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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애

수필가·공인중개사

학계 혹은 상아탑 근처에서나 회자되던 용어, '표절'이라는 단어가 몇 년째 온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논문을 쓸 때, 남의 글을 인용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단원이나 문장을 빌려 쓰되 분명히 주석으로 출처나 작자의 이름을 명기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라의 주춧돌인 위정자들이 시비곡직(是非曲直)하지 못한 일을 내가 무슨 역전의 용사라고 양심선언을 하랴. 할까 말까 두마음이 교차하기를 수십 번 했다. 굳이 핑계를 댄다면 한문단도 아니고 짧은 문장 세 줄에 주석을 단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고, 솔직한 심정은 그냥 내 글인척 하고 싶었다. 이제껏 아무 일 없이 지나 왔듯이 말하지 않고 덮어두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표절'이란 단어는 나와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다.

짧은 세 줄의 글이 내 눈에 뜨인 것은 30년도 더 된 일이다. 여행지 숙소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지기 직전의 너덜너덜한 신문지 한 조각에 불과했다. 신문의 도두라진 면에 실린 글도 아니고 귀퉁이는 이미 찢어져 나가 글쓴이의 이름도 없었다. 그런데 세 줄의 글은 마치 나의 몸 구석구석을 훑고 나온 내시경처럼 너무도 표현이 적절하여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주워 온 글을 옮겨와서 어설픈 나의 글 머리위에 얹어 놓았더니, 핵심이 없이 퍼져 있던 글에 중심이 서고 문맥의 흐름도 훨씬 부드러웠다. 몇 년 전에는 그렇게 조작된 글을 슬그머니 내어 놓아보았다. 그 후, 얼마간 시간이 지났음에도 누가 이의를 해오거나 항의를 해 온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많은 시간이 흘러갔어도 세 줄의 글은 내 글에 살이 되지 않았고, 계륵처럼 목으로 넘어가지도 않았다.

가끔 글을 읽어 볼 때마다 찜찜한 마음이 거스러지더니 근래 와서 그 일이 자주 떠올랐다. 고민 끝에 '표절의 크기'를 교수님께 여쭈었다. 사물을 보고 느낀 감정은 같을 수 있지만 표현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결론은 "작가의 양심이다." 교수님께서는 명쾌한 답을 내려 주셨으나 나의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 되었다.

그 글의 작가 이름을 알 수는 없었지만, 글의 내용으로 보아 짐작되는 나이는 대략 60세 전후 일 것으로 추정 되었다. 사람의 수명이 100세 시대라고 했으나 모든 사람이 장수하는 것은 아니니 이미 이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었다. 나의 입만 닫고 있으면 되었다.

그럴 때 유 교수님의 문학 세미나가 있었다. 주제는 '인간미'이었고 강의 내용은 '인간에 대한 이해'이었다. 표절과 인용에 대한 말씀도 있었다. 내게는 시의적절한 세미나였다. 수필은 '가장 인간다운 문학' 이라고 하며 소설이나 시에서는 본성이 은폐될 수 있지만 수필에서는 허구와 과장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했다. 수필은 작가 자신의 체험과 사색에서 촉발되어야 한다고도 하였다. 남의 글을 본 따지 말라는 말씀은 가슴에 '콕' 하고 박혔다. 세미나가 끝나고 머릿속이 복잡 해졌다.

세 줄의 글은 삭정이나 다름없을 나의 글에 힘을 주었는데, 결국은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서운함이 몰려왔다. 사람에게 붙인 정처럼 내 글 인양 사랑했던 문구를 떼어내야 한다는 것은 수술 일자를 받아놓은 환자의 심정과 같았다. 한편으로 죽어 나자빠진 듯한 내 글에 대한 연민도 일었다. 과연 세 줄의 글이 없어도 나의 글이 살아 날 수 있을까. 그리고 명의처럼 반드시 살려 내야 한다는 사명감도 밀고 올라왔다. 세 줄의 글을 도려내면 움푹 파인 상처 자리는 흉이 남을 터이고 새살이 돋아나고, 아물 때까지 보듬고 가려 주어야 할 일도 큰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별다른 도리가 없다. 이것은 순전히 내 양심의 문제였고, 이미 양심의 한 자락을 보이고 말았으니….

이제 미련을 버리고 이별을 고(告)하련다. 세 줄의 글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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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정치란 모름지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한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갈등이 심화될수록 정치의 기능과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생각은 고여 있을 수 없고 행동 또한 멈춰있을 수 없다. 새해를 맞아 국민의힘 정우택(69·청주 상당)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만났다. 그는 부친인 정운갑 전 농림부 장관(1913~1985년)의 뒤를 이어 정치에 입문한 뒤 장관, 충북지사, 국회의원 등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지난해 3월 9일 치러진 재선거로 부친과 함께 '5선' 타이틀까지 거머쥔 뒤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목으로 성장했다. 정 부의장을 만나 새해 각오와 정치·충북 현안에 대해 들어봤다. ◇새해 각오를 밝혀 달라.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길 바란다. 토끼는 예부터 만물의 성장과 번창을 의미한다. 새해에는 도민 여러분 모두가 크게 번창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란다. 최근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삼중고로 인한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