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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올림픽 정신을 훼손시킨 도핑 스캔들 '이카루스'

  • 웹출고시간2022.03.14 15:29:26
  • 최종수정2022.04.25 13:55:46

안소현

지역발전연구소함께 대표

2022년 2월 4일에 개막한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전 세계가 화합하자'는 목적과는 다르게 개최국에서 벌어지는 편파판정과 논란들로 시끄러웠다. 올림픽 경기 도중에 성화가 꺼지는 사상 초유의 사건, 개막식에서 중국의 소수민족의 의상으로 폄하된 대한민국의 한복, 쇼트트랙 남자 1천m 경기에서의 편파판정, 외신기자들에 대한 지나친 통제 등은 올림픽 정신을 훼손시켜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분노하게 했다.
더욱 놀라운 사건이 공개됐다. '동계올림픽의 꽃'인 여자 피겨스케이팅 시합에 출전한 러사아의 카밀라 발리예바(2006년생)의 매혹적인 공연에 전문가들은 라이벌이 없을 정도라고 극찬을 했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실시했던 카밀라 발리예바의 도핑 테스트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 검출된 약물의 이름은 금지된 약물인 트리메타지딘(trimetazindine), 혹은 TMZ로 알려진 약물이다. 이 약의 원래의 의료적 목적은 심장 동맥이 막혀서 가슴 통증, 협심증을 겪는 환자들의 혈류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세계반도핑기구가 운동선수들이 실력 향상을 위해 사용하는 호르몬과 물질대사 조절제 목록에 올려놓은 약물이며 2014년에 경기중에 사용이 금지되는 물질 목록에 올랐고, 2015년에 경기중이 아닐 때도 사용이 금지됐다. 미국에서는 이 약의 판매가 승인되지 않고 있다. 올림픽 선수들이 트리메타지딘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중국의 스타 수영선수 쑨양은 양성 반응을 보였고 3개월 동안 선수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러시아의 봅슬레이 선수 나데즈다 세르게예바는 2018년 올림픽에서 트리메타지딘 양성 반응을 보여 8개월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 밖에도 많은 테니스, 스피드 스케이팅, 레슬링, 육상선수들이 양성 결과가 나왔다. 징계처분을 받은 선수 중에는 15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받은 러시아의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가 있다. 2018년 올림픽에서는 러시아의 컬링선수 알렉산드르 크루셸니츠키가 멜도늄 양성반응을 보여 혼합복식 동메달을 박탈당했다. 발리예바의 나이는 16세 미만이기 때문에 세계반도핑기구(WADA)에 의해 보호받는 사람으로 간주 되고 있다. 만약 발리예바가 이 약의 사용이 고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최대 2년의 출전 정지 처분을 받는 대신에 경고만 받을 수 있고, 금메달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징계 내용도 공개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에 당국이 이 사건을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리예바의 명성이 흔들리게 됐다.
세계의 화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에서 매번 등장하는 선수들의 도핑 기사들을 접하게 되면서 인간의 도전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스포츠계의 구조에 대해서 씁쓸함을 금할 길 없다.

러시아가 국가 차원에서 올림픽 선수들의 도핑을 도모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2017년 다큐멘터리 '이카루스'를 소개한다.

다큐멘터리 감독 브라이언 포겔은 아마추어 사이클링 선수였다. 암을 이겨내고 정상의 자리를 다시 차지한 랜스 암스트롱이 그의 영웅이다. 그러나 그의 영웅은 2013년에 세계적인 명성이 추락한다. 2010년을 전후해 세계 사이클링계는 도핑 폭로의 폭풍에 휩싸였고 동료였던 플로이드 랜디스 등이 암스트롱의 약물 복용 혐의를 폭로했다. 암스트롱은 도핑 혐의를 부인했지만, 2012년 미국 반도핑기구(U.S. Anti-Doping Agency)는 투르 드 프랑스에서 7번이나 우승한 암스트롱의 도핑 사실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브라이언 포겔의 궁금증과 러시아 과학자 그리고리 롯첸코프의 콜라보레이션

공식적인 자리에서 혐의를 지속해서 부인하던 암스트롱은 2013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약물을 복용한 사실을 인정하는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던 브라이언 포겔은 이렇게 생각했다.

