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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자

수필가

 어머니가 살고 있는 시골집은 옛날에 지은 집이라 겨울이면 외풍이 심하다. 옛집은 아무리 잘 지어진 집이라 해도 오랜 세월로 문틈이 벌어지고 창문이 잘 맞지 않으니 낡아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2년 전에 막내 동생내외가 와서 창문에 뽁뽁이를 붙인 후부터 한결 훈훈해졌다.

 어느 날 지인은 아파트 창문에 뽁뽁이를 붙였더니 방안 공기가 훈훈해 졌고 단열효과가 크다고 자랑을 했다. 내 집 창문도 한 번 해 보란다. 그 말에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별 관심 없이 들었다.

 그전에 뽁뽁이는 기포가 충격을 완화해 주기 때문에 깨지기 쉬운 물건을 포장하는데 사용한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 뽁뽁이를 단열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본래 이름은 에어캡(Air-cap)이고 투명하고 부드러우며 터지면 뽁뽁 소리가 나서 그냥 뽁뽁이라고 부른다. 이 뽁뽁이를 옛날에 문에 붙이던 종이처럼 유리창에 붙이면 외풍 차단용으로 사용된다.

 12월 초순 눈이 내린 후부터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외풍도 만만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창문에 뽁뽁이를 붙일까 말까 망설이던 내 마음이 변했다. 상점에 가서 뽁뽁이를 사겠노라 했더니 주인은 무엇에 쓸 거냐고 물었다. 유리창에 붙이려고 한다니까 그는 단열효과가 크다고 강조하며 붙이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줬다. 바보같이 나만 모르고 살았나보다. 사가지고 온 뽁뽁이를 붙여보려 했으나 엄두가 나지 않아 접어 뒀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날 지인이 도와주겠다는 말에 한 쪽 구석에 세워 놓았던 뽁뽁이를 펴 놓고 작업을 시작했다. 유리창을 물걸레로 닦고 유리창에 분무기로 물을 뿌린 후 창문크기의 뽁뽁이를 잘라 붙였다. 기포가 생기지 않도록 마른 수건으로 눌러 주니 매끈하게 잘 붙는다. 창과 창 사이의 틈도 찬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풍지도 기술적으로 잘 달았다. 창문을 열지 않아도 밖을 볼 수 있도록 뽁뽁이를 두 손바닥 크기만큼 잘라내어 맑은 유리로 밖이 환히 보이게 해 놓았다. 아이디어가 참 좋고 일류 기술자의 손처럼 위대해 보인다. 거실창문과 북쪽으로 난 창문에 뽁뽁이를 붙이니 밖은 잘 보이지 않지만 금방 훈훈했다. 이렇게 뽁뽁이를 붙이다보니 옛 생각이 떠올랐다.

 연중행사처럼 가을이면 문 바르기를 꼭 하던 시절이다. 어머니는 햇살 좋은 날을 택해 문을 떼어 햇살이 잘 드는 곳에 비스듬히 세워둔다. 그리고는 밀가루로 풀을 쑤는 동안 동생과 함께 문살에 붙어있는 찢어지고 누렇게 낡은 문종이를 뜯어낸 뒤 문살사이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을 했다. 깨끗해진 문살에 묽은 풀을 풀 솔로 골고루 바른 후에 새 창호지를 어머니와 양쪽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발랐다. 문고리가 있는 곳은 한 겹 바른 종이위에 따다놓은 코스모스와 백일홍꽃 등으로 꽃모양 그대로 무늬를 넣기도 했다. 손이 많이 가는 부분이라 잘 찢어지기 때문에 종이를 두 겹 세 겹 발라 단단하게 하기 위해 지혜를 발휘한 모양이다. 또 꽃을 구경하기 어려운 겨울을 지나 문을 새로 바를 때까지 아름다운 꽃장식이 돼 멋을 부렸다.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참으로 신비롭고 낭만적이며 운치가 있는 문이라 느꼈다. 어머니는 입속에 물을 머금은 뒤 푸우 뿜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물을 뿜어주면 문종이가 마른 뒤에 주름살 없이 팽팽하게 잘 붙는다. 스프레이가 없던 시절에 입술은 훌륭한 스프레이 역할을 했다. 문짝의 가장자리에 문풍지를 붙이고 바짝 말려서 문을 달았다. 얇은 문종이 한 겹 발랐을 뿐인데 침침하던 방안이 환하다. 창호지를 바른 문은 그래서 더욱 정겹고 외풍을 막아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바람과 달빛과 태양빛을 받아들이던 전통적인 한지 바른 문에서 느끼는 정취다. 가옥의 구조가 변해 문은 유리창으로 돼 있어 이제 시골에도 대부분 문종이를 바르지 않는다. 문 바르던 시대의 낭만과 여유로움이 깃든 일상생활이 추억속의 옛이야기로만 남아있게 돼 안타까울 뿐이다. 그때 듣던 자연의 소리와 휘영청 밝은 달빛에 마음껏 취해보던 그 옛날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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