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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자

수필가

온 몸의 기가 다 빠져나간 여름날의 가마솥더위였다. 연일 40도를 육박하는 무더위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 맥을 못 추었다. 열대야가 무려 25여 일이나 넘어 잠을 설친날이 그 얼마나 많았던지 모른다. 모든 생명체들이 이렇게 더운 여름날씨는 110여 년 만에 처음이란다. 높은 온도의 찜통더위에 허덕이며 시달리고 힘든 고통의 여름날을 보냈다.

이렇게 사람도 힘들어하는 더운 날씨에 내 집 베란다에 놓여 있는 화분의 꽃들이 수난을 겪었다. 집을 비운 주인 때문에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긴 여름날을 보냈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관엽식물은 말라 죽었고 난분들만 살아 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갈증 상태에 있는 화분에 물을 듬뿍 주고 또 주었다. 며칠 후 난 화분에 이상 징후가 보였다. 궁금한 마음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느다랗게 꽃대가 올라왔다. 꽃봉오리가 맺힌 꽃대를 신기하게 생각되어 시시때때로 들여다보며 어떤 꽃이 필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동양란은 한겨울부터 초봄에만 피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지라 여름의 끝자락에 피어날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다섯 개의 꽃봉오리 중에 한 송이의 하얀 꽃이 피는 것을 보고 흥분이 되었다. 이어서 차례대로 꽃이 피어나 그 향이 내 마음을 가득채웠다.

은은한 난꽃향을 접하다보니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던 살인적인 더위도 절기 앞에서는 꼼짝 못하나 보다. 일교차가 점점 커지는 처서가 지나고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도 지나자 완연이 가을빛이 감돈다. 늦여름까지 목청 높여 세차게 구애하던 매미소리도 한풀 꺾어진 듯 뜸해간다. 청명한 하늘빛에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보며 잠시나마 삶의 언저리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시원한 바람에 묻어오는 계절은 서서히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들녘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과 길옆으로 코스모스의 풋풋한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이름 모를 풀벌레와 귀뚜라미 소리가 귓전에 맴도는가하면 무언가 못 다한 일이 남아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세월의 빠름에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괜스레 속절없는 푸념도 해 본다. 이럴 때는 본능적으로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달렸다.

한참을 가다 오랜만에 옛 친구와 정담이라도 나누려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에 가서 전화를 하니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고 있다고 한다. 비가 와서 들일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왔다. 그런데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가까워 오니 사과를 따서 청과시장으로 보내는 일로 상당히 바쁘다고 한다. 들일과 상관없이 사는 내 삶의 일상을 생각한 것이 잘못이다. 그 순간 궂은비는 내리지만 친구의 일손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 밭 옆길에 차를 세워 놓고 친구를 부르며 과수원으로 들어섰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는 잘 왔다며 두 손을 잡아주었다.

무덥고 타들어가는 뙤약볕 아래에서 알알이 탱글탱글 익어가는 사과를 보고 내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애써서 가꾸어 놓은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고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잘 익은 사과를 따다보니 사과나무 아래에는 빨간 사과가 너부러져 있다. 그 양이 너무 많아 발에 채이고 밟힐 정도다. 어찌 이렇게 되었을까 걱정스럽게 말하는 내게 가뭄과 찜통더위에 탄저병이 번져 상품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큰 피해를 입어서 아깝기도 하고 속도 상한 친구가 안쓰러웠다.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일이니 할 수 없지 뭐, 이것만이라도 건져서 감사하다며 싱긋 웃는다. 참으로 순진하고 천진한 농심이다. 주어진 대로 만족하며 사는 친구의 삶에 대한 마음씨가 가상하여 높이 존중해 주고 싶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겸허히 주어진 대로 만족해하는 그 친구가 마치 천사처럼 보여 사려 깊지 못한 무지함과 남을 탓하고 불평불만을 토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려운 역경을 겪은 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과 친구가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며 사는 천심이 곧 가을 소리가 아닐까 한다. 추수의 기쁨으로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좋은 계절이다. 여유로운 마음 밭에 고맙고 감사할 줄 아는 겸손함을 키우고 널리 펼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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