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8.6℃
  • 구름많음강릉 9.5℃
  • 맑음서울 8.1℃
  • 맑음충주 8.8℃
  • 맑음서산 9.3℃
  • 맑음청주 9.9℃
  • 맑음대전 11.1℃
  • 맑음추풍령 9.0℃
  • 맑음대구 12.1℃
  • 맑음울산 12.6℃
  • 맑음광주 12.3℃
  • 맑음부산 13.6℃
  • 구름조금고창 11.6℃
  • 맑음홍성(예) 9.9℃
  • 구름많음제주 16.2℃
  • 구름많음고산 13.9℃
  • 맑음강화 8.2℃
  • 맑음제천 8.3℃
  • 맑음보은 9.5℃
  • 맑음천안 9.5℃
  • 맑음보령 11.7℃
  • 맑음부여 11.5℃
  • 맑음금산 10.4℃
  • 구름조금강진군 13.6℃
  • 맑음경주시 12.1℃
  • 맑음거제 13.1℃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9.02.17 15:40:41
  • 최종수정2019.02.17 15:40:41

임경자

수필가

민속절이 가까워 오는 섣달 그믐께다. 늘 농사일로 한가 할 틈 없이 사는 친구가 보고 싶다. 하루 쯤 여유롭게 수다 좀 떨고 놀아보자고 전화를 하니 조심해서 오라는 친구의 말에 서둘러 시골로 달려갔다. 반갑게 맞이해 주는 친구와 차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며칠 후면 민족대명절이어서 사과를 경매장에 보내야 하기 때문에 한가로이 쉴 틈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바쁘면 품을 사서 하지 그러느냐는 물음에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남의 일이라 사과를 함부로 다루어 흠이 생기면 제값을 받지 못해서 손해가 크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구나'하고 수긍이 갔다. 진작 도와주고 싶었는데 온 김에 일손을 도와주겠노라 나섰다. 친구는 잘 됐다며 나를 과일상자가 높게 쌓여있는 사과 선별장으로 데리고 갔다. 창고에 들어서니 사과향이 폐속 깊숙이 스며들어 취했다. 그 향에 감탄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장갑을 끼고 우선 크기대로 분류된 사과상자를 앞에 놓았다. 모양이나 색깔이 예쁘고 실한 것만 골라 꽃종이로 받침을 해서 박스에 넣으라고 했다. 겉에 흠집이나 못생긴 것들이 있으면 상품가치가 떨어져 많은 손해를 보게 되니 잘 골라 담으라며 신신 당부를 한다. 시키는대로 인물이 좋은 사과만 골라 담았다. 꽃종이로 받침을 해서 예쁘게 담으니 마치 사과 꽃이 환하게 피어난 것만 같았다.

상품으로 선택받지 못한 못난이 과일은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했다. 혹시 즙을 짜서 판매하려나하고 물어보았다. 그 말을 듣고는 골라낸 못난이 과일을 깎아 주며 먹어 보란다. 한 조각 입에 넣고 씹어보니 달고 시원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그 맛에 깜짝 놀라 뿅 갔다. 예쁘지도 않고 흠이 있지만 맛과 당도는 물론 신선도면에서도 상품에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영양상으로 따져보아도 차이가 없다고 친구는 자신 있게 말했다. 전에는 즙을 짰는데 그것도 번거로워서 이제 즙을 안자고 그대로 공판장으로 가지고 가면 된다고 한다. 못생겼다고 내팽겨지고 천대받았던 사과가 이제는 못났으면 못난 대로 공판장에서 수매를 해서 걱정하지 않는다니 다행이다. 수매된 못난이는 식품업체로 가서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상품화된다고 한다.

지난 봄 사과 꽃이 막 피어날 때의 냉해와 여름철의 기록적인 폭염 등이 농작물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었는지 야속한 마음으로 살았지.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피땀 흘려 열심히 일한 결과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생산량은 현저히 줄었지만 자연 피해를 대비해 벌써부터 보험을 들었더니 보험금을 받아 그런대로 만족하게 생각한단다. 그마저 없었으면 더 많은 고생을 했을 텐데 미리 준비하기를 잘했다며 만족해하는 눈빛이다. 농사일은 그래서 할 만한 일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참 천심으로 사는 친구다.

몇 시간을 서서 하다 보니 팔이 아프고 다리가 뻣뻣해졌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단순노동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친구를 바라보니 무거운 사과 박스를 옮기는 작업을 해도 단련이 된 듯 끄덕도 하지 않는다. 힘들게 일한 보람은 목돈이 들어와 피로가 싹 풀린다며 즐거운 낯빛이다.

연말에 막내 동생이 제주도 귤 농장으로 주문했다는 택배가 왔다. 직거래로 산 상품이다. 꼭 사 먹고 싶던 참이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서슴없이 포장을 뜯었다. 상자에 가득 담긴 귤은 굵은 것과 자잘한 것이 섞여있고 모양이 일정하지 않으며 겉껍질은 매끄럽지 않고 볼품이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제멋대로 생긴 못난이 귤이다. 금방 따낸 귤이라 보기만 해도 싱싱하고 향이 짙어 입 안 가득 군침이 돈다. 얼른 까서 먹으며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 행복했다.

작고한 인기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못생겨서 미안해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 말이 한 때 유행어가 되어 그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와 같이 못난이 과일도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생산자도 노력의 대가를 받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하게 되었으니 지혜로운 일이라 생각한다.

못난이 과일의 가치를 생각하며 농산물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겉모습만 보고 평가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겠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