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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미쟝센을 알면 더 재미있는 '오징어 게임'

  • 웹출고시간2021.11.08 14:54:32
  • 최종수정2021.11.08 14:54:32

안소현

지역발전연구소함께 대표

'오징어 게임' 현상은 문화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부채 경제를 지칭하는 '스퀴드 노믹스'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이 드라마의 인기는 한국이라는 지역적인 특수성을 벗어나서 세계적이고 현실적인 보편성을 검증했다. 미국의 암호화폐 시장에는 최근 'Squid Game(오징어 게임)'이라는 이름의 암호화폐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 BTS를 선두로 하는 K팝의 성공에 이은 또 하나의 걸작품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인문학·오징어 게임·의 전편이 각 회에 따른 스토리의 소개였다면 이번엔 '오징어 게임'에 숨겨진 디테일(detail)과 패러독스(paradox)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1 M.C.에셔(Maurits Cornelis Escher)의 작품: 세트 디자인은 미술감독 채선경씨가 했다.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오징어 게임의 숨겨진 의도가 있다'고 말한다. 게임 참가자의 공간은 핑크색과 연두색 등 가장 순수한 파스텔톤으로 자본주의의 겉모습인 '밝고 화려함'을 보여준다. 이 색감은 사실 눈에 거슬리고 유치해서 유아용 놀이터가 연상될 정도다. 황동혁 감독은 빛과 어둠, 천사와 악마, 낮과 밤이 공존한다는 평가를 받아 온 네덜란드 판화가 'M.C.에셔'의 작품 '상대성'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위의 작품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각자가 다른 시공간에서 행동하듯이 중력으로부터 자유롭다. 오히려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다. 그러나 필자는 M.C.에셔의 또 다른 작품인 '오름차순과 내림차순'을 보면서 4면의 계단을 위쪽과 아래쪽으로 향하는 두 계급의 인간이 무한작업을 하는 작품을 보고 '오징어 게임'과 더욱 매치가 잘 된다고 판단한다.

"이 무한작업은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슬프고 비관적인 인간의 행로를 표현한다. 우리는 올라간다고 상상한다. 모든 걸음은 72cm 남짓, 몹시 피곤한 오늘의 행진, 올라갔다고 생각하면서 끝없이 다시 걷는 그것이 삶이다" Maurits Cornelis Escher
◇2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빛의 제국': 황인호(이병헌)의 고시원 장면을 보면 반고흐, 피카소의 책이 보이고 책상 위엔 라캉의 '욕망이론'과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의 그림이 놓여 있다. 하늘은 맑고 푸른 낮이지만 땅은 가로등이 켜져 있고 어둡고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황인호는 암흑 같은 현실에서 밝고 무한한 하늘 같은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이러한 소품들은 오징어 게임이 말하려고 하는 의도를 암시하고 있다. 이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럴만한 이유'를 찾다 보니 셜록 홈즈가 된 듯이 설레인다.
◇3 대기실은 흰색으로 아무 무늬가 없다. 다음에 진행될 게임에 대한 불안과 공포감 외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공간이다. 막연한 미래를 꿈꾸는 자들에게 주어진 현실처럼 그저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를 보여준다. 건축가들은 백지같이 하얀 공간은 자아 하디드나 산티아고의 칼라트라다의 건축물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숙소는 '대형창고 매장'을 컨셉으로 잡았고 인간은 마치 상품처럼 진열된다. 감독은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인간의 권력욕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VIPS는 샴페인을 마시며 게임 참가자들을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바라본다. VIPS는 공감 능력이 없는 소시오패스들 같다.
◇ 4 갇힌 게임장과 넓은 하늘, 유난히 큰 놀이기구: 하늘 뚜껑이 닫히면서 새들이 지나가는 장면이 있다. 참가자들이 앞으로 목숨 걸고 게임을 해는 장소가 갇혀서 헤어날 수 없는 세상이며 이 가상의 세계에서 목숨을 걸게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게임 참가자들을 덜 성숙하고 동심을 가진 어린이들로 취급하는 것은 유난히 큰 놀이기구와 게임의 종류를 보면 판단할 수 있다. VIPS는 그저 '재미'를 위해 목숨을 건 게임 참가자들을 재미있게 관람한다.
◇5 1970-80년대 어린 시절의 골목길을 떠올리고 향수 가득한 어린 시절을 표현하고 싶다는 감독은 '영화 '트루먼 쇼'(1998)처럼 게임 참가자들이 현실과 가상의 혼란을 느끼게 설정했다. 참가자들이 처음에는 이 공간이 가상이고 '내가 설마 죽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첫 번째 게임이 끝나고 수백 명이 죽은 후에 현실임을 인지하게 된다. 특히 쌍문동의 골목을 재현한 이 세트장에서 삶과 죽음이 더 극대화됐다.
◇6 '오징어 게임'의 최후의 승자가 즐긴 만찬의 테이블은 '페미니즘'을 단적으로 표현한 주디 시카고의 '디너 파티'라는 작품과 유사하다. 주디 시카고의 1974년 작품은 권력을 차지한 남성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샴페인을 즐기는 모습을 표현했다. 게임의 최후 승자가 먹는 덜 익은 스테이크와 레드와인이 이미 죽은 게임 참가자들의 살과 피 같아서 섬뜩했다. 편법으로 거대한 부를 거머쥔 VIPS가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 서민들에게 주는 '한여름 밤의 꿈'이다. "다른 사람들의 고혈을 짜면 우리처럼 누릴 수 있어. 그리고 너희들도 우리와 공범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7 색감과 게임의 의미: 감독은 "초록색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라든가 그 시절 어렸을 때 입었던 운동복의 보편적인 색이라서 결정했다. 복고적이고 대중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분홍색은 굉장히 유아적이고 동화적인 색채를 대표한다"라고 말한다. 게임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게임, 구슬치기, 줄다리기, 딱지치기 등 어린이들이 하는 게임을 선택했다.

