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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자

수필가

 이른 아침 초인종이 울렸다. 깜짝 놀라 통화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보니 같은 라인에 이사 온 직장 동료다. 웬일인가 싶어 현관문을 여는 내게 쇼핑백을 안겨줬다. 의아해 하는 내 모습을 보며 호박범벅을 좋아할지 모르지만 먹어보란다. 고맙다는 말만하고 염치불구하고 덥석 받아 들었다. 집안으로 들어 와 펼쳐보니 호박범벅과 찰밥이다. 우선 호박범벅부터 끌어 당겼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순간 그 맛에 뿅 갔다. 팥과 울타리 콩을 넣어 씹히는 고소함과 호박의 달달한 맛이 내 입맛에 딱 맞아 먹고 또 먹었다. 김치국과 함께 먹으니 그 맛 또한 일품이다. 호박범벅을 무척 좋아하기에 언제 먹어도 좋은 음식이다. 몇 해 전 잇몸 수술을 하고 난 후 호박범벅을 해 먹었을 때는 이 맛이 아니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해도 사람에 따라 맛이 제각각이지만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그랬을까 모르겠다. 아마도 음식 솜씨가 뛰어난 동료가 해 준 음식이라 더 맛난 모양이다. 그러한 동료가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진다.

 어린 시절엔 시골집 담장위로 기어 올라가는 무성한 호박덩굴을 제쳐가며 찬거리를 장만했다. 늘 집 안팎의 담장 밑을 기웃거리며 애호박과 호박잎을 따서 가마솥 밥 위에 올려놓고 쪘다. 여름철에는 볏짚이나 보릿짚으로 불을 땠다. 그 불이 사그라지지 않게 부지깽이로 꼭꼭 눌러 다독거려 뚝배기를 올려놓고 장을 끓였다. 밥솥에 푹 찐 여린 호박잎을 끓인 된장에 찍어 먹던 그 맛을 어찌 잊으리. 또 애호박은 새우젓으로 간을 해서 찌고 호박 곤드래미를 쪄서 양념장에 묻혀 놓으면 훌륭한 밥반찬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고향집에만 가면 담장 위에 올라간 보드라운 호박잎과 애호박을 찾게 된다. 호박 줄기에 동글동글 맺힌 애호박을 보면 왜 그리 반가운지 모른다. 입맛을 돋워 줄 달착지근한 그 맛을 세월이 흘렀어도 잊지 못하는 그리움 때문인가 보다.

 추석이 지난 후에 고향집 담장위에 있는 어린 호박잎을 한 줌 따서 줄기를 깐 후에 깔판을 놓고 중탕으로 찌고 뚝배기 된장은 가스 불에 끓였다. 호박잎쌈을 드시던 어머니는 호박잎이 뻣뻣하고 예전 같은 맛이 안 난다고 하시지만 그래도 나는 맛나게 먹었다. 예전에는 가마솥 밥 위에 얹고 쪄서 더 맛이 났고 또 단순하고 순수했던 입맛이었다. 그 입맛이 현대의 온갖 음식 맛에 젖어서 그럴 수도 있다.

 호박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많다. 호박떡, 애호박 찜, 호박전, 호박부침개, 호박찌개, 호박나물, 호박범벅, 호박 국, 호박꼬지, 꿀 넣고 달인 늙은 호박 물은 붓기를 빠지게 해 준다니 산후몸조리에 좋은 명약이다. 또 호박씨는 견과류의 일종이다. 그뿐만 아니라 늙은 호박은 타임지가 선정한 10대 건강식품중 하나로 뽑혔을 정도로 몸을 가꾸어 주는 건강채소라 한다. 보잘 것 없고 시시하게만 여기던 호박이 이렇게 다양하게 쓰이는 식재료가 또 있을까 한다.

 큼직한 호박꽃은 보면 볼수록 새록새록 정이 가는 꽃이다. 짙은 향기로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지 않지만 수수한 꽃이 우리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사람들은 흔히 못생긴 사람을 보면 호박 같다거나 나이 든 사람을 빗대어 호박꽃 같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호박꽃은 어느 꽃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 나름대로 순수하고 소박한 멋이 있을 뿐만 아니라 순박하고 은은한 멋이 있다. 얄상하고 깍쟁이 같은 날렵함이 없고 날씬하지 않지만 꾸미지 않은 자연미가 있어서 좋다. 그 모습은 둥글둥글하니 복스럽고 탐스럽게 생겨서 마음이 넉넉하고 푸근한 인격으로 믿음이 가기도 한다. 몸매도 날씬하고 매사에 야무지게 일처리 잘하고 똑소리 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선뜻 대하기가 두렵다. 일상생활에서 어쩌다 일어나는 내 잘못과 허물을 탓하고 트집 잡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렵다.

 화려하지 않지만 호박꽃 같은 순수한 사람이 정이 더 간다. 그래서 가끔 외롭고 쓸쓸함에 왠지 울적하거나 슬퍼 눈물이 주르르 흐를 때 호박 같은 그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 어쩌다 투덜거리고 응석을 부리더라도 따뜻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푸근하게 감싸준다면 이 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 인색한 이 시대에 명품 호박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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