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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5.24 17:34:33
  • 최종수정2023.05.24 17:34:33

김기옥

(현)김기옥 한방병원장, (전)한의학연구원장

청주시 북이면에 구제역이 발생해 2010년처럼 일파만파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수 있어 고향을 떠나있어도 걱정이 한 짐이다. 구제역은 발굽이 두 개인 소·돼지 등 우제류 동물의 입과 발굽 주변에 물집이 생기는 병이다. 소의 경우 잠복기는 3~8일 가량이며, 초기에 고열(40~41도)이 있고, 사료를 잘 먹지 않고 거품 섞인 침을 흘린다. 잘 일어서지 못하고 통증을 수반하는 급성구내염과 제관(蹄冠), 지간(趾間)에 수포가 생기면서 앓다가 2주 뒤에는 1%의 낮은 치사율을 제외한 모든 성축은 자연 치유되지만 어린 가축의 경우 급성 심근염으로 55%의 확률로 폐사할 수 있다. 영어로 구제역은 foot-and-mouth disease고 수족구는 hand, foot and mouth disease라서 영어권 국가에선 많이 헷갈려한다. 사실 한자로도 '제'는 발굽을 뜻한다.

구제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었으며 국내에서 일제강점기인 1934년 처음 발생했고 이후 66년 만인 2000년에는 경기도 파주에서 발생해 충청도까지 확산돼 큰 피해를 입혔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5월에는 전국적으로 가축 약 16만 마리를 도살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2010년 한의학연구원장으로 재직당시 안동에서 퍼지기 시작한 구제역은 12월 30일을 기점으로 위기등급은 '심각' 단계로 격상했고 첫 중앙재난대책본부를 구성했다. 이 구제역 사태는 2011년 1월 6일을 기점으로 6개 시·도, 46개 시·군으로 늘었으며 94만8364마리가 살처분 됐다. 재정 소요액은 살처분 보상금 6천800억 원을 포함해 8천100억 원에 육박했다.

이 시기 구제역이 퍼진 지역 중엔 강원도도 포함되는데 여태껏 구제역이 발생한 적이 없는 청정지역으로 여겨지고 있던 곳이라 여러 가지로 파문이 컸다. 이 여파로 정육업계와 요식업계 타격은 물론이고 강원도와 경상북도 동해안 일대의 각종 신년맞이 축제가 취소되는 등 후유증이 일파만파로 퍼졌었다. 관련 공무원들의 피로 또한 극에 달해 이미 방역을 맡았던 공무원 두 명이 과로로 숨지기까지 하는 등 30명 넘는 사람들이 쓰러지거나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이때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개발한 KIOM-C를 실험하자고 정부에 제안했으나 차폐시설이 있는 축산과학연구소에서 실험도 거절 당해야했다. 소 사료에 1%정도의 한약을 배합하는 간단한 실험이며 소는 사람이 아니니 임상을 해 볼만 한데 WHO(세계보건기구)지침은 반경 1㎞이내는 무조건 다 도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차하면 한우 씨를 말려야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눈뜨고 당하지 말고 혁신적인 대책을 도지사는 결단해 새로운 치료법과 예방법을 과감하게 시도해보시길 바란다. 조류독감바이러스, 신종플르독감, 브리스베인독감 등은 모두 9일안에 소멸된다는 것이 국제적인 학술지에도 올라갔으나 당시 정부는 한의학연구원에서 개발한 약제사용을 시도도 안 해본다. WHO가 우리의 밥도 먹여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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