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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애

공인중개사

아침 햇살이 안개를 걷어내고 창가에 와 앉아 있다. 발목 쌓이는 눈과 혹독한 추위가 없었던 지난겨울은 공인 중개사가 현장을 다니기에 좋은 날씨였다. 십여 년 전 이맘 때 쯤의 일이다. 무료히 앉아 있던 오후에 전화 음이 울렸다. 상대방이 "광고에 난 물건을 보고 싶다." 고 말 했다. 매도 의뢰 된 시내 큰 건물을 모(某) 일간지 광고란에 게재 하였는데 그것을 보았던 모양이다. 전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지긋한 연세인 것 같아 크게 기대는 안하고 간단한 설명만 드렸다. 그런데 매수의뢰를 해 오신 분은 종친회 회장님으로 이튿날 임원진을 대동하고 사무실로 오셨다. 나는 건물에 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현황과 전망을 이야기하고 현장 안내도 마쳤다. 그리고 며칠 후, 회의에서 의결이 되었다며 일을 진행하여 달라는 의사를 보내 왔다. 부담감이 크게 들었지만 일단 대답은 했다. 솔직히 말하면 문중의 일은 절차와 과정이 개인과 달리 복잡해서 남성 중개사들도 꺼려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내 생에 다시는 없을 기회라는 거를 직감 했고 한편으로 모험심이 발동하기도 하였다. 회장님에게는 지나온 중개업 생활 모두를 걸고 한번 해 보겠다고 이미 호언까지 해 버린 터였으니.

가끔 초면의 상대방에게 직업이 '공인중개사' 라고 하면 쉬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고, 때로는 복권 당첨 하듯이 한 건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는 직업으로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강산이 세 번 반이 변 하도록 많은 계약을 해 보았으나 어떤 일도 결코 녹록치 않았다. 계약서 한 장을 작성하기까지의 과정은 정말 치열한 삶의 현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나의 계약을 이루려면 의뢰인 양당사자와 우선 만나야 한다.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문제가 있으면 실마리를 찾아내고 새로운 형태의 무엇을 만들어 가는 게 일의 순서이다. 그런데 그 매도인은 달랐다. 의뢰한 물건의 가액에서 한 푼도 양보 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제시한 금액이 나오기 전에는 만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명문대 출신 의사의 자신감 이었을까, 우월감 이었을까, 아니면 매개자가 여성 이라는 점이 못 미더웠던 걸까. 한번만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해도 한마디로 '시간이 없다'며 도대체 만나 주지를 않았다. 출근하기 전 10분만 이야기를 하자고 아침 일찍 그의 집을 방문 하였으나 현관문을 빼꼼 하게 밀고 내다보던 그의 부인은 ·남편이 원하는 금액이 되었을 때 오라· 고 같은 말만 되풀이 하다 문을 닫고 들어갔다. 작은 금액의 매매도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큰 물건을 팔겠다고 하면서 융통성을 전혀 보이지 않는 매도인의 태도에 벽 앞에 선 듯 한 답답함을 느꼈다. 한동안 시간이 흘러가도 진전이 없는 기다림에 종중의 매수 의뢰인 측은 점점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도 의욕이 떨어져 '포기 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호언장담을 했던 일도 후회가 되었다.

카운트다운 하는 초조한 심정으로 있을 때 기다리던 매도 의뢰인의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급속하게 일이 진행 되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양당사자는 젊은 시절 한집에 살았던 인연이 있는 사이였다. 절대 고집하던 가액도 약간 조정되고 드디어 한 장의 계약서를 작성 하였다. 그리고 도장을 꾹 눌러 찍던 그들은 웃으면서 돌아갔고, 텅 빈 사무실에서 공연이 끝난 피에로처럼 나는 잠시 서 있었다. 크든 작든 하나의 계약을 이루고 나면 마치 한편의 영화를 찍은 열연배우처럼 기쁨과 허탈감이 함께 몰려왔다. 이제 나는 또 다른 고지를 향하기 위하여 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문중의 계약서를 혼자 진행하고 완성하게 되었던 모노드라마. 힘들었던 만큼 성취감이 컸던 기억에 남는 계약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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