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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상생과 공존'

한여름의 빙수 같은 영화 '모가디슈'

  • 웹출고시간2021.08.16 15:56:58
  • 최종수정2021.08.16 15:56:58

안소현

정치학 박사 / 지역문화커뮤니티 '함께' 대표

◇현재 상황의 밑그림=우리나라가 처한 국내적 상황과 다변하는 국제관계를 예측하기 힘들다. 최근에 남북관계의 최대 변수는 북미관계와 한미동맹으로 볼 수 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 규모를 축소시키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형식을 취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보여 준 태도는 아이러니하다. 8월의 한미훈련 개최에 임박해서 '연락채널을 복원'하더니 '한미 연합훈련 경고 담화문'을 발표했다. 7월 27일 연락채널 복원이라는 우호적 조치를 내놓은 지 불과 2주 만에 다시 남북 연락채널이 다시 불통됐다. 이러한 제스처로 북한 내의 불안을 읽을 수 있다. 여유로운 자의 행동으로 보기엔 너무 조급해 보인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 들어서면서 미·중 관계와 북·중 동맹, 북·러 관계, 영국과 프랑스의 태도 등의 새로운 변수들은 미·중 경쟁이 양국 대결에서 진영 구도로 가고 있음을 짐작시킨다. 신장위구르·인도양·남중국해·홍콩·타이완 해협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패권 대결 구도 속에서 남북관계는 점점 미궁으로 빠지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남·북한 당사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외부의 세력을 이용하는 지혜로운 처방전이 필요하다. 무료한 주말에 우연히 본 영화 '모가디슈'에 그 답이 있다.원- 볼수록 상쾌해지는 내용 전개 : '모가디슈'는 총 제작비 250억 원을 들인 류승완 감독의 2021년 7월 개봉 작품이다. 당시에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을 거치면서 세계화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은 UN 가입을 시도했고 소말리아의 한 표가 매우 중요했던 상황이었다. 남한과 북한 대사관은 각자 소말리아의 지지를 얻기 위해 외교관계에 주력했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의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수도 모가디슈에 고립된 남·북한 대사관 공관원들의 탈출에 관한 실화를 소재로 했다. 대한민국 대사관에는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강대진 참사관(조인성), 서기관 공수철(정만식), 사무원 조수진(김재화), 사무원 박지은(박경혜), 대사 부인 김명희(김소진), 6명이 전부였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대한민국과 소말리아와의 외교관계의 발전을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북한 측의 방해공작으로 번번이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던 중에 독재정권 바레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한 소말리아 내전은 정부와 외교관계를 맺는 대사관들에 대한 공격으로 확대되고 대한민국 대사관은 전기, 식량, 연락 통신망도 끊기게 된다. 시위대는 거리를 장악하고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시위대의 공격으로 오갈 데 없는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와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을 비롯한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구조를 요청하면서 남한 대사관에서 위험한 동거가 시작된다. 이들은 국가, 체제, 이념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오직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책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본국으로부터 구조기 공급이 좌절된 남한 대사관은 이탈리아 대사의 도움으로 적십자로부터 구조기를 공급받는다는 약속을 얻어낸다. 그러나 이탈리아 대사관 측이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거부하자 그들이 모두 남한에 전향하기로 했다는 거짓말로 북한 대사관 직원과 가족까지 케냐로 이송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엄청난 반군의 총알세례를 뚫고 남북 대사관 직원과 가족들이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함께 가는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책과 모래주머니로 무장을 한 자동차 4대와 차창 사이로 힐끗힐끗 보이는 처참한 전장의 광경, 무기로 무장한 반군들. 모두 무사히 살아남지만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이 총격으로 사망한다. 남북의 일행들이 극적으로 케냐로 탈출을 했지만 친한 척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릴까 봐 구조기 안에서 무덤덤한 작별인사를 나눈다. 구조기에서 내리는 순간 모르는척해야 한다. 서로 가슴속에 묻어 둔 말로 여운이 가득한 사람들의 표정에서 절제된 감정의 묘미를 보여준다. 헤어짐이 너무 슬퍼도 울음을 참아야 한다는 느낌이 관람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나도 모르게 남북한 일행 중의 누구도 서로 소통하고 교류했다는 이유로 죄 값을 치르면 안 된다는 조마조마함을 갖게 했다. 이 순간 이념과 체제보다 서로의 안위와 이익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환상의 연기=감정을 절제한 북한 대사 역의 허준호는 오직 대사관 직원들과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남한 대사관에 찾아가서 부탁하는 모습에서 비굴함 보다는 '숭고한 리더십'이 보였고 철저하게 이념에 무장된 북한 참사관역의 구교환도 충무로를 매혹시킨 연기자다웠다. 또한 힘든 상황에서도 부드러운 리더십을 잘 표현해 준 한신성 대사역의 김윤석도 영화에서도 빛을 보였다. 구교환과 조인성의 액션 연기는 훌륭했다. 거들먹거리는 강대진 참사관역의 조인성은 어눌한 영어 발음과 반전을 보여주는 파워풀한 액션을 보여 주었다. 모든 배우들의 현실감 있는 연기가 영화를 맛깔스럽게 했다.
◇방대한 연구=요란한 총격전에서 사상자가 한 명이라니 현실감이 안 느껴졌지만 당시의 AK 소총은 반동이 심해서 명중률이 낮고 훈련이 안 된 정부군과 반군이 총알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총알도 책 한 권을 뚫지 못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 영화를 제작하면서 만났던 사람과 참고했던 자료들이 계속 나온다. 류 감독은 외교관, 종군기자, 북한 전문가 등을 만나고 관련 서적도 보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터뷰를 했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현재 소말리아는 여행금지 국가라서 영화는 모로코에서 촬영했다고 하며 80% 정도가 실제와 일치한다고 한다. 우연히 본 영화 '모가디슈'는 이념과 체제로 양분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화합하기 위해서 강제보다 배려를 강조하고 있다. 깻잎이 떨어지지 않자 다른 사람이 자연스럽게 젓가락으로 아래 깻잎을 눌러준다. 말을 안 해도 반응하는 하나의 문화공동체이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삶은 이념, 체제, 국경이라는 개념보다 행복, 상생, 공존의 추구인 것이다. 얽힌 실타래 같은 남북관계도 1991년 소말리아에 있던 남북 대사관저 공관원들처럼 술술 풀리길 바란다. 남한과 북한은 깻잎 한 장도 지긋이 눌러주는 ·문화공동체·인 것이다. '모가디슈'는 한여름 여럿이 함께 떠먹는 한사발의 빙수 같이 참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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