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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사랑이라는 아름답고 아프고 신비스런 이름

  • 웹출고시간2021.08.02 16:36:19
  • 최종수정2021.08.02 16:36:19

안소현

정치학 박사 / 지역문화커뮤니티 '함께' 대표

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차바퀴가 터져 버리는 사고를 목격했다. 차체는 멀쩡한데 왼쪽에 있는 두 개의 바퀴가 너덜너덜해진 자동차가 2차 사고를 피해서 고속도로 밖으로 피해 서 있었다. 보이지 않는 오른쪽 바퀴는 멀쩡했을까? 타 버린 바퀴가 작은 말다툼으로 시작된 사랑의 상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잊지 못할 사랑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폴폴 나리는 첫 눈 같은 사랑을 회상하다가 스타카토처럼 툭 튀어 나오는 아픈 기억들. 사랑을 해 본 자들은 설레임과 떨림으로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얼굴에 번지다가도 사소한 사건들로 마음이 무너지고 미소가 사라지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어서일까? 사랑은 화학적 관계에서 시작해서 사회적 관계로 바뀌는 기간이 있다. 이런 시기는 누구에게나 온다. 사랑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싶은 주인공의 애틋한 몸짓이 전달되는 무더운 여름날의 청량음료 같은 2004년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프랑스 베르사이유 출신의 감독 미셸공드리는 색채의 화려함과 스토리의 절묘한 조화, 시대를 앞 서 가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나의 오감을 자극했다. 사랑이라는 아름답고 아프고 신비스런 이름으로.
#1. '조엘(짐 캐리)'은 발렌타인데이에 갑자기 우울해져서 무의식적으로 몬톡행 열차를 탄다. 몬톡의 해변을 거닐면서 노트를 꺼내는데, 이상하게도 일부가 찢겨져 있었고 오랜만에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몬톡 해변을 여행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파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여자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그녀를 보자마자 조엘은 사랑에 빠진다. 둘은 같은 기차를 탔고, 적극적인 클레멘타인이 말을 걸며 둘은 가까워진다.
#2. 사실 클레멘타인은 조엘의 애인이었고 몬톡 해변에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했지만, 사소한 일로 싸우다가 결국 헤어졌다. 이별의 고통이 너무 괴로웠던 클레멘타인은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에서 조엘과의 기억을 모두 지운다. 조엘은 화해를 하고자 그녀가 일하는 서점에 선물을 가지고 찾아가지만, 클레멘타인은 그를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대한다. 속상해 하는 조엘에게 친구는 클레멘타인이 라쿠나에서 조엘과의 기억을 지웠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엘은 화가 나서 자신도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조엘의 기억을 지워주기로 한 '하워드 박사'는 그날 저녁, 라쿠나 직원들을 조엘의 집으로 보낸다. 직원인 '스탠'과 '패트릭', '메리'는 침대에서 자고 있는 조엘의 머리에 헬멧 같은 기계를 씌우고 클레멘타인과 관련된 기억들을 하나 둘 삭제해 나간다. 조엘의 머릿속에서 기억의 파편들이 비교적 최근 것부터 지워지기 시작한다. 최근의 다툼들부터 시작해서 서로 사랑을 나누고 행복했던 시간들이 서서히 지워져 나가자, 조엘은 좋았던 기억들을 잃고 싶지 않아진다.
#3. 기억을 지우는 사이에 라쿠나의 직원인 패트릭은 클레멘타인에게 반해서 라쿠나에 반납한 조엘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이용해서 그녀에게 접근을 한다고 스탠에게 고백하고 조엘은 모두 듣게 된다. 그때 패트릭에게 걸려 온 클레멘타인의 전화에서 클레멘타인은 "왠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무섭고 불안해. 마치 내가 지금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불안증세를 호소한다. 그리고 갑자기 '꽁꽁 얼어있는 찰스강을 보자'고 제안한다. 클레멘타인과 함께 찰스 강에 간 패트릭은 조엘의 물건들과 조엘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며 그녀를 유혹한다. 하지만 클레멘타인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집에 가겠다고 한다. 패트릭이 조엘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4. 갑자기 조엘은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삭제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기억을 지우고 있는 동안에는 현실에서 깨어날 수 없기 때문에 라쿠나 직원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없었다. 결국 조엘은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과 도망을 다니며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애쓴다. 이상함을 감지한 라쿠나 직원들이 하워드 박사에게 SOS를 치면서 실패로 돌아간다.
#5. 조엘의 기억을 지우는 작업을 하는 중에 직원인 메리는 하워드 박사와 단 둘만 있게 되자 '전부터 좋아했었다'며 마음을 고백한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하워드 박사는 메리와 키스를 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하워드의 아내가 찾아왔다가 그 모습을 목격한다. 하워드의 아내는 화가 나서 '메리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라고 하면서 떠난다. 사실 하워드 박사와 메리는 서로를 사랑했었고 메리는 유부남인 하워드와 사랑했던 기억을 지웠던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가 하워드와의 기억은 지울 수 있어도, 그를 향한 사랑 그 자체는 지우지 못했던 것이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메리는 기억을 지우는 일이 비윤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환자들이 자신의 기억을 녹음했던 카세트 테이프를 각자에게 발송한다.
#6. 모든 기억이 지워진 조엘은 발렌타인데이 아침에 몬탁으로 가고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영화의 첫 장면과 연결된다. 몬탁에서 또 다시 만나 서로에게 이끌리는 클레멘타인과 조엘은 메리가 보낸 녹음 테이프를 함께 받게 된다. 테이프에는 각자가 서로에게 했던 험담들이 녹음되어 있었다. 클레멘타인은 조엘이 '지겹고 답답하다'고 하였으며, 조엘은 클레멘타인이 '무식하고 비이성적인 여자'라고 말했었다.