'대중은 세련되거나 성숙하지 못하다'라는 편견을 가진 일부 몰지각한 권력자들의 생각을 세트장이나 소품에 이입시킨 것이다. 기존의 '데스 게임'에서 보여주는 무기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잔인한 장면이 많지만 '데스 게임' 드라마 마니아들은 이러한 장르에서는 그렇게 끔찍하지 않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시즌2에서 필자가 어려서 즐겨 했던 핀 따먹기, 땅따먹기, 고무줄놀이도 추천해 본다.
◇8 도형의 의미: 감독은 "실제 오징어 게임을 할 때, 땅 위에 그리는 오징어 모양의 판에서 영감을 받았다. 진행요원들의 직책을 도형 꼭짓점 개수로 구분했다. 각 도형들은 드라마 속 오브제들에 숨겨두었다"라고 말한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도형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해석한다. □는 재물, △는 폭력, ○는 인간이며 재물·폭력·인간 순서로 진행요원의 서열을 정했다는 견해도 있다. 프론트맨은 가장 폭력적인 게임인 '오징어게임'을 앞두고 더욱 디테일한 미쟝센을 선보인다. 돼지 저금통, 삼각형 테이블에서의 최후의 만찬, 그리고 인간.
◇9 서열을 기반으로 하는 평등: 게임 주최 측은 평등을 주장하지만, 전혀 평등하지 않다. 진보를 얘기하면서도 진보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기득권층을 보는 것 같다는 평가도 있다. 공정과 평등은 게임 참가들 사이에서만 통용되고 주최 측과는 공정하거나 평등하지 않다. 우리 사회 단면이 담겨 있다. 브라질인 구스타보는 '오징어 게임'이 한국 사회를 보여주고 있지만, 불행히도 전 세계에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했고, 인도네시아인 인기타는 인도네시아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돌아볼 수 있게 했다고 말한다. 전 세계의 자본주의는 '평등을 빙자한 서열화'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프론트맨은 이렇게 말한다. "이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참가자들은 모두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바깥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려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싸워 이길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그렇지만 우리가 너희를 지배하지'라는 울림이 전달된다.
◇10 곳곳에 숨겨진 휴머니즘: 사채업자에 쫓기다가 소매치기 강새벽(정호연)과 부딪쳐서 경마에서 딴 456만 원을 새벽에게 털리지만 이 사실도 모르고 오히려 새벽을 챙기는 기훈, 구슬치기게임에서 깐부인 기훈에게 속아 주는 오일남, 다친 강새벽을 위해서 게임을 포기하려는 기훈, 최후의 승자가 된 후에도 조상우의 엄마와 강새벽의 동생을 책임지는 기훈 등 드라마 곳곳에 녹아 있는 휴머니즘, 빈부 격차 속에서 벌어지는 유머와 연출이 시청자들을 따뜻하게 한다.
◇11 한국 콘텐츠 산업의 축적된 역량이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와의 조합: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넷플릭스는 글로벌한 콘텐츠 발굴 능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오징어 게임'이 국내 시장에 갇혔더라면 폭력성 논란 등으로 방영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이제는 모든 나라가 동등하게 경쟁하는 상황이다. 콘텐츠의 품질이 문제지 생산국이 중요하지 않다는 등 의견들이 분분하다. 물론 글로벌 OTT와의 만남도 행운이지만, 이런 성공이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미 음악과 영화 부문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는 세계적인 지위에 올라 있다. 콘텐츠의 힘을 토대로 협상력을 제고시키고 저작권을 확보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현실의 우리를 재조명해 보았다. 피폐한 권력 구조와 돈으로만 향하는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며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속성을 미묘하게 건드려서 공감대를 형성시켰다. 권력의 기득권층이든 대기업이든 서민이 없다면 모두 부질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모두 어울려서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려면 서로 존중하고 감사하고 배려하면 된다. 제2의 황동혁이 발굴되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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