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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그리움 눌러 담은 108그릇의 음식 '밥정'

영화 밥정

  • 웹출고시간2021.08.30 17:00:43
  • 최종수정2021.08.30 17:01:00

안소현

정치학 박사 / 지역문화커뮤니티 '함께' 대표

밥 - 설 태 수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는 밥.

몸의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밥.

뜨신 밥 앞에서는

흉악한 도적도 몽둥이를 내려놓는다.

대처에서 떠돌다 온 아들에게

노모는 밥을 수북이 담아 준다.

'밥'이란 말만 들어도

뇌세포는 벌써 들썩거린다.

밥을 능가하는 언어는 없다.

밥 차려주는 사람만큼

숭고한 성자도 없다.

저승길 떠나는 망자 입엔

물 적신 쌀 한 숟가락.

그 한 숟가락 다 녹을 때까진

천사도 악마도 범접하지 못한다.

이승 저승 다 합해도

밥보다 힘 센 것은 없다.
이 시를 읽다보면 겨울 언저리 추위를 헤치고 들어오는 가족들에게 아랫목 이불 속에서 따뜻한 밥그릇을 꺼내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생각난다. 가족들에게 따순 밥을 먹이고 싶으셨던 어머니의 깊은 사랑 같아서 숟가락으로 싹싹 비우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들어서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밥'에 대해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그릇 가득히 퍼 올린 소복한 밥이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었는데 탄수화물에 대한 단점만 부각되고 있는 식생활의 변화 때문에 밥이 이름 그대로 찬밥 신세가 되고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족들이 밥상머리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사랑의 크기만큼 퍼 올린 고봉밥을 크게 떠서 한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어릴 적 정겨운 저녁시간이 불현 듯 스쳐지나간다. 가족들을 위해 없는 반찬이지만 정성 한 주걱 넣고 밥상을 차리시던 우리들의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떠나질 않는다. 된장찌개에 김치 한 가지만 있어도 밥맛이 꿀맛이던 시절이 참 그립다. 어느덧 우리들은 제각기 바쁜 일상으로 아침 식탁과 저녁 식탁에서 나 홀로 밥상머리에 앉아서 외로움을 반찬 삼아 삼킨다. 가족들도 시간 맞추기 힘들어서 각자 끼니를 해결하기 일쑤다. 밥을 수북이 담아주면 살찐다고 투정을 한다. 밥 한 그릇 함께 먹는다는 것은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상대방에 대한 방어를 해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정서를 소환하는 어머니가 끓여 주신 된장찌개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2020년 개봉된 박혜령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밥정'을 소개하겠다. 박혜령 감독은 인간극장, 방랑식객,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는 하셨어요? 등 임지호와의 프로그램에 연출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박혜령 감독은 "임지호 선생님의 지식과 음식마다 갖고 있는 스토리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라며 그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 이유를 밝혔다. 임지호는 친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고 새어머니를 친어머니로 알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날부터 주워 온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고 가출을 하게됐다고 한다.'얼굴도 모르는 친어머니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완벽한 요리를 만들어 냈는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의 요리는 정성스럽고 섬세하다. 그릇 안에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지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살아 숨 쉰다.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인 아름다운 작품이다. 요리를 대하는 사람들이 감동으로 울컥하는 장면들을 TV를 통해 종종 봤지만 다큐멘터리 '밥정'을 보기 전에는 단지 '요리연구가니까 기술이 뛰어나겠지.'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밥정'은 임지호 쉐프 자신의 삶과 요리에 대한 철학,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을 박혜령감독이 10년에 걸쳐 담아낸다. '밥정'은 잔디, 잡초, 이끼, 나뭇가지 등 자연을 재료 삼아 요리를 만드는 방랑식객 임지호 쉐프가 '밥'으로 '정'을 나누는 인생의 참맛을 보여준다. 친어머니와 양어머니에 대한 아픈 사연을 간직한 그는 길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기꺼이 음식을 대접한다.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발길 닿는 대로 재료를 찾고 손길 닿는 대로 요리를 만드는 방랑식객 임지호 쉐프에게 요리는 세상으로 향하는 언어였고, 어린 시절의 아픔을 치유하는 매개체였다. 산과 바다, 들판, 계곡 등 대한민국 4계절의 아름다운 풍광과 자연을 재료 삼아 정성껏 차린 밥상, 소박하지만 풍성한 마음이 담긴 인간미 넘치는 요리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영상미를 만나볼 수 있다.
지리산 골짜기에 위치한 '단천마을'의 따뜻한 봄날부터 추운 겨울날 소복하게 쌓인 눈까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계절마다 자신만의 색깔을 선보이는 자연 속의 다양한 식재료를 찾고,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에게 독창적인 요리를 선보인다. 풀 한 포기, 꽃, 낙엽, 갯벌, 이끼 등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식재료로 만든 독창적인 요리로 모두가 놀랄 자연밥상을 완성시킨다. 청각초밥, 솔방울 국수, 토란국, 두부 계란찜, 돌이끼 국, 모과청 등 독특한 음식들이 미각을 자극한다.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의 재료를 사용해 만든 다양한 요리들은 그 자체로도 놀랍지만, 음식을 먹을 사람만을 위한 정성이 느껴져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자연에서 나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

