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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타인의 삶'

내가 속한 메타버스(metaverse)에서 반성하게 해 준 영화

  • 웹출고시간2021.04.26 18:17:48
  • 최종수정2021.04.26 18:17:48

안소현

정치학 박사 / 지역문화커뮤니티 '함께' 대표

[충북일보] 우리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에 일상을 올린다.

개인 블로그에도 소소한 일상, 이런저런 생각, 알리고 싶은 정보나 지식들을 올린다.

심지어 유튜브 브이로그를 찍으며 내가 본 것, 느낀 것, 먹은 것, 가본 곳, 구입한 것들을 올린다.

어느덧 우리는 현실세계가 아닌 자신이 속한 디지털 가상세계에 산다.

이러한 디지털 가상세계를 메타버스(metaverse)라고 한다.

우리는 왜 메타버스에 우리 삶을 기록하고 공유할까.

남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상대방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고 생명의 은인까지 되어 준 영화 한 편을 소개하겠다.
2006년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 울리히 뮈헤, 세바스티안 코치, 마티나 게덱 주연의 독일 영화 '타인의 삶'(The Lives of Others)이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비즐러가 되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1984년 11월, 베를린.

주인공 비즐러(울리히 뮤흐 분)가 누군가를 심문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갑고 무거운 심문을 거듭하는 그는 동독 내에서도 유능한 비밀경찰인 슈타지의 일원이다.

당시 동독 정부는 10만 명의 비밀경찰들에게 자신들이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밀리에 감시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비밀경찰 비즐러에게 정부에서 서독과 교류하는 예술가인 극작가 겸 시인,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치)과 그의 여자 친구인 인기 배우 크리스타(마르티나 게덱)를 감시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비즐러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된다.
영화 속에서 카메라는 비즐러의 동선을 천천히 보여준다. 무채색 벽지, 황갈색 패브릭의 소파, 짙은 남색 의자가 놓여 있는 2인용 식탁, TV가 놓인 목재가구와 서랍 없는 사이드테이블. 단조롭고 일 밖에 모르는 비밀경찰의 삶이 그대로 보인다.

저녁으로 대충 때울 인스턴트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부엌도 눈에 띄는 소품이라고는 겨자색 양념통 뿐.

가구와 인테리어는 단조롭고 건조한 독일 그 자체를 말해 준다.

감독은 가구와 벽지에도 주인의 심리상태를 투영시켰다고 한다.

반면에 드라이만이 집을 비운 사이 비즐러가 도청 장치를 설치하러 커플의 보금자리에 잠입하지만 그들의 집은 입구부터 자신의 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드라이만의 집은 예술적 자유를 갈망하는 주인의 성격을 대변하듯 책상과 책꽂이에는 책과 액자가 어지럽게 쌓여 있고 벽에는 주인들의 미적 영감에 도움을 주었을 예술 작품(자유주의의 갈망을 의도하는 게하르트 리히트의 추상화)과 그래픽 디자인이 인상적인 포스터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

1인용 의자를 스탠드를 사이드테이블로 쓰는 등 가구의 용도도 자유롭고, 양털로 마감한 침대의 헤드보드 등 비즐러의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이 과감하다.

이렇게 무채색의 공기 속에서 비즐러는 드라이만 커플을 감시하며 하루하루 그들에게 몰입되어 간다.
장관과 원치 않는 관계를 맺어야 하는 크리스타, 정부의 연출 금지 조치로 우울해했던 친구의 자살로 인해 괴롭지만 정부의 규제 속에 무능력할 수밖에 없는 드라이만의 일상.

비즐러는 그의 일상을 보며 드라이만의 감정에 이입된다.

감정을 억제하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감시를 해야 하는 비밀경찰에게 이런 감정은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드라이만은 독일의 대표적인 시사 주간지인 '슈피겔'에 동독의 자살률과 작가들이 자살하는 현실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된다.

당시에는 활자의 모양으로 타자기 유형과 기사를 쓴 작가를 알 수 있었던 시대였고 증거가 되는 드라이만의 연녹색 타자기의 행방이 비즐러의 도움으로 발각되지 않는다.

드라이만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크리스타를 심문하고, 몸과 마음이 지친 크리스타는 가장 큰 증거물인 타자기를 숨겨놓은 비밀의 장소를 털어놓지만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집을 급습한 정보부보다 먼저 타자기를 숨기고 드라이만을 체포하려던 작전은 실패한다.

크리스타가 죄책감으로 차도에 뛰어들자 심장을 도려내듯 아파했던 비즐러를 잊을 수가 없다.

결국 감시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비즐러의 상관은 국가안보대학의 교수이자 중대장의 직위를 가지고 있는 비즐러의 경력을 해제시키고 정부가 검열할 편지의 겉봉을 여는 하찮은 일을 하도록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후에야 드라이만은 비즐러와 관련된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

집 안을 줄줄이 연결한 길고 가는 도청 선을 발견하고 도서관에서 자신을 감시한 행적이 담긴 문서까지 열람하고 'HGW XX/7'라는 암호로 표기된 비즐러가 생명의 은인임을 알게 된다.
200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독일 아카데미의 주요 부문을 휩쓸었던 이 영화는 30대 초반의 젊은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데뷔작이다.

평소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로 소문난 그는 첫 장편 연출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 장면마다 디테일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특히 두 주인공의 공간의 벽지 패턴과 소품 하나까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를 부여했다.

비밀경찰 비즐러와 작가 드라이만. 전혀 다른 성격으로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동시대의 사람이 상대방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그의 삶을 지켜주려고 정부의 명령까지 거역하는 모습들을 보았다.

거대한 권력에 대한 작은 저항. 자신이 선택한 삶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자유롭고 평온해 보인다.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졌지만 우편배달을 하는 비즐러가 서점에 붙어있는 작가 드라이만의 신간 소설 포스터를 보고 서점으로 들어간다.

펼쳐 든 소설의 첫 장에 '감사한 마음으로 HGW XX/7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글이 적혀 있다.

감동으로 심장이 움찔했다.

내가 속한 메타버스(metaverse)에서 비즐러 흉내를 내며 '좋아요!'를 눌러본다.

누군가의 외로움이 나에게 신호를 한다면 따뜻한 마음으로 대답을 해주고 싶다.

나의 대답으로 그들의 외로운 세상이 온정으로 넘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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