"랜스 암스트롱이 500번이 넘는 약물 검사에서 걸리지 않았다면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

포겔은 자신이 직접 이 시스템의 결함을 증명할 것을 결정하고 과학자의 가이드에 따라 자신의 몸에 약물을 주입하고 알프스를 넘는 세계 고난도의 아마추어 사이클링 대회 오트 루트에서 이를 증명하기로 한다. 포겔은 먼저 2014년 오트 루트 알프스 대회에 약물을 주입하지 않은 상태로 출전해서 14위를 기록하고 UCLA 올림픽연구소의 창립자인 돈 캐틀린에게 '약물 검사에 걸리지 않는 도핑 프로그램'의 설계를 부탁한다. 그러나 돈 캐틀린은 자신이 쌓아온 내 명성을 해칠 수 있을 것을 우려해서 자신의 오랜 친구인 모스크바 올림픽연구소의 소장인 그리고리 로드첸코프를 소개한다. 러시아를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몰아낸 주역 로드첸코프와 포겔 감독의 콜라보레이션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포겔은 로드첸코프가 모스크바에서 인터넷 화상통화를 통해 지시한 '프로그램'대로 성장 호르몬과 테스토스테론을 자신의 허벅지에 주사하기 시작한다. 포겔은 소치올림픽에서 선수들의 약물 검사를 담당했던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인증하는 모스크바연구소 소장의 협조에 의문을 가졌지만 로드첸코프가 도핑 검사의 세계 최고라는 사실이 확인하기 시작한다. 이 두 사람이 정답게 '랜스 암스트롱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라 하며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하는 동안 독일의 지역 공영방송 컨소시엄인 ARD 방송국에서 러시아의 내부 고발자들을 취재원으로 롯첸코프의 주도 하에 러시아의 육상선수 대부분이 도핑 테스트에 걸리지 않도록 약물을 복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러시아 도핑 스캔들이 본격적으로 수면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수면으로 드러난 러시아 도핑 스캔들

세계 각국은 자국에 세계반도핑기구(WADA, World Anti Doping Agency)의 인증을 받은 도핑방지 연구소 등을 세우고 유지한다. 한국에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가 있고 러시아에는 러시아 반도핑기구(RUSADA)가 있다. 러시아 반도핑기구에서 이 기구 산하 모스크바연구소의 소장 로드첸코프의 비리를 인정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처음 의혹이 터졌을 때 당시 세계반도핑기구의 위원장인 크레이그 리디(Craig Reedie)가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방어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러시아 도핑 스캔들이 터지고 나자 포겔과 로드첸코프 두 사람이 진행하던 실험은 물론 세계 스포츠의 운명도 바뀌기 시작했다. 테스토스테론을 맞고 아마추어 사이클링 대회에 '합법적'으로 참가하기 위해 러시아와 미국을 오가며 근육의 힘을 측정하고 소변 검사를 진행하던 이 둘의 시도는 위기를 맞이한다. 포겔은 첫해에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14위를 차지했던 오트 루트에서 오히려 한참 떨어진 순위를 차지했다.

2015년 9월, 독일 ARD의 탐사 보도에서 제기된 혐의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던 세계반도핑기구가 위임한 독립위원회 조사 결과, 로드첸코프가 있는 모스크바연구소 내에서 샘플이 폐기되고 도핑 검사 은폐를 위한 자금 지원의 흔적 등이 발견됐다. 독립위원회는 첫 조사 발표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모스크바연구소장이 폐기한 1400개의 샘플"이라며 "그의 직위를 해제하고 러시아의 출전을 금지하기를 권고한다"며 로드첸코프를 이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러시아 정부와 당시 러시아 체육장관이던 비탈리 뭇코는 조직적인 정부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며 로드첸코프의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로드첸코프는 자신의 목에 손을 긋는 제스처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내가 숙청당하면 러시아는 올림픽에 출전할 거예요"

국제육상경기연맹은 2015년 11월 "리우 올림픽을 비롯한 모든 국제 육상경기에 러시아 육상연맹의 출전을 금지한다."고 발표한다. 이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내부적인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개인에게 확실히 책임을 물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지금은 부총리인 비탈리 뭇코 당시 체육장관 역시 수뇌부가 연루돼 있다는 혐의를 강하게 부정했다. 여러 정황상 러시아 정부가 롯첸코프라는 꼬리를 잘라냄으로써 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모습이 뚜렷했다. 포겔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 이때 롯첸코프는 자신과 당시 가장 친한 미국인 친구 포겔에게 말한다.

