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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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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며 낮 기온도 내려간다' 는 기상정보이다. 오늘은 일 년 중 세 번째 계절인 가을의 끝자락 상강(霜降)이라고 한다. 이맘때쯤 가을을 거두어들인 들녘을 보면 먼 기억 속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해가 저무는 시간 외출에서 돌아오면 집안에는 고구마 찐 냄새가 그윽했다. 그 냄새는 하루의 피로를 스르르 녹아내리게 했고, 움츠러들었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던 묘약이었다. 그래서 건들마가 불어오고 햇덧의 빛이 창가에 스며들어 올 적에는 정 내음을 피우려고 일부러 고구마를 찐다.

정 내음은 비 오는 날, 전류에 감전 되듯이 한 순간에 '찌르르'하고 마음으로 전해 온다. 때로 뒤끝을 알 수 없는 정 으로 이해(利害)의 시작이 되고, 이성적이지 못한 잔(·)정에 연연하다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로 음식을 만들었을 때처럼 맛이 떨어지고 탈이 나기도 했다. 또 영리함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정도 있다. 내가 아는 교수님 한 분의 이야기이다. 팥죽을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연로하신 누님이 팥죽을 끓여 보내 오셨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인가 드신 후 곧 맛이 변했지만 '버리지 않고 모두 먹었다' 는. 배앓이를 할지 모르는데도 누님의 정과 정성을 생각한 그 마음은 어떤 계산법으로도 환산할 수 없을 남매지정이리라.

나이가 들어가는 때문인지 작은 것 하나에도 정이가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골에서 열리는 오일장, 신혼살림을 했던 곳에서 경험하고 두 번째이다. 장터에는 정 내음이 물씬 살아 숨 쉬고 있다. 헐렁한 바지차림의 고추전 아저씨는 초장에 해장술을 하셨는지 얼근한 얼굴을 하고 희아리를 고르고 있고,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푸드 점에는 여러 가지 농산물이 있다. 시내 반찬가게에서는 윤이 나고 네모 반듯한 도토리묵이 이곳에선 이름난 맛 죽 집의 재활용한 프라스틱 통에 수북하게 담겨져 있고, 길가에 있는 '₩1000&DC마트' 주인은 사 왔던 물건을 다른 물건으로 바꿔 달라고 해도 싫은 기색이 없다. 목욕탕 때밀이 아줌마는 중국동포인데 투박한 말솜씨에도 정성껏 밀어주는 손끝에 정이 느껴지고, 또 삭막 할 거라고만 예단 했던 아파트 생활을 불식 시켜준 정(情)도 있다. 벽에 못이 안 들어가 이사 짐의 정리가 한 달이 넘도록 지체되고 있을 때 관리소 직원이 해결 해 주었고, 엘리베이터 안, 어린아이 키 높이를 생각하고 발판 맞춤상자를 놓아주는 이웃에게도 진득한 정 내음이 풍겨온다. 매끄럽게 단장된 시멘트 길보다 신발에 흙이 묻어도 들꽃이 피어있는 논둑길에서 더 짙은 정의 향기를 맡고 작은 물건이었는데도 정 내음을 본적이 있다. 중학교 동창들과의 여행이었다. 학원을 운영하는 친구가 길을 가다 엎드려 뭔가를 주웠는데 그것은 일천 원에 한 뭉치인 굵은 실 같은 고무 밴드 하나였다. 작은 사물을 아끼는 마음도 또한 정이었다.

지난 달 대학동기 모임이 있었다. 인근 C시의 지방의원 이었던 동기가 손수 농사지은 호박과 고추, 가지를 따서 가방에 넣어 주었다. 그날 풋풋한 푸성귀와 함께 담아온 살가운 정 내음은 며칠 내내 코끝에 머물렀다. 정에도 저금성이 발현 되는 걸까. 결 따라 흐르는 물처럼, 서로에게 저장 되어 있는 정의 무게만큼 주게 되니 '준만큼 받는다'는 말이 있는가보다.

고추전 아저씨의 옷매무새가 좀 허름하면 어떻고, 목욕탕 아줌마의 말씨가 어눌하면 어떠랴. 숫된 정 내음이 있는걸... .

부침이 심했던 하루, 속옷을 갖추어 입고 옷섶을 여미어도 가슴이 시려오는 것은 정녕 계절 탓만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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