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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전해주는 '가족'

  • 웹출고시간2021.02.15 17:20:57
  • 최종수정2021.02.16 19:02:49

안소현

정치학 박사 / 지역문화커뮤니티 '함께' 대표

매서운 추위가 한 풀 꺾이고 제법 훈풍이 불어온다. 올해는 그래도 무탈하리라는 희망을 안겨 주는 듯 언 땅을 녹이는 따사로운 햇볕이 어김없이 찾아 주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는 명절을 잘 치러냈다. 어쩌면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오랫동안 만날 수 없을 가족들과의 만남을 목말라할지도 모른다.
수십 년 동안 시끌벅적한 명절을 치러온 나로서는 솔직히 친지들과의 만남에 약간의 부담감을 느껴왔다. 외며느리가 해야 할 산더미 같은 일들이 부담스러웠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몸이 편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이번 명절은 적막함과 고독감이 슬며시 휑한 가슴을 비집고 들어왔다. 간단히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시부모님 산소에서 성묘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두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친정어머니께 세배를 드리러 갔다. 친정 오 남매가 릴레이 세배를 해야만 했다. 몹시 말라 보이는 엄마의 어깨와 유난히도 힘이 없어 보이는 다리가 서럽다. 떠들썩한 가족 모임에서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엄마 모습이 급히 먹다가 얹힌 음식처럼 명치를 누른다. 마음이 아파서 자주 못 뵈러 갈까 봐 걱정이다.

화상회의 앱을 깔아 놓고 줌(Zoom)으로 하는 비대면 차례, 릴레이 성묘, 모바일 세뱃돈 등 팬데믹이 만들어 낸 새로운 풍습이 신기하지만 참 허전하고 썰렁하다.
2013년 영화 ‘고령화 가족’의 엄마(윤여정)는 가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족이 뭔 대수냐. 같은 집에 살고 같이 밥 먹고 또 슬플 땐 같이 울고 기쁠 땐 같이 웃는 거. 그게 가족인 거지.”

같이 밥 먹고 같이 울고 같이 웃고 해야 하는데 애정 어린 눈빛으로 부드러운 대화가 오고 가는 훈훈한 밥상과 행복한 웃음소리가 언제부터인가 줄어들었다. 핏줄로 이어진 가족들이 점점 여러 가지 변수와 상황으로 인해 멀리 떨어져 살게 되고 같은 집에서 살더라도 생활주기가 달라서 함께 밥 한 끼 먹기 힘들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부터 이어진 집합 금지 상황은 명절에라도 가족들과 만나겠다는 누군가의 희망을 없애 버렸다. 또 누군가는 잘 풀리지 않는 경제적 현실, 소통되지 못하는 정서적인 유대감 등으로 가족과의 부담스러운 만남을 피하게 되어서 다행스러워하기도 했다.

과연 가족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단단한 핏줄로 이어져서 언제나 나에게 천군만마가 되어 주어야 하나? 혈연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 보다 더 끈끈한 애정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가족이라는 이름이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힘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주었다면 왜 우리 젊은이들이 자식을 낳기를 두려워할까? 태어날 아이의 교육 환경이 불안정하다거나 부동산 정책이 조변석개(朝變夕改) 해서 일까? 희생이라는 이름의 부모가 되기 싫었을까?
부모라는 이름으로 내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는지 나 자신을 곰곰이 돌아다본다.