"여기서 탈출해야겠어요"

2016년 5월 12일 '뉴욕타임스'는 '국가가 주도한 도핑이 러시아 금메달의 원천이었다고 내부자는 말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공개한다. 뉴욕타임스가 말한 '내부자'는 물론 로드첸코프였다. 해당 기사에서 그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 금지약물 3가지를 섞은 칵테일 등을 최소 15명의 메달리스트를 포함한 선수들에게 제공했으며, 도핑 검사를 통과하도록 채취한 이들의 소변을 깨끗한 소변으로 바꾸는 데 관여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소변 샘플을 바꾸는데 러시아의 정보기구인 러시아연방보안국(FSB, 과거 'KGB') 요원이 관여했으며, 자신이 약물 검사를 피하도록 도와준 15명 가운데 소치올림픽 봅슬레이에서 두 개의 메달을 딴 알렉산드르 줍코프, 크로스컨트리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딴 알렉산드르 렉코프,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을 딴 알렉산드르 트레치야코프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롯첸코프의 미국 망명

포겔은 롯첸코프의 망명을 주도했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가 국무부와 협상하면서 '뉴욕타임스'에 자신의 존재를 공개해 안전을 확보하는 일에 협조했다. 너무나 놀랍게도 이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 남겼는데, 랜스 암스트롱의 시나리오대로 약물을 주사한 아마추어 사이클링 선수의 약물 체험기 정도로 끝났을 다큐멘터리 '이카로스'는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을 파헤친 가장 심도 있는 작품이 됐다. 2017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영화 '이카로스'는 특별상인 '오웰 어워드'와 첫 관객상을 받으며 넷플릭스에 500만 달러(약 50억원)에 팔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7개월 동안 해당 사안을 조사해 지난 12월 2일 이사회 보고서를 냈다. 이를 바탕으로 스위스 로잔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러시아 선수단의 평창 올림픽 출전을 금지하는 징계를 확정 발표했다. 그리고리 로드첸코프는 모스크바 바스마니 법원이 2016년 1월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조정 기간을 거쳐 현재는 미국 법무부의 증인보호프로그램에 따라 은신 중이다. 그는 은신 중에도 '뉴욕타임스'를 통해 비탈리 뭇코 부총리와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적은 자신의 일기를 발표했다. IOC가 러시아의 출장 금지를 발표한 날 로드첸코프는 푸틴 정부가 자신과 가족들에 대해 보복을 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심경을 밝혔다.

◇아름다운 스포츠 축제의 부활을 꿈꾸며

성화는 올림픽 헌장에 따라 오직 태양열을 이용해 채화하며 그리스 헤라 여신 신전에서 올림픽 개최지까지 봉송한 후 올림픽이 끝나는 날까지 타올라야 한다. 성화가 꺼지는 사상 초유의 사건은 말 많고 탈 많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암시했으리라.

스포츠 도핑 스캔들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동경이 빚은 이카루스의 비애를 연상시킨다. 올림픽이 세계를 화합하는 축제이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화합하고 서로 보듬고 축제를 즐길 수 있길 희망한다. 결과에 따라서 금, 은, 동메달을 줘야겠지만 페어플레이어에게도 금, 은 동메달을 안겨줄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한다.

앞으로 올림픽이라는 세계인의 축제가 '강대국과 약소국의 권력다툼의 장'이 아니고 올림픽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정정당당한 대결이어야 하며 명실상부한 '세계 화합의 장'이 되길 바란다.

결과보다 과정의 가치를 두는 페어플레이를 보여주길 바란다.

국가라는 이름보다 세계인의 이름으로 즐기는 경기, 감동이 있는 세계인의 축제가 되길 바란다. 메달을 못 땄어도 태양열에 밀랍이 녹아서 에게해에 떨어져 죽은 '이카루스'는 절대 아니다. 페어플레이들은 모두가 승자이다.

쿠베르탱이 말이 생각난다.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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