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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짧지만 강렬한 '벚꽃'같은 '에곤 쉴레'

  • 웹출고시간2022.04.11 16:22:26
  • 최종수정2022.04.25 13:55:30

안소현

지역발전연구소함께 대표

불현듯 찾아와서 세상을 온통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더니, 그 설렘으로 한껏 부풀려 놓은 가슴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벚꽃 같은 사람이 있다.

잠깐 스쳐서 지나갔을 뿐인데 그 향기가 온몸에 베어버려서 비누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치명적인 인연이 있다.
에곤 쉴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6년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흥미롭게 읽은 후 기존의 한국문학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가부장제와 몽고반점, 자유로운 성 관념 등에 대한 우회적인 표현들로 복잡해진 마음으로 책장을 덮은 후 발견한 책 표지 때문이었다. 우울한 적갈색 나뭇잎과 비쩍 말라서 앙상한 몸으로 곧게 서 있는 처절할 정도로 짙은 회색빛 나뭇가지가 고흐의 진노랑과 주황이 감도는 노을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 그림은 소설의 주인공 '영혜' 같았다. 나신으로 물구나무를 하고 머리에서 뿌리가, 다리에서 가지가, 사타구니에서 꽃이 형상화되는 형이상학적인 생각의 소유자 영혜를 이해하기 벅찼던 나는 책표지의 그림을 발견하고 어느 정도 내용이 이해되었다. 극도의 외로움과 해결할 수 없는 처지의 자아가 영양부족으로 뒤틀린 나무처럼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면서 갖는 자기부정과 주변으로부터의 보호 본능.

에곤 쉴레의 작품 '나무 네 그루'가 그려진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겉표지는 책의 내용과 완벽한 일치를 보여 주었다.

그 후로 에곤 쉴레를 분석하고 관찰하고 그의 작품을 감상한다. 비록 노트북을 통한 검색이지만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 특히 이유 없는 외로움이 찾아들 때 그의 작품은 폐부로 비집고 들어와서 모세혈관을 마비시킨다. 그의 비난받는 집착들이 넌더리 나게 싫지만, 그의 작품은 슬픈 눈으로 보는 이들을 쓰다듬어 주는 마력이 있다. 분리파의 일원으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제자인 에곤 쉴레. 스승인 클림트를 능가했던 천재 화가에게 영감을 준 네 명의 뮤즈와 단 하나의 사랑을 알아채지 못하고 28세에 스페인 독감으로 짧고 강렬한 생을 마감한 에곤 쉴레의 인생을 담은 영화 '에곤실레: 욕망이 그린 그림'이 2016년에 개봉한다는 소식에 간절하게 기다렸던 나를 회상하며 이 영화를 소개한다. 휘날리는 벚꽃처럼 스쳐 지나가 슬픈 화려함을 안겨 주었지만, 그의 작품들은 가슴 속에 깊이 남아서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돼버렸다.
1890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툴른에서 태어난 에곤 쉴레의 광기 어린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관심은 그를 자신만의 작품세계에 집착하게 만든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명문인 빈 예술 아카데미에 최연소로 입학을 하지만 보수주의 학풍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신예술가 그룹'을 결성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당시 최고의 화가 구스타프 크림트는 에곤 쉴레의 스승으로 그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질투했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과격한 터치와 적나라한 인체 표현으로 '죽음과 에로티시즘'을 주로 표현했지만 28세의 짧은 인생만 아니었다면 인생을 더 깊이 있게 관조한 걸작을 많이 남겼을 것이다.

작가 힐데 베르거의 원작 소설 '죽음과 소녀-에곤 쉴레와 여자들'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은 28년에 짧은 생을 마감한 오스트리아 천재 화가 에곤 쉴레의 예술세계와 그의 인생, 뮤즈였던 네 여인의 이야기를 함께 다룬다. 에곤 쉴레의 도발적이고 에로틱하면서도 독특한 화풍은 유럽 화단을 떠들썩하게 한다. 영화는 화려한 예술가의 이면에 드리워진 시련과 고통을 담아낸다. 매독에 걸린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와 이로 인해 생긴 경제적인 부담, 그의 그림에 대한 외설 폄하 논란, 어린아이를 유괴했다는 누명,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군 입대 문제 등을 전반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에곤 쉴레가 스페인 독감으로 죽기 전에 비로소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게 된다. 네 명의 뮤즈로 완성된 위대한 작품들로 인해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받는 순간, 세상은 위대한 예술가를 잃은 것이다.

