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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계급과 신분을 허무는 인류학 강의 '로마'

  • 웹출고시간2022.05.23 16:54:12
  • 최종수정2022.05.23 16:54:12

안소현

지역발전연구소함께 대표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클래식으로 온몸이 감동하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로 심장이 멈추는 경험을 하고,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쇼에서 올해 유행할 스타일과 컬러의 조합을 눈여겨보고 싶지만, 우리에겐 그런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경험할 시간이 없다. 각 나라의 가구와 도자기, 건축양식, 자동차, 생활방식을 알아보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본다. 영화를 선택할 때 감독이나 주인공을 보고 결정을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다양한 소품들과 등장인물들의 의상, 립스틱 색깔, 헤어스타일, 가구, 찻잔, 거실에 걸린 그림, 커튼, 풍경 등 다양한 볼거리를 디테일하게 탐구하는 버릇이 있다. 마음에 드는 볼거리에 삽입된 음악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면 만루 홈런을 친 야구장에 앉아있는 기분이 든다. 영화 안에 미술관, 음악회, 패션쇼, 가구나 그릇 전시회, 인문학, 철학이 모두 들어 있어서 나는 영화를 본다. 그리고 가슴에 오래도록 담아두고 추억한다.
예술로서 영화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키는 영화가 있다. 물론 그럴수록 영화의 주제와 화면 배치의 합목적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사회는 평등하다'는 착각이 현실이길 바라면서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살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계급과 그 계급으로 만들어진 신분의 벽을 허무는 2018년 알폰소 쿠아론의 멕시코 흑백영화 '로마'를 소개하겠다.

◇철학과 영화를 전공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

소공녀, 위대한 유산,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칠드런 오브 맨,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등을 연출 및 제작했고 '그래비티'로 2014년 86회 아카데미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자신의 유년 시절을 반영한 자전적인 영화 '로마'로 9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하여 골든 글러브, 토론토 국제영화제, 베니스 국제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쾌거를 올린다.
◇가정부 '클레오'와 여주인 '소피아'의 공통된 감정선을 담은 스토리

1970년대 멕시코 시티의 로마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중산층 가정의 가정부 클레오의 하루는 아침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등 평범한 가정부와 다를 바 없다. 그녀에게는 수시로 안부 전화를 하는 사랑하는 남자친구 페르민이 있다. 어느 날 함께 나눈 사랑으로 임신이 된 클레오는 그 사실을 털어놓자마자 사라져버린 페르민 때문에 절망에 빠진다.

또한, 겉으로는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의 여주인 '소피아' 역시 삶이 버겁다. 출장이 잦은 남편 안토니오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 집을 나간 지 몇 개월이 지나도록 집에 오지도 않고 아이들 양육비조차 보내주지 않는다.

가정부 클레오는 임신으로 해고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지만, 오히려 여주인 소피아는 병원 진료도 동행해주는 따뜻함으로 여성들만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기 침대를 보러 쇼핑하던 중에 무장단체의 습격으로 유산된 클레오는 심한 충격을 받는다. 생명을 잉태한 성스러움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이별 원인이 됐던 클레오의 참담한 심정과 남편과의 이혼을 결정한 평범한 가정주부인 소피아의 생활은 알 수 없는 미래로 불안하지만 서로 위로하며 서서히 안정을 찾아간다. 골목에 어울리지 않게 커서 여기저기 긁힌 중형차를 버리고 작고 아담한 자동차로 바꾼 후 클레오와 소피아는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로 여행을 간다. 그러나 거대한 파도로 아이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고 클레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필사적으로 아이들을 구한다. 클레오와 소피아는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제 그들은 고용주와 고용인이라는 계급과 신분을 버리고 가족이 되는 순간을 연출한다.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비극의 암시와 메타포

중형자동차가 좁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오면서 여기저기 부딪히고 긁히는 첫 장면은 앞으로 전개될 영화의 비극과 슬픔을 세련되게 암시해 준다.

클레오가 임신한 사실을 페르민에게 알리러 가는 동안 스크린에 담긴 멕시코 시골의 한적함과 대조적으로 한쪽에서 펼쳐지는 정치인들의 떠들썩한 선거유세는 클레오의 불안하고 복잡한 심경을 잘 표현한다. 데이트 장소인 영화관에서 평소처럼 키스를 나누던 페르민이 클레오의 임신 고백으로 자리를 떠나서 긴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자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클레오를 촬영한 롱테이크기법의 적절한 사용은 관객들이 주인공과 일치된 감정선을 갖도록 유도한다. 행복한 얼굴로 식사를 하고 TV를 보는 아이들 사이로 드문드문 보여주는 엄마 소피아의 그늘진 얼굴의 대조도 불행의 암시를 완벽하게 처리한다. 멕시코의 낯선 거리에서 벌어지는 학살 장면은 우리의 역사와 오버랩됐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작고 아담한 자동차는 신분이나 계급보다 현실의 자신을 직시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함을 암시해 준다.
영화 곳곳에 사용된 카메라 기법들은 흑백이 주는 '아름다운 단순함'을 창조한다. 영화를 보고 화면이 이토록 선명하게 남는 영화는 드물다. 사회적 약자가 누구에게는 위로가 되고 그로 인해 가족 이상으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더욱 매력적인 영화이다.

처음 장면은 바닥 청소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흑백영화의 아름다움이 계급과 신분이 부질없다는 인류학 강의를 들으며 마시는 한 잔의 블랙커피 같다. 희망과 행복을 예감하니 블랙커피는 어느새 달달한 바닐라라테처럼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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