#7. 기억을 지웠음에도 다시 사랑에 빠진 조엘과 클레멘타인. 그들은 과거가 되풀이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재결합을 망설이지만 서로에게 무한히 끌렸으며, 서로 마주보며 울고 웃으며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너는 날 거슬려 할 테고, 난 너를 지루해 할거야.

그럼에도, 괜찮아."

'이터널 선샤인'의 감독 미셸 공드리의 영화들은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이터널 선샤인 외에도 2014년 영화 '무드 인디고'를 보면 색감과 환상적인 연출에 탄성을 자아낸다. 눈 쌓인 바닷가와 겨울의 찰스 강, 조엘의 기억 속에 나타나는 따뜻한 색감과 영상미가 스토리와 잘 매치된다. 또한 기억을 지우는 회사 '라쿠나'라는 독특한 소재와, 시공간을 교차하는 특별한 전개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간이 급격하게 바뀌거나 무너지기도 하며,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현장감을 느끼게 하고 한시도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나는 스토리의 시공간을 구분하기 위해서 #이라는 기호를 사용했다. 무더위에 지친 감성을 다시 일으켜 줄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을 보면서 잊혀진 사랑의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길 바란다.

몇 년 전 우연히 만난 첫사랑에게 조심스럽게 숨겨 온 질문을 했다.

"너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어, 그때 나를 사랑했었어?"

"당연하지. 너에 대한 기억으로 30년을 살았어."

30년 전 나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고 다행히도 그는 원하는 대답을 주었다.

사랑은 꼭 그 사람이 아니었어도 그 감정을 갖게 된 내 자신에게 소중한, 마음 한편에 간직한 '비밀의 방'같은 존재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마음껏 사랑하고 행복해지자. 아픔의 기억도 사랑하기 때문에 생긴 소중한 추억들이기에 지울 수 없듯이.

'당신이 누군가를 맘속에서 지울 수 있지만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

터져버린 타이어가 멀쩡히 고쳐져서 고속도로를 질주하리라. 다시 시작된 사랑이 마음의 상흔들을 치유해 주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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