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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밤에 내린 비는 단비였다. 이제 산과 들은 날이 갈수록 짙푸른 정경을 펼쳐 보이리라. 오늘처럼 무성한 나뭇잎들이 피고 지듯이 하루해가 뜨고 지기는 다름이 없고, 내일도 오면 지나갈 시간이 분명하다. 소소하지만 매일 다르게 일어나는 일상 속에 둔덕이라고 여겨졌던 날들이, 돌아보니 강물에 소 지나간 자리처럼 흔적이 없다. 나는 팔월이 오면 다시 둔덕 앞에 서게 된다. 생전 경험하지 못한 공동주택 건물인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사람의 심사는 왜 이런지, 겨울에 집 앞 인도와 주차장에 쌓인 눈을 쓸 때 면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했는데 막상 이사계획을 한 날로부터는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엮고 있다. 정월에 장을 담으며 사방이 트이고 햇볕 바른 옥상에서 '언제 또 장을 담으랴' 마당의 돌나물을 뜯으면서도 '내년 봄에는 즐겨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진한 나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키다리 꽃, 옥상의 텃밭, 가뭄에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던 수고로움으로 얻어지던 토마토와 상추 싱싱한 고추 몇 개를 따서 유기농이라고 강조하며 식탁에 올려놓았다. 구석구석 나의 손길이 안 간 곳이 없는 집. 인생이 연극처럼 일, 이, 삼 막으로 나뉜다면 이제 마지막 장인 삼 막으로 가는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허우룩해진다.

 삼십이 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한 일은 내 인생의 큰 둔덕이었다. 그즈음 H회사의 차종 소나타가 출고하기 시작했던 때, 준비 없이 이 집을 사게 되었다. 앞뒤를 재어보고 나름의 확신으로 결정을 하려고 했는데 마침, 경쟁자가 있어서 생각지 않게 소나타 한 대 값을 크게 던지고야 계약이 성사되었다. 숨 막힐 듯했던 순간의 승부욕으로 생긴 일, 목적대로 계약을 이루고 났지만 머릿속에는 날아간 소나타 자동차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다 며칠 뒤 꿈을 꾸게 되었다. 윤기가 자르르한 까만색의 돼지가 펑퍼짐하게 누워서 많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고 담벼락에는 누르스름한 호박이 덩굴과 함께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초보 공인중개사였고 꿈의 해몽도 할 줄 몰랐지만 그건 분명 좋은 느낌의 꿈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난 이후 마음이 편안하여졌고, 행여 복이 달아날까 보아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이 집과의 인연을 공무원인 남편이 미리 알았더라면 백 번은 말렸을 터였다. 왜냐하면 그때의 이곳은 청주의 서쪽에 있는 변두리였다. 주변은 도시계획만 되어 있었을 뿐 헌집이 띄엄띄엄 몇 채 있고 도로 역시 흙길이었다. 그동안 도로가 넓어졌고 높은 빌딩과 건물이 하루가 다르게 지어졌다. 아래 동네에 백화점이 들어오기까지 이십여 년을 부동산의 전성기인 활황기를 보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 동안 기쁨에 겨워 잠 못 이룬 밤이 있었는가 하면 우울의 뿌리가 깊어 온 밤을 하얗게 뒤척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은 이제 그리움으로 변하여 기억 속에 꾹꾹 눌러 담아본다.

 깊은 생각 끝에 최선의 선택을 하고 결정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으로 다시 둔덕 앞에 선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남편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딸아이의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는 거는 어떡하나. 또 부잣집 뒷마당처럼 늘어놓고 사는 나의 생활 습관은 어찌할까, 연일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웃과의 불화 소식은 나를 더 머뭇거리게 한다. 다시 느껴지는 둔덕 앞에서의 두려움. 두려움이란, 늙음과 인간 삶의 변화와 관련된 근원적인 감정이라고 했다. 젊은 시절에는 없던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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