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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애

수필가·공인중개사

뉴스특보로 연일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고 있다는 기상예보가 있었다. 기상청은 이제껏 겪어 본적 없는 강력한 바람과 비를 몰려 올 것이라는 소식이었는데, 다행히 우리지역에는 큰 피해 없이 지나갔다.

기상예보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김** 통보관. 예보의 적중률이 낮았던 시절, 저녁방송 끝부분 짧은 시간에 그가 진행하는 일기 예보는 인기였다. "오늘은 불쾌지수가 높으니 감정조절에 유념 하세요"라든가, "바람이 몹시 부니 아가씨는 미니스커트를 입지마세요" 하는 특유의 구수한 경상도 말씨로 하는 생활관련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비 오는 날, 기후 탓인지 그의 입담과 떠오르는 것은 그가 자기 인생의 예측은 못 하였을까. 말년에 정치에 입문했다 퇴직금을 모두 잃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와 함께 나의 기억에도 퇴직금에 얽힌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퇴직금' 대개의 사람들은 평생을 몸 바친 직장에서, 자신의 월급 중 일정액 모아 두었던 돈과 사용자 측에서 주는 위로금 형식의 뭉칫돈이다. 가장이 퇴직을 하면 한가정은 한사람의 인생이 아닌 온 가족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20여 년 전, 교원퇴직 붐이 일던 때였다. 당시 교육부장관은 조기퇴직자에게 한시적으로 위로금을 준다고 했는데, 그 금액은 정년까지 근무한 만큼의 보상액이었다. 남편의 동료들도 서슴없이 퇴직을 한다고 했을 때, 남편도 결정을 내렸다. 처음 퇴직소식을 듣고 자의에 의한 일이었지만, 왠지 사회에서 퇴출된다는 일말의 서운함과 둥지의 안전성이 염려되어서인지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떻게 하면 퇴직금을 잘 이용해 볼까 고심을 하며, 부부교사로 퇴직한 손위시누이 내외분과 상의를 했다. 시누이는 퇴직 후 동생의 안위를 위해 연금으로 하라고 했다. 지인이 일시금으로 했다가 사기를 당한 일을 이야기하며 노년 삶의 비루함을 애써 설명하였다. 하긴 내 주변에도 그와 같은 생활을 하는 이가 있기는 있었다.

퇴직한 동료선생님들은 주거를 멀리했어도 간간이 근황은 알 수 있었다. G선생님, J읍에 살던 이야기이다. 그의 부인은 언죽번죽 말도 잘하고 이재에도 밝았다. 선생님이 현직에 있을 때부터 직원부인들 모임을 앞장서서 주선하고, 친목이란 미명아래 작은 돈을 모아 자신이 계주를 했다. 보통의 직원부인들과 달리 돈 씀씀이도 크고, 호탕한 성격인 그녀는 급한 사정이 생긴 이웃들에게 돈을 융통해 주기도 했다. 그 후 사채놀이를 한다는 말은 들었는데, 소식이 끊겼다 전해 온 이야기는 선생님의 퇴직금 전액을 잃어 가족의 고생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때 15년차 공인중개사 활동을 하고 있어서 돈이 되는 부동산을 보는 안목도 익혔던 터, 기상캐스터가 데이터를 보며 태풍의 진로를 예견하듯이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 할 곳을 물색했다. 남편에게는 퇴직금을 일시불로 해 모처(某處)에 투자하기를 권했다. 그런데 나의 의도와 다르게 남편은 퇴직금 총액의 1/2은 일시금 나머지는 연금으로 정했다. 애줄 없었다. 그 후 짚어 보았던 대지위에 우뚝한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남편을 원망했다. 나를 믿고 따라 주었더라면 분명하게 인생 전환이 될 뻔 했는데…,

태풍의 바람처럼 내 삶의 향방은 그렇게 비껴 지나갔다.

푸르렀던 젊음이 가고, 인생을 전환 시키지 못한 아쉬움도 저만치 사라져 갔다. 항간에 '그릇의 종류에 동이와 종지가 있다'고 했는데 '사람에게도 나름의 크기가 있다'고 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소슬바람이 부는 아침 무엇에도 쫒기지 않는 여유를 즐기며, 이것은 퇴직금을 연금으로 했던 남편의 덕분인 것 같다는 생각에 까지 이르니 필경 나의 그릇은 아주 작은 종지였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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