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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표

수필가·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 사무국장

도지사로부터 추석 인사 문자를 받았다. "… 한가위 되세요." 순간 '얼레?' 하면서도 '바빠서 미처 못 챙겼겠지. 책을 몇십 권이나 쓴 분이 이런 걸 모를 리야'라고 단순하게 넘겼다. 교육감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 한가위 되세요." 이때만 해도 '어럽쇼?' 하면서도 '바쁘다 보면 놓칠 수도 있지. 대학총장 출신인데….'라고 생각했다. 청주시장도 문자를 보냈다. "… 한가위 되세요." 정말 이때까지만 해도 '에이, 그 어려운 행정고시 출신인데….'라며 너그럽게(?) 이해했다. 이번에는 청주시의회가 시내 곳곳에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 한가위 되세요." 여기저기서 눈에 띌 때마다 '이야! 단체로 무식하다고 돈 들여서 소문을 내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쯤 되자 도지사와 교육감이, 청주시장과 청주시의회가 단순히 실수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의례적인 인사말을 기관장이 직접 쓰지는 않았겠지만, 공교롭게도 똑같이 틀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추석 인사를 휴대폰 문자로 많이 받았다. 내가 공무원 출신이라서 그런지 행정기관의 장이나 정치인들로부터 특히 많이 받았다. 도지사, 교육감, 시장, 군수, 국회의원, 도(시)의원 등등. 처음 몇 번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문자들이 계속 쌓이자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공무원 선배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점차 커졌다. 여러 행정기관에서 보낸 문자 대부분이 "… 한가위 되세요."였기 때문이었다.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올바른 문장을 사용해야 하고, 올바른 문장이 되려면 규범에 맞아야 한다. 그 규범 중 가장 기본이 문장을 이루는 성분들(주어, 서술어, 목적어, 보어 등)끼리 서로 호응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 성분들이 호응하지 못하면 올바른 문장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비문(非文)인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이번 추석에 나에게 보내진 문자들, 수많은 사람이 주고받아 인터넷을 유령처럼 하염없이 떠도는 문자들 "… 한가위 되세요."는 올바른 문장이 아니다. 이 문장은 주어(모든 인사말에서 생략되었지만, '당신은')와 보어(한가위가), 그리고 서술어(되세요.)가 서로 호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문(非文)이다. 그러다 보니 이 문장은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나보고 한가위가 되라고? 한가위라는 특정 시간(때)은 인간이 만들어낸 무형의 개념이 아닌가? 유형의 인간이 무형의 개념으로 변화할 수 있나? 혹시 죽으면 가능한가? 그렇다면 나에게 한가위가 되라는 이 문자들은 나보고 죽으라는 것인가?' 등등.

시민들이야 개인별로 지식의 정도에 따라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지 못할 수 있다 치자. 혹은 알면서도 남들이 다 그러니까 따라간다 치자. 그렇다고 해서 행정기관까지 그래서야 되겠는가. 행정기관은 시민 개개인보다 영향력이 훨씬 크고 공신력이 있다. 행정기관에서 잘못 사용한 언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맞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하여 행정기관은 개인들보다 더욱 더 언어를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같은 이유로 모든 공무원은 올바른 언어 사용의 최후 보루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이번만으로 그친다면야 얼마나 다행일까. 올해 연말에도 이런 문자는 수없이 날아올 것이다. 내년 설날(추석)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나는 그때마다 '나보고 새해가 되라고? 이게 말이야, 방귀야.' 하거나, '내가 설날(추석)이 어떻게 되지?' 하면서 어이없어 할 것이다. 그렇지만 희망을 놓지는 않겠다. 이 글을 공무원 누군가가 읽어서 올해 말에는 "… 새해 되세요." 대신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연하장을 쓸지 누가 알랴. 이 글을 공무원 누군가가 읽어서 내년 설날에는 "… 설날 되세요." 대신에 "설 잘 쇠세요." 또는 "… 설 보내세요."라고 인사말을 쓸지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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