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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의 달인, 김문식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전국협의회장

23년간 봉사활동시간 1만시간 넘어
대한적십자사봉사회 19대 전국협의회장
봉사활동, 부모님 영향 커

  • 웹출고시간2023.05.07 19:31:07
  • 최종수정2023.05.07 19:31:07
[충북일보] "남 돕는 일이 좋아 시작했는데 벌써 봉사시간만 1만 시간이 넘었네요."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전국협의회 김문식(63·사진) 회장은 "봉사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은 말보단 행동으로 옮기는 자신의 마음가짐이 가장 컸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지난달 5일 대한적십자사봉사회 19대 전국협의회장에 취임했다.

김 회장은 '봉사의 달인'으로 불린다.

그는 지난 2000년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 남들봉사회원을 시작으로 23년간 재난 및 취약계층 구호, 이산가족 지원, 위기가정 구호 등의 분야에서 약 1만100시간 이상의 봉사활동을 해 왔다.
그간 봉사활동을 인정받아 충북도지사 표창, 적십자 봉사원 대장,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고 대한적십자사 충북협의회 회장, 전국협의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김 회장이 봉사활동을 수십년간 이어온 계기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김 회장은 "시계방을 운영하며 열심히 일하시던 아버지의 뒷모습과 남을 돕고 사는 선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기도를 들으며 자랐다"며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자신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낮에는 금은방을 운영하며 밤과 주말에는 봉사활동에 구슬땀을 흘렸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충북 도내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며 "현장에서 이들의 상황을 직접 본 후론 봉사활동을 그만둘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벽지 도배, 재난현장 구호 활동 등 어려운 이웃들이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일들을 도맡아했다.

그는 "생계가 어려운 이웃이나 재난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위해 봉사원들과 힘을 합쳐 돕는 과정이 너무 뿌듯하고 좋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6년부터는 캄보디아, 라오스, 네팔 등 해외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김 회장은 해마다 방한용품 전달, 헌혈봉사, 재빵봉사활동, 연탄봉사활동 등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전국협의회는 전국 3천364개 봉사회 11만여 명 적십자 봉사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충북 지역에는 200여개의 봉사회와 봉사원 5천 명이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임기 2년 동안 인도주의 현장에서 열심히 봉사하시는 봉사원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각종 재난과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위기가정을 위해 적십자 봉사회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임성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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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의 달인, 김문식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전국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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