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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표

수필가·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 사무국장

불편했다. 아파트로 차를 몰고 들어올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벌써 몇 달째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 무엇'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집히지도 않는 솜털 가시와 같았다. 없는 듯하다가도 신경을 살짝살짝 건드리며 존재를 드러내는가 하면, 막상 찾을라치면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양 꼭꼭 숨어버렸다. 어떤 날인가는 '그 무엇'의 실체를 밝혀보겠노라고 아파트 정문과 후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찬찬히 살펴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이렇게 있는 듯 없는 듯한 '그 무엇'은 몇 달째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은 채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데, 가을비가 내리는 오늘, 드디어 '그 무엇'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 후줄근한 모습과 마주치는 순간, '저것 때문이었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정체는 바로 "외부차량 진입금지"라고 쓰인 플래카드였다. 그 플래카드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젖어 축 늘어진 채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플래카드가 엄숙한 초병처럼 각 잡고 움직이지 않을 때는 고압적인 모습에 위축되어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다가, 후줄근한 모습을 보는 순간 차단기 앞에 설 때마다 습관적으로 긴장하며 불편해하는 나를 정확히 보게 된 것이었다.

지난여름, 아파트 자치회는 설문조사를 하고 공고문을 붙이는 등 호들갑을 떨더니 아파트 정문과 후문에 차량 출입 차단기를 설치하였다. 차단기 이마에는 "입주민전용"전광판 글씨를 둘러 밤이나 낮이나 희번덕이게 하였다. 이로써도 안심이 안 되었는지 차단기 옆 담장에다가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다. 외부차량 진입금지!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글씨였다. 마치 외부 차량이 들어왔다가는 뭔 일이라도 낼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이제 우리 아파트엔 외부 차량은 아예 진입이 불가하고, 입주민인 나조차도 검문을 받아야만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국가 중요 보안시설이 이럴까. 자치회장은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듯 으스댔다.

살면서 수없이 검문을 당했다. 젊다는 이유만으로 느닷없이 불심 검문을 당할 때마다 꼬투리 잡힐까 긴장하며 불안해하는 나의 소심함이 싫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불편했다. 경찰관이 음주 단속한다고 측정기를 내 입에 불쑥 들이밀 때도 마찬가지로 싫고 불편했다. 정부중앙청사에서 근무할 당시 들어갈 때마다 신분증을 내보이며 허락받기 위해 잠시 멈출 때마저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형태로든 검문당하는 것을-심지어 통상적인 통과 절차에 불과하다 해도- 싫어하고 불편하게 여기는 부류라는 것이다.

이런 내가 이제는 내 집 마당을 들어서면서도 검문을 당하게 된 것이다. 종일 밖에서 긴장해 있다가 퇴근하여 집에서 긴장을 풀고 편히 쉬고 싶은데, 대문간에서 검문당하며 다시 긴장하게 되었으니, 어찌 불편하지 않겠는가. 윗집과 아랫집은 물론 옆집하고도 철저하게 타인으로 살고 있는 삭막한 아파트가 더 삭막해진 것 같았다.

아파트 자치회장에게 따지고 들었다. 차단기 설치야 세태가 그러니 할 수 없다 치자. 그렇지만 '외부차량 진입금지'라며 방문객들을 위협하고 있는 저 플래카드는 뭐냐. 우리 아파트를 왜 이리 삭막하게 만드느냐. 플래카드라도 떼면 좋겠다. 뭐 대충 이런 얘기였는데, 나보다 십 년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자치회장은 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 사장! 생각이 참 특이하네요. 남들은 다 잘했다고 그러던데…"

아아, 나는 어릴 때 살던 시골 동네가 항상 그립다. 그 동네 입구에는 출입 차단기가 당연히 없었다. 외부에서 누가 오든 막는 법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끼리는 어느 집이든지 자유롭게 오갔다. 자연스레 온 동네 사람들은 월남 간 누구한테서 편지가 왔다더라, 누가 어젯밤에 오줌을 쌌다더라 등등 동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서로 다 알고 지냈다. 윗집과 아랫집은 물론 옆집하고도 철저하게 타인으로 살고 있는 아파트와는 사는 방식이 달랐다. 나는 우리 아파트가 만분의 일이라도 그 시골 동네와 비슷하기를 바랄 뿐이다. 정녕 내가 그리도 이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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