영화는 에곤 쉴레의 강렬했던 삶을 여동생 게르티 쉴레의 관점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당차고 열정적인 무명의 예술가, 인생의 전환이 된 구스타프 클림트와의 만남, 걸작을 탄생시킨 네 명의 뮤즈들(동생 게르티, 배우 모아, 모델 발리, 아내 에디트 )이야기를 다 담아놓았다.

특히 중요한 점은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에곤 쉴레의 단 하나의 사랑으로 불리는 발리 노이질을 모델로 한 '죽음과 소녀'이다. 그 외에 '검정 스타킹을 신은 발리 노이질', '소녀들', '모아', '발리의 초상', '가족', '포옹' 등 그의 작품들과 그 작품들이 완성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에곤 쉴레 전시회'를 다녀온 기분이 든다.

동생 게르티 쉴레를 모델로 작업한 에곤 쉴레와 그의 초기 작품들, '신예술가 그룹'을 결성하고 다양한 작품세계에 빠져든 열정적인 에곤 쉴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용수 모아', '몰다우 강변의 크루마우의 풍경' 등의 실제 배경인 체코의 크루마우(현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신예술가 그룹'과 함께 작업하는 장면에서는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아름다운 크루마우의 절경에 감동했다. 어마어마한 다작을 남긴 것을 반증하듯 그의 작업실과 전시회 장면에 등장하는 걸작들을 감상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이다. 또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이기도 한 '죽음과 삶', '베토벤 프리즈'도 볼 수 있다.

에곤 쉴레의 삶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년 영혼의 동반자 발리 노이질과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곤 쉴레의 재능을 알아보고 질투와 존경심을 느끼던 당대 최고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에곤 쉴레가 어린 모델들과 작업하는 것이 논란의 여지가 되자 자신의 모델들 중 한 명인 발리 노이질을 추천한다. 그때부터 시작된 둘의 관계는 예술가와 뮤즈 이상으로 발전하며 영혼의 동반자로 자리 잡는다. 발리 노이질은 에곤 쉴레의 모델일 뿐만 아니라 살림을 도맡아 하고 그림 판매까지 하며 재정을 관리해서 에곤 쉴레가 오로지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에곤 쉴레 인생의 가장 큰 위기였던 미성년자 납치 및 추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구금되었던 순간에도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왔다. 동생 게르티 쉴레와 갈등이 생기자 발리 노이질은 둘 사이에서 화해하도록 큰 역할을 한다. 이처럼 에곤 쉴레의 삶에 가장 오래 머무르며 헌신한 발리 노이질과의 안타까운 이별에서 탄생한 위대한 걸작 '죽음과 소녀'는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게 등장하는 작품이다. 에곤 쉴레의 끊임없는 창작욕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열정을 실감 나게 그려냄과 동시에 그에게 걸작을 남길 수 있도록 영감을 준 수많은 뮤즈 중,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사랑하고 서로를 아꼈던 발리 노이질과아쉬운 만남을 조우하게 될 것이다.
4년 동안 연인이자 모델이었던 빌리가 "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에곤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대사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아마 에곤 쉴레에게 사랑은 그림뿐이라고 생각하고 결국 그런 요구로 버림받고 상처받을까 봐 던졌던 말이 아니었을까. 에곤이 부유한 가정 출신의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자 그녀는 군대에 간호사로 지원해서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에곤 쉴레는 왜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사랑이 아니라 그림에 대한 열망으로 만들어진 관계였을까. 발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다. 그래서 에곤 쉴레의 작품을 보면 슬프고 우울하며 몽환적이다. 예술적인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영화이다. 못다 이룬 사랑의 찌꺼기를 거두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작품 전시회를 가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예술인지 외설인지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그의 열정을 작품으로 쏟아냈기에 그저 감사한다.

에곤 쉴레를 연기한 '노아 자베드라', 발리를 연기한 '발레리 파흐너', 영화만큼 매혹적인 엔딩 크레딧을 선사한 작곡가 '안드레이'에게 감사를 전한다.

물론 영화감독 디터 베르너에게도.

뚝뚝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짧고도 화려했던 에곤 쉴레를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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