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임경자

수필가

어머니! 참으로 장한 나의 어머니. 일제 탄압의 고통과 한국전쟁의 역사 속에 피눈물 나는 고통과 굶주림을 몸소 겪으며 살아 온 우리 어머니. 강 씨 문중의 18세 처녀가 부안 임씨 집안과 인연을 맺었다. 결혼 후 1남 6녀를 낳으셨다. 그때는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시대다. 어머니는 내리 다섯 딸을 출산 할 때마다 죄스럽고 부끄러운 마음만 들어 산후 조리도 못했다고 한다. 그 누구도 딸 낳았다고 시집살이 시키는 사람도 없었는데 늘 죄인처럼 살았다는 어머니. 몸조리를 못해서 늘 뼈마디가 아프고 삭신이 아프다며 몸져 눕는 일이 많았다. 맏이인 나는 어머니의 그런 아픔을 보면서 집안일을 많이 돕고 자랐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오직 자식들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절약하며 살아 온 부모님이다. 열심히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가정 형편이 점차 좋아지게 되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쥐꼬리만 한 월급을 한 푼 두 푼 알뜰하게 모아 해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땅을 장만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공직 일에만 충실하셨지 아예 집안일은 통 모르고 사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집 안팎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삭신이 아파 잠도 편히 못자고 이른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일속에 묻혀 지냈다. 깨끗한 옷 입고 나들이 한 번 못 다녔다. 심지어 그 많은 자식들 입학식이나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손가락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지고 몸 아픈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도 참아내는 어머니가 미련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농사에 매달려 사는 어머니 모습을 볼 때마다 속이 상했다.

마침 아버지께서 퇴직하고 나서 말없이 논밭을 다 처분하셨다. 그 소식을 듣고 이제 어머니가 하는 농사일은 끝났다고 좋아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해마다 봄이 오면 넓은 마당을 파 일구어 텃밭을 만드셨다. 그곳에 곡식과 채소를 가꾸고 가뭄이 들면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며 정성을 다해 키웠다. 어머니는 몸이 편하면 안 되나 보다. 일이 서툰 나와 동생은 가을만 되면 겁부터 났다. 들깨와 콩 타작 할 때는 손바닥에 물집이 생길정도로 고통스럽고 너무 힘들었다. 제발 곡식은 심지 말고 마당 그대로 두자고 말씀드리면 손사래를 친다. 힘은 들지만 씨앗을 심어 싹이 트고 자라는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하루해가 너무 길어 지루하고 심심해서 하는 거란다. 운동 삼아 먹을 채소만 가꾸면 좋겠는데 힘에 부치게 일을 하시니 민망하고 야속하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는 점점 기력이 약해져서 걸핏하면 넘어져 갈비대가 부러지거나 팔을 다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땅에 씨앗을 넣는 일을 멈추지 않는 어머니다. 몇 해 전부터 어머니의 일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동생들과 의논을 했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차광막으로 덮어 놓으면 풀도 나지 않는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곧 바로 차광막을 사다 마당을 덮어 놓았다. 이제 편하게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못 말리는 어머니는 지난해 차광막 둘레의 땅에 콩을 심어 놓고 애지중지 가꾸었다. 그 결과 콩 타작은 내 몫이 되어 어머니와 콩 타작을 했다. 알곡 20㎏ 정도 수확해 놓고 나서 나도 힘에 부쳐 몸살이 나고 말았다. 어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내년에 심을 콩씨를 또 보관해 두셨다. 콩 타작할 힘을 길러 저장해 놓아야 할까보다.

어머니는 지금 기억력이나 정신력은 또렷하여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다. 그렇지만 청각에 장애가 와서 문제다. 10여 년 전 쯤 잘 들리지 않는다하여 보청기를 해 드렸는데 적응을 못해 자꾸 빼 놓다가 보청기를 잃어버렸다. 다시 해 드리려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았더니 청력이 다 망가져 할 수 없다고 한다. 아무 소리도 알아듣지 못해서 어머니도 답답하고 곁에서 보는 우리도 답답하다. 원활한 소통이 안 되다보니 오해를 할 때가 많았다. 의사전달 방법을 찾다보니 자식들이 글로 적어놓으면 어머니는 글을 읽고 내용에 맞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이렇게 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글조차 읽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해보니 한글을 읽는 어머니가 한없이 자랑스럽다. 97세 생신을 맞이한 어머니 건강하시고 무탈하게 사세요. 우리 칠남매 곁에서 따뜻한 사랑을 듬뿍 주고 계심에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