"음식은 사람의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임지호 쉐프의 요리 철학

고인은 40여 년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식자재를 찾고 요리를 만들어 '방랑 식객'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식재료를 찾아다니던 여정에서 만난 특별한 인연인 새로운 어머니 김순규 할머니와 10년 동안 이어지는 이야기로 많은 공감과 감동을 전한다. 뚝배기에서 은근하게 우려낸 된장국 같은 정취로 자극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어머니 마음 같은 '밥상'을 소환한다.
전국을 떠돌며 식재료를 찾던 임지호 쉐프는 2009년 지리산 단천마을에서 김순규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겨울 내내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온 냉이를 캐서 된장국을 끓여 준 김순규 할머니에게서 그리운 어머니의 정을 느끼고 그날부터 모자의 인연을 맺어 서로를 각별하게 챙긴다. 추운 겨울날 김순규 할머니의 작고 주름진 손을 따뜻해지라고 문질러주면서 할머니 손이 왜 이렇게 예쁘냐는 임지호 쉐프의 대사에서 가슴에 사무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김순규 할머니의 작고 쭈글쭈글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면서 할머니 참 예쁘다는 임지호 쉐프의 대사에서 만날 수 없는 친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려는 진한 울림 느껴졌다. 어느 날 박혜령 감독이 지리산에 다녀온 후, 김순규 할머니를 이젠 볼 수 없다고 전하자 임지호 쉐프는 한참동안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세 번째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절제할 수 없는 슬픔이 임지호 쉐프의 발길을 지리산으로 향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만난 길 위의 어머니와 먼저가신 두 어머니를 위해서 3일 밤낮을 쉬지 않고 요리를 한다. 할머니의 집 대청마루에 생선, 고기, 각종 나물과 과일 접시가 빼곡하게 채워진다. 103개의 요리 접시와 5개의 빈 접시가 놓여진다. 5개의 무형의 접시에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자세를 담았다고 한다.

첫째, 허영심을 버리는 것.

둘째, 거짓말하지 않는 것.

셋째, 부지런할 것.

넷째,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가질 것.

다섯째, 음식을 먹을 사람에게 어떤 음식을 나눌지 재료를 판단하는 매의 눈을 갖는 것.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심에서 우러나는 음식을 올리고 맨 바닥에서 절을 하는 장면에서 묵직한 그리움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고 올라온다.

다큐멘터리 '밥정'을 보고 난 후에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고 진심어린 그의 말과 행동에 요리는 기술이 아니라 '정을 매개로하는 의사소통수단'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방랑식객'이라고 알려진 요리연구가 임지호 쉐프가 6월 12일 6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밥정'으로 밥의 소중함,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의 소중함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삶에 큰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임지호 쉐프가 김순규 할머니를 위해 만든 전호, 망초대, 지칭개, 달래 나물과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돌이끼로 뜨끈한 국을 먹을 때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게 된다. 소박하지만 풍성한 마음이 담긴 인간미 넘치는 음식은 오감을 만족시키고 사랑과 정으로 승화하는 기적을 느끼게 한다. 제27회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대됐고, 김혜수가 앞장서서 홍보했다. '음식의 치유력, 뛰어난 영상미, 인생의 소박한 즐거움, 공감과 인간애로 가득 채운 85분, 눈물을 흘리게 하는 감동'이라는 외신들의 평가가 얼마나 진솔한지 알게 되는 영화 '밥정'. 참 소박하지만 신선하고 묵직하지만 향기롭다. 눈을 감으면 임지호 쉐프가 만들어 낸 미술작품 같은 요리가 하나하나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머니가 차린 소박하지만 따뜻한 밥상이 떠올라서 애잔하다.

밥 - 나태주

집에 있을 때 밥을 많이 먹지 않는 사람도

집을 나서기만 하면 밥을 많이 먹는 버릇이 있다

어쩌면 외로움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밥을

많이 먹게 하는지도 모르는 일

밥은 또 하나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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