 가까운 아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가다듬더니 나지막하게 말하더군요.

"없는데… 어쩌죠?"

여자는 다시금 죄송하다며 다른 사람을 향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두 시간에 걸쳐 수목원을 거닐며 귀화인에 의해 오십여 년에 걸쳐 오밀조밀하게 조성된 각종 수목을 둘러보는 동안 아내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경주의 대릉원 매표소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몇 번 다녀온 곳이지만 산책하기에 좋은 장소이기에 다시금 들렀던 것인데, 65세 이상은 무료이기에 아내와 함께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매표소를 지나쳤는데 서너 걸음을 옮겼을 때 검표원이 "잠깐만"하고 우리를 불러세웠습니다. 뜬금없기에 돌아서며 물었습니다.

"왜 그러시죠?"

검표원은 잠시 망설이더니 다가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여자분 신분증 좀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떨떠름한 상황인데 아내는 밝게 웃으며 신분증을 내밀었습니다. 검표원은 아내의 신분증을 자세히 살피더니 이내 자신의 착각을 사과하며 그것을 아내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천마총을 비롯한 대릉원을 한 시간 이상 거니는 동안 아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음은 물론입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무료 독감 예방 접종을 위해 단골 이비인후과를 들렀을 때였습니다. 둘이 차례로 주사실로 들어섰는데 필자에게 주사를 놓은 간호사가 아내에게 다가가더니 말했습니다.

"친정아버님이세요?"

참나, 싶었습니다. 분명 무료 독감 접종을 위해 함께 왔기에 나이가 드러난 셈인데 엉뚱한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아내가 주변으로부터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대접받는 이유는 생머리를 유지하는 데다 피부가 매끈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아내는 외모만 그런 게 아니라 내면도 젊습니다. 아직도 빼빼로데이가 되면 감추었던 막대 과자를 슬그머니 내밀며 함께 즐기려고 합니다. 외출할 때면 화장대 앞에서 한참 동안 자신의 몸을 가다듬습니다. 허튼 모습으로 남 앞에 나서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앞으로도 아내가 소녀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심성을 유지한 채 달라붙는 질병들에 발길질을 하며 밝고 건강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계속 주변으로부터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대접받으면 금상첨화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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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충북 청주 출신 윤희근 23대 경찰청장은 신비스러운 인물이다. 윤석열 정부 이전만 해도 여러 간부 경찰 중 한명에 불과했다. 서울경찰청 정보1과장(총경)실에서 만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게 불과 5년 전 일이다. 이제는 내년 4월 총선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취임 1년을 맞았다. 더욱이 21일이 경찰의 날이다. 소회는. "경찰청장으로서 두 번째 맞는 경찰의 날인데, 작년과 달리 지난 1년간 많은 일이 있었기에 감회가 남다르다. 그간 국민체감약속 1·2호로 '악성사기', '마약범죄' 척결을 천명하여 국민을 근심케 했던 범죄를 신속히 해결하고,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건설현장 불법행위' 같은 관행적 불법행위에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응으로 법질서를 확립하는 등 각 분야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만들어졌다. 내부적으로는 △공안직 수준 기본급 △복수직급제 등 숙원과제를 해결하며 여느 선진국과 같이 경찰 업무의 특수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전환점을 만들었다는데 보람을 느낀다. 다만 이태원 참사, 흉기난동 등 국민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안타까운 사건들도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맞게 된 일흔여덟 번째 경찰의 날인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