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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자

수필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누가 뭐래도 당연히 김치다. 아무리 좋은 반찬을 상에 차려 놓아도 김치가 없으면 먹을 만한 반찬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김치는 꼭 상차림의 기본 메뉴가 아닌가 한다. 그 다음은 김치에 버금가는 누룽지인 듯싶다. 입맛이 없을 때 누룽지를 만들어 물 붓고 폭폭 끓여 부드러워진 숭늉 물을 훌훌 마셔도 든든하다. 옛날부터 눌은밥을 숭늉으로 만들어 먹어 온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라 생각된다.

선배 언니와 함께 반계탕전문식당에 가서 반계탕을 주문했다. 그런데 돌 솥밥이 나와 반가웠다. 뚜껑을 열고 밥은 따로 공기에 퍼놓고 뚜껑을 덮어 두고 있다가 10분후에 열어보니 신기하게도 노릇노릇한 누룽지가 싹 일어났다. 뚝 떼어 입에 넣어 씹으니 전기밥솥이 나오기 전 아궁이에 불을 때서 가마솥에 밥을 해 먹던 시절에 흔히 먹던 누룽지 맛이다. 고소한 그 맛에 옛 생각이 폴폴 났다.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먼 거리까지 출근 준비하느라 바쁜 며느리가 안쓰럽게 여기시던 시어머님이시다. 아침밥을 푼 다음에 누룽지를 긁어 꼭꼭 뭉쳐 도시락가방에 넣으며 '아이들 가르치다보면 배가 얼마나 고프겠니. 이 누룽지라도 참으로 먹어라'하시며 챙겨 주셨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여는 도시락과 후식으로 먹던 그 누룽지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 맛처럼 포근하고 정스럽던 시어머님의 고마움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뒤늦은 후회를 해 본다.

방학이 되어 미국 사는 딸네 가족이 온다는 기별이 왔다. 무엇을 준비해 놓아야 되느냐고 딸에게 물으니 누룽지만 준비해 두란다. 집에서 만들 수도 없고 상품화 된 누릉지중에서도 가마솥 누룽지 맛이 나는 것을 골라 듬뿍 사다놓았다. 삼복 무더위도 불사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누룽지를 끼니때마다 삶아 주면 어린 손녀들은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고소하면서도 담백하고 구수한 맛과 아주 미묘한 단맛이 느껴지는 맛을 무척 좋아하는 미식가다. 구수한 그 맛에 반하게 된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이다.

딸네 집에 가서 볼 때마다 어린 손녀들이 먹다 남은 밥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쌀 한 톨이 되기까지는 농부의 손길이 88번의 수고로움이 따른다는 말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보릿고개로 식량부족의 시대를 살아서인지 몰라도 음식을 허투루 버리지 못한다. 아깝다는 생각 끝에 남긴 밥을 프라이팬에 얹어 누룽지를 만들어 말랑말랑하게 된 것은 그냥 먹고 좀 딱딱해진 누룽지는 삶아 주었더니 밥보다 더 잘 먹었다. 마침내 식사 준비 때마다 '아가 무엇을 먹을까'하고 물으면 아이 셋이 모두 '누룽지밥'이란다. 다른 음식은 먹지 않고 한결같이 누룽지만 찾는다. 그러다보니 그 맛에 완전히 길들어졌다. 갑자기 누룽지 밥을 달라고 할 때는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밥을 많이 하여 일삼아 누룽지를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처럼 한국인이 좋아하는 누릉지 맛을 은연중에 알게 된 기특한 손녀들이다. 한국의 맛을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하며 튼튼하게 성장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최근에 누룽지가 들어간 다양한 요리가 선을 보이고 있는 추세다. 그 종류도 많아서 얼큰 누룽지탕면, 누룽지 백숙, 누룽지 오리백숙, 누룽지 사탕, 누룽지 아이스크림, 누룽지 빙수, 누룽지치킨, 누룽지 튀김, 누룽지 막걸리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 모든 음식들은 옛날 가마솥 누룽지의 구수한 맛을 그대로 살려 낸 음식들이다. 요리를 한 후 맛이 제대로 안 나면 누룽지를 갈아서 한 스푼 정도 넣으면 그 맛이 일품이 된다고 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누룽지 맛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상대하다보면 입속의 혀처럼 달게 굴다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짜증부리고 심통 부리며 쓰디쓴 뒷맛만 남기고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처음에는 거칠고 투박한 듯해도 무엇에든 잘 어울리고 겪을수록 길게 여운이 남아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 약삭빠르게 변하는 세태에 나의 잘못도 넉넉한 마음씨로 따뜻이 품어주고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구수한 맛이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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