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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일 포스티노'

시인 정치가, 네루다가 남긴 메타포 '일 포스티노'
함박눈이 수북이 쌓인 겨울날

  • 웹출고시간2022.12.19 17:15:47
  • 최종수정2022.12.19 17:15:47

안소현

지역발전연구소함께 대표

핸드폰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오래전에 그린 나의 습작을 발견했다.

고흐의 처절한 노랑과 브라운 계열의 초록에 꽂혔던 2000년대 초반 나의 그림은 고흐의 메타포(metaphor, 은유)다. 고흐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마을 오베르 교회 안에서 나의 어린 두 딸이 행복한 얼굴로 날아가는 새와 구름을 바라보고 있다. 슬픈 오베르의 기억을 나의 주관으로 행복으로 재탄생시켰다.

누군가의 작품을 모방했던 나의 작품이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이러한 이합집산의 모방들이 묵직한 은유(metaphor)로 내 안에 스며들어서 나를 더 단단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은유는 모방과 현저히 다름을 이젠 알겠다.
어설픈 모방들이 내 안에 녹아서 또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초라하고 희망도 없는 청년 '마리오'가 칠레의 민중 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인 '네루다'를 만나고 그의 삶을 모방한다. 결국 진정한 시인이 되기 위해서 시의 메타포(metaphor)를 찾으라는 네루다의 조언대로 꿈을 찾아서 떠나는 여정을 그린 1994년 영화 '일 포스티노 The Postman'를 소개한다.
◇원작 소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이탈리아의 작은 섬마을 청년 마리오는 우연히 우체부 일을 하게 되고 그의 임무는 오직 고국을 떠나 망명 생활 중인 칠레의 민족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온 편지를 배달하는 일이다. 산꼭대기 외딴집에서 아내와 단둘이 지내는 네루다에게 자전거로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점점 친분을 쌓게 되고 그를 통해 메타포를 깨닫고 아름다운 시의 세계를 경험하고 동경한다. 여자들의 환심을 사고 싶은 소설 속의 주인공(17세)은 네루다로 인해 시의 무한한 은유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네루다가 메타포의 뜻을 가르쳐 주기 위해 비를 하늘이 우는 것이라 비유해서 설명하고, 바다를 관찰하면 메타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마리오는 뜻밖의 질문을 던진다.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합니까?'

'따분한 일상 혹은 평범한 삶을 시적으로 볼 수도 있지.'

시의 메타포(metaphor)를 소리의 기억으로 확장해서 마리오는 갈매기 소리, 파도 소리, 종루의 종소리, 바람 소리 등을 녹음한다. 소리를 통해서 기억을 상상하고 은유시킨다. 시를 통해 아름다운 아내 베아트리체도 만나고 자신도 몰랐던 감성과 이성을 발견한다. 네루다의 시로 베아트리체에게 구애하고 결혼에 성공한다. 네루다는 대통령 후보직에서 사퇴하나, 민중연합 통합 후보인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파리 대사로 임명된다. 그 후 네루다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칠레의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는 축제 분위기에 빠져든다. 그러나 군부에 의한 쿠데타로 좌파 정부는 몰락하고 네루다는 큰 병을 얻고 집으로 돌아온다. 결국 네루다는 산티아고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주인공 마리오 역시 의문의 납치를 암시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네루다를 통해서 한 편의 시가 삶과 자연과 세계가 만나서 새로운 삶과 사랑을 이끌어내는 문학의 진실과 감동을 소박하면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가 칠레의 쿠테타 발발로 독일로 망명해서 완성한 작품이지만 잔잔한 감동과 순수함이 묻어 있는 문체로 추앙받는 민족시인 네루다와 순박한 칠레 국민에게 바치는 헌서로도 유명하다.
◇영화 일 포스티노는 1994년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이 제작했다.

영화 내용은 다행히도 원작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와 거의 흡사하다. 주민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그의 아버지 역시 어부이다. 그러나 배만 타면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어부가 될 생각이 전혀 없는 마리오가 인생의 전환을 맞게 된 네루다와의 만남을 한 편의 서정시처럼 그려내고 있다. 두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시'이며 시인이 되기 위한 도구로 '메타포'를 이입시킨다. 메타포는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단어나 문장 같은 작은 단위에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만 감춰서 표현하는 것을 말하며 이미지로 표현되기도 한다. 다른 말이나 이미지로 대체하여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일'이라는 사전적인 의미 외에도, 상담학이나 현상학 만화, 사회학 등에도 사용된다. 메타포는 문장을 더 말랑말랑하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말한 마리오의 대사는 창작자가 어떤 의도로 썼는가에 비중을 두지 않고 대중은 그 작품을 향유 하면 된다고 강조한다. 섬의 아름다움을 말해 보라는 네루다의 질문에 사랑에 빠진 마리오는 베아트리체 루소라고 대답한다. 감동의 순간이 극히 주관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일 포스티노'에서 네루다는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도'역을 연기한 '필립 느와레'가 맡았다. 그래서 더 친근감 있고 부드러우며 권위적이지 않다. '마리오' 역을 맡았던 '마시모 트로이시'가 영화 촬영 당시 심장병 투병 중이라 얼굴이 분명하게 보이는 장면을 제외하고 대역으로 연기를 했으며 촬영을 마무리하고 12시간 후에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전하기도 했다. 제16회 런던 비평가 협회상, 제49회 영국 아카데미, 제68회 미국 아카데미, 제8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등의 영화제 후보에 올라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서정적이고 잔잔한 OST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바다의 자연미로도 극찬을 받았다. 마리오가 우편물을 실은 자전거를 타고 네루다의 집으로 향하는 언덕길은 마음을 따라가는 여행길처럼 친근감 있다.

칼라 디 소토의 잔잔한 파도소리, 절벽의 바람소리, 덤블에 이는 바람소리,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교회 종소리와 신부님, 별이 반짝이는 섬의 하늘, 파블리토(베아트리체 뱃속의 아들)의 심장소리를 네루다에게 들려주려고 녹음을 한다. 떠나고 난 후 소중함이 짙게 베어나서 아름답고 슬픈 영화이다.
인생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중요하다.

그 사람을 만나고 추억하며 우정을 간직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닮으려는 노력과 그 사람의 속성으로 물들어서 더 아름다운 빛으로 채색되는 것이다.

그것이 영화 '일 포스티노'가 말하는 '메타포'일 것이다.

영화 OST는 인생의 멘토를 만나러 가는 순수한 청년의 설레임이 느껴진다.

네루다처럼 시인이 정치를 하는 것은 시민의 삶을 공감한다는 것이다.

억압받고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의 아픔을 아는 것이다.

시민들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실현되도록 앙가주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내게로 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나를 건드리더군.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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