문득 가족을 주제로 많은 영화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떠올랐다.
그가 제작한 영화는 많은 부분이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과거의 혈연 중심의 가족관에서 탈피해서 다양하고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던져주는 그의 영화는 우리나라에 많은 팬들을 양성했다. 그의 영화 중에서 가족을 주제로 하는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다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등의 영화는 혈연 중심의 가족관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과 오해를 서로 이해하게 되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받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감수성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전의 영화들이 혈연에 조금이라도 집착한 가족이었다면 2018년에 개봉한 <어느 가족>은 혈연만이 가족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고 사랑과 이해가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원제는 ‘shoplifters'로 ’가게 좀도둑‘이라는 의미이다. 아버지인 오사무와 아들 쇼타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도둑질이라는 행위에 대한 죄책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의 일상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작은 여자아이 ’유리‘를 만나게 되고 유리는 오사무와 유리를 계속 따라와서 함께 살게 된다. 집주인 하츠에 할머니, 두 부부와 아들 쇼타, 처제라고 말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야카, 그리고 유리. 낡은 목조건물에서 여섯 명이 함께 모여서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단란하고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다. 오사무와 그의 아내 노부요는 유리를 집에 데려다 주려고 유리의 집에 갔다가 유리의 부모가 하는 대화를 듣게 된다. “누구의 씨인 줄도 모르는 아이를 나한테 키우라는 거야?”, “나는 뭐 걔를 낳고 싶어서 나은 줄 알아?” 밖에서 이 말을 듣던 노부요는 바닥에 주저앉는다. 결국 부부는 유리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이제 정말 여섯 식구가 되었다. 연금으로 살아가는 집 주인 하츠에와 그녀의 바람난 남편이 낳은 아들의 가출한 딸 사야카, 폭력을 일삼는 전남편을 죽인 노부요를 도와주다가 부부가 된 오사무와 마트 주차장에서 유괴한 아들 쇼타, 그리고 친부모로부터 방치된 외로운 유리. 이 여섯 명의 구성원은 각자의 상처를 공감하고 위로해 주며 가슴 뭉클한 가족애를 보여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너무나 누추한 도심의 목조건물 안에서도 웃음과 사랑이 넘쳐난다. 엉뚱하고 어리둥절한 조합의 가족을 보며 전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들이 어느 가족 이상으로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집 주인 하즈에의 죽음과 죽음을 알리는 순간 보금자리를 잃게 될 두려움으로 시체를 마당에 묻게 되지만 이 모든 상황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각자 다른 삶을 선택하며 이 영화는 끝을 맺는다. 어쩌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가족 이야기가 상처를 보듬어 주고 아픔을 이겨내려는 과정이 처절하다.

혈연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를 어쩌면 남에게서 위로받게 되며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에 대해 “가족의 의미에 대해 지난 10년 동안 생각해온 것을 모두 담은 영화”라고 언급했다. 감독의 오마주 릴리 프랭키(아빠 오사무 역)와 키키 키린(할머니 하츠에 역)을 통해 가족 구성원의 기본이 되는 이해와 편안함,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준다. 또한 엄마 노부요 역할의 안도 사쿠라의 무심한 듯 심오한 연기에 감탄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어도 진정으로 엄마가 될 수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빠와 좀도둑질을 하는 자신과 가족의 생활에 의문을 품게 되는 쇼타 역의 죠 카이라는 처음 오디션을 보러 들어왔을 때 감독은“바로 이 아이다”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고 한다. 상처받은 다섯 살 소녀 유리 역의 사사키 미유도 완벽하게 나약함과 순수함을 연기했다. 탁월한 영상미를 선보여온 콘도 류토 촬영감독, 사카모토 류이치와 거장 호소노 하루오미의 음악감독, 미츠마츠 케이코 미술감독도 함께 작업해서 종합예술인 영화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었다. 명품 감독과 배우, 음악과 미술계의 거장이 만든 오케스트라의 협주곡을 방불케 하는 영화이다. 결국 이 영화는 제71회 칸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세상의 모든 가정이 행복할 수는 없다. 겉으로 보이는 행복함도 어쩌면 가장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민족의 명절을 전후로 관계가 더 예민해지는 경우도 있다.
구성원이 완벽하지 않아도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다. 적어도 가족끼리 상처 주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소중한 행복을 선사할 것이며 그 누구보다도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간절함이 마음속 깊이 내재되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의 영화처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로하는 순간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음을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

따뜻한 봄날 폴폴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예쁜 꽃을 피우리라는 희망으로 내 곁에, 내 마음에 담은 모두에게 가족이 되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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