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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베토벤이 남긴 연서 '불멸의 연인'

  • 웹출고시간2021.09.27 14:02:38
  • 최종수정2021.09.27 14:02:37
가을바람이 아침과 저녁으로 제법 서늘하다.

한낮의 맑은 하늘과 새하얀 구름, 따가운 햇빛을 집어삼킨 듯한 차가운 바람이 낯설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엘리제를 위하여'의 피아노 소리에 갑자기 심장이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피아노 솔로를 위한 바가텔 A단조 WoO59', '엘리제를 위하여'만큼 익숙한 피아노곡이 있을까. 이 환상적인 피아노곡이 가을하늘 속으로 맑게 퍼지는 순간 중학교 시절 음악 교과서에서 보았던 베토벤의 초상화가 떠올랐다. 그는 어떤 심정으로 이 곡을 작곡했을까? 맑은 멜로디와 아르페지오 반주가 청명한 가을하늘과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베토벤과 그의 뮤즈가 궁금해졌다. 이 곡은 1810년 초에 두 명의 백작 딸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한 베토벤이 새롭게 결혼하고자 결심했던 18세의 테레제 말파티(Therese Malfatti)를 위해서 작곡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엘리제를 위하여'가 아니라 '테레제를 위하여'라는 곡명이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고집스러운 성격과 형편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베토벤은 테레제 말파티로부터의 청혼도 거절당했다. 테레제 말파티가 베토벤에게서 선물 받은 악보를 친구인 브레들에게 주었고 철자 하나를 잘못 읽어서 테레제가 엘리제로 바뀌었다는 정황은 있지만 정확한지 증명할 수가 없다. 또한 엘리제가 베토벤보다 23살 어린 엘리자베스 뢰켈이라는 논문도 있다.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에서 주인공인 플로레스탄 역을 맡았던 조세프 뢰켈의 여동생이라는 가설이다. 자필로 쓴 악보가 없는 한, 가설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추측과 의문을 갖게 하는 이 피아노곡에서 묻어나는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의 멜로디는 전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고 아직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다.
1994년 버나드 로즈 감독의 영화 '불멸의 연인'을 통해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 게리 올드만)의 영원한 사랑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려고 시도했다.

영화는 1827년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 게리 올드만)이 죽어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비엔나 전체는 슬픔에 빠지고, 많은 군중들이 베토벤의 장례 행렬을 지켜보기 위해서 몰려든다. 베토벤의 말년에 그를 돌보았던 막냇동생 요한(Nikolaus Johann van Beethoven : 제라드 호란)에게 베토벤의 모든 유산이 상속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베토벤의 유언장은 모든 것을 '영원한 연인' 앞으로 남긴다고 했다. 베토벤의 오랜 친구이자 비서인 안톤 쉰들러(Anton Felix Schindler : 제로엔 크래브)는 베토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그녀가 누구인지 찾아 나선다. 베토벤이 남긴 유서와 세 통의 편지가 유일한 단서였다.
우선, 쉰들러는 베토벤이 한 여인과 만나기로 했던 칼스버드 호텔로 간다. 호텔 주인은 그녀가 두꺼운 망토와 베일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고, 이틀 동안 방에서 머물렀으며, 베토벤이 도착하기 바로 전에 떠났다고 했다. 베토벤은 도착했으나 그녀가 떠나버렸음을 알고, 실망과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서 가구와 집기류를 거의 부숴버렸다고 했다. 그 여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는 호텔 숙박부에 있는 서명뿐이었다. 쉰들러는 '줄리아 겔렌버그' 백작의 집을 향해 떠난다. 그의 딸 줄리아(Giulietta Guicciardi : 발레리아 골리노)는 자신이 20년 전 베토벤의 제자이자 연인이었음을 인정한다. 열일곱 살의 쾌활한 이탈리아 백작의 딸은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라고 인정받는 베토벤의 무례한 태도에 실망하지만 베토벤의 천부적인 재능에 압도되어서 다른 남자들의 청혼을 거절했음을 알게 된다. 백작이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이 천재 피아니스트와의 만남을 반대하자 줄리아는 베토벤의 천재성을 증명하기 위해 베토벤 모르게 백작과 그의 '월광소나타' 연주를 들었고 그가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자신을 속인 줄리아와의 결혼을 거절하고 그녀와의 관계도 끊어버린다.
쉰들러는 줄리아가 떠난 후에 베토벤이 동생 요한과 카스퍼(Casper Anton Carl van Beethoven : 크리스토퍼 펄포드)와 함께 바덴에서 보낸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가구업자의 딸 조안나(Johanna Reiss : 요한나 테르 스티게)를 카스퍼와 결혼하도록 돕기까지 했다. 그러나 조안나가 임신을 해서 그의 형 카스퍼와 결혼하자, 베토벤은 크게 화를 내며 그녀를 카스퍼를 유혹한 창녀라고 비난한다. 베토벤은 형 카스퍼가 죽은 후 조카 칼을 자신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데려와서 자신과 같은 피아니스트로 만들려고 한다. 미망인 조안나로부터 양육권을 빼앗은 것이다. 양육권 분쟁으로 인한 법정에서 칼은 귀가 안 들리는 베토벤을 위해서 자신이 기꺼이 함께 하겠노라고 선언하지만 베토벤의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교육방식을 견디다 못해 자살까지 시도한다. 베토벤은 칼의 어머니 조안나와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마침내 쉰들러는 카스퍼의 미망인이자 베토벤의 옛 연인이었던 조안나의 서명이 호텔 숙박 기록의 서명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 조안나는 그녀가 베토벤의 연인이었음을 부인하지만, 바덴에서 함께 지냈던 여름을 회상하고는 진실을 인정한다. 조안나는 카스퍼가 자기에게 접근하는 동안 베토벤과 사랑에 빠지고, 베토벤의 아이를 갖게 된다. 그들은 호텔에서 만나 함께 사랑의 도피를 약속했던 것이다. 베토벤이 폭풍 속에서 마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임신한 그녀를 버렸다고 오해를 한 것이다. 그녀는 베토벤이 보낸 전보를 받지 못한 채로 카스퍼에게 돌아가고, 칼이 카스퍼의 자식으로 믿게 놔둔다. 부서진 마차, 읽지 못한 전보, 그리고 상처받은 자존심. 이것이 베토벤을 그의 영원한 연인 조안나와 결별하게 한 비극의 원인이었다.
모든 예술가에게 뮤즈가 있다고 한다. 뮤즈는 사랑의 대상이자 작품을 만드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사랑의 크기가 클수록 예술가들은 더 훌륭한 걸작품을 창조해낸다.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작곡가 베토벤의 40대 연애사를 들추어서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일이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상처 많은 어린 시절을 치유하기 위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준 여인이 그 누구일지라도 최고의 작품을 만들게 한 원천이므로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사랑이 거부된 궁극의 아픔마저도 베토벤의 걸작을 만든 원천이었으리라.

베토벤을 우리 가슴 속에 담아 둘 수 있게 한 그의 아픔, 슬픔, 사랑과 애증에 대한 존경을 바친다.

"음악이란 작곡가의 감정이지 듣는 사람의 입장이나 환경은 중요하지 않아.

작곡가의 감정을 느껴야 이해한다고 할 수 있어. 그 점이 중요하지."-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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