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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자본주의의 구차한 플랫폼에서 노동의 가치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통해 본

  • 웹출고시간2021.05.24 16:02:02
  • 최종수정2021.05.24 16:02:02

안소현

정치학 박사 / 지역문화커뮤니티 '함께' 대표

[충북일보] 나에게 숙제가 던져졌다. '노동과 인권'에 대한 강의를 제안 받고 어떻게 강의를 풀어 갈 것인가, 내가 노동의 현실에 대해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며칠을 고민했다. 그리고 50여 년의 시간 동안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 이주민, 노동자 등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에서 묵직한 메시지로 전해 온 '켄 로치' 감독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후 10년 만인 201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는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라는 울림 있는 수상 소감을 전하며 기자회견에서는 "사람들에게 '가난은 너의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우리의 잔인함이 문제다"라고 불편한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날 세워 비판했다. 켄 로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영화로 전달하는 '약자의 관찰자이자 대변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신성함으로 포장됐고, 기업은 이윤 추구를 위해 긱 이코노미(정규직보다 필요에 따라 계약직이나 임시직을 고용하는 경향의 경제상황)에 익숙해져 있다. 최근 온 디맨드 경제(기업이 수요자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대응해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하는 경제)가 등장하면서 그 의미가 확장됐다. 이런 유형의 노동 현상은 전업주부나 은퇴자들의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이 용이한 반면 건강보험과 최저임금 등의 사회제도적 보장을 받을 수 없는 함정이 있다. 2016년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현 영국 사회의 부조리한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평범한 이웃을 영웅으로 만들어서 큰 감동을 주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주제의식과 세계의 변화만큼이나 다양해진 소외계층 각각의 군상들의 삶을 영화로 녹여낸 리얼리즘 영화의 진정한 스토리텔러 켄 로치 감독이 2019년 세상에 대고 던진 또 하나의 묵직한 메시지인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 2019)'를 소개한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노던록 은행이 파산하고 건축회사를 다니던 리키는 실업자가 되고, 주택 융자를 못 받는 등 앞날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리키와 애비 부부는 긱 이코노미를 추구하는 사회에서 노동시간과 최저임금 등 최소한의 복지를 보장받지 못한다. 일용직을 전전하던 '리키'는 택배 기사로 새 삶을 시작하려고 매니저 '멀로니'와 면접을 본다. 짧은 면접 후 멀로니는 '당신은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는 거다'며 이것은 채용의 형태가 아닌 프랜차이즈의 형태로 택배 기사는 자영업자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리키는 이 일로 빚을 갚고 집을 사겠다는 희망을 품지만 멀로니의 말은 곧 최소한의 노동권과 생명권도 회사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을 의미한다. 결국 리키는 '제로 아워 계약'(24시간 대기로 파트타임 보다 악조건, 다른 부업도 불가능, 일한 만큼만 시급 제공)으로 시간 외 수당을 받지 못하는 아내 '애비'와 마찬가지로 긱 이코노미 노동자가 되어서 저녁도, 주말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화목했던 가족은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계속되는 갈등을 겪게 되고, 10대 아들 세브는 택배기사인 아빠 리키와 요양보호사인 엄마 애비의 보장되지 않는 임금과 과도한 노동시간을 목격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경찰의 경고도 무시한 채 친구들과 건물 벽에 그래비티를 그려 댄다.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도 택배기사로서 가족들에게 더 많은 경제적 혜택을 주려고 했던 가장 리키는 시시각각으로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받게 되는 벌점이 점점 늘어만 간다. 방문 요양 보호사 애비도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하면서 감당하기 힘든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 아들 세브는 자신의 탈선으로 학교에 소환당한 아빠 리키와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진다. 곁에서 이런 과정을 지켜 본 어린 딸 라이자는 아빠의 택배 배송차량의 열쇠를 숨긴다. 택배 업무를 위해 어렵게 대출을 받아서 산 차의 열쇠를 아들 세브가 숨겼다고 판단하고 리키는 아들에게 손찌검을 한다. 그러자 어린 딸 라이자가 울면서 차 열쇠를 내민다. "차 열쇠는 내가 숨겼어, 아빠가 이 일을 그만두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어." 갑자기 울컥하고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리키는 자신의 택배 배송차량에서 핸드폰을 훔치는 도둑들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도난을 만류하자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폭행을 당한다. 병원으로 달려온 아내, 아빠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세브와 라이자. 온 가족이 다시 모여서 사랑하는 아빠 리키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장면에서 가족이 가장 큰 힘이라는 말을 절감하게 됐다. 가족들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리키가 일을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보지만 결국 가족들을 뒤로하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택배 배송차량에 몸을 싣고 회사로 향한다. 퉁퉁 부운 눈과 상처투성이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되면서 음악이 흐른다. 또 한 번 울컥하는 순간이다.
문 앞에 놓인 택배 더미를 보며 새벽 2시에 배송지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 된 택배 기사의 사건이 생각났다. 그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을 것이다. OECD평균 노동시간은 1,764시간이고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이다. 그러나 택배 기사의 평균 노동시간은 3,348시간이라고 한다. 도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로 분류되어 법적으로 노동자 지위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다 보니 연차 유급휴가는 물론 휴식 시간도 보장받을 수 없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업무 구조상 배송물량이 많기 때문에 직접 대체 인력을 고용해 비용을 지급하는 등의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휴가를 보내기가 어렵다. 배달 건당 620~780원 정도의 몫을 받으면서 고객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노동 문제, 분실문제, 주소나 전화번호 오류 등으로 배송 지연 등 많은 문제를 수반하고 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보면서 나를 설레게 하는 택배를 전해 준 택배기사님들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로켓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충분히 감사해요, 리키."

실제로 배관공이었던 리키와 현장 택배기사들이 직접 출연했다. 생활 속 구석구석에서 소중한 분들의 노동은 감사를 받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자본주의의 구차한 플랫폼들이 이익이 우선시되지 않고 인간이 우선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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