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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9.01 14:39:23
  • 최종수정2024.09.01 14:39:23

이재영

증평군수

누구에게나 어느 지역이든 반드시 기억되고 또 의미가 있는 기일(期日)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8월 15일은 광복절로 이날을 기리고 3월 1일은 기미독립운동으로 기념하고 있다.

증평지역에서는 8월 30일을 매우 특별한 날로 기념하고 있다. 바로 증평이 군(郡)으로 독립을 한 날이기 때문이다. 증평군은 일반적이거나 보통의 과정이 아닌 지역의 역량과 군민들의 열의와 의지가 점철되고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돌파한 결과로 지방자치단체를 만들어 낸 것으로 그 과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와 끈기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증평군은 증평읍과 도안면 1읍 1면으로 구성된 지방자치로는 아주 특이하게 구성된 자치단체이다. 그런데 증평읍 이전의 지역은 청안현으로 증평읍과 도안면 그리고 북이면, 내수읍, 오창읍, 초평면, 청안면, 사리면, 원남면을 관할구역으로 하고 있었으며, 지역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투영해 보면 생활권이 하나로 묶여 있는 동일지역이 옛 청안현의 전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리적 배경과 문화와 인식의 흐름은 증평군이 탄생하는 정서적 배경이 되었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형이 될 것이다. 1읍 1면의 특수성은 지방자치로는 가장 효율적인 구조가 돼 주민의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수렴, 결정되고 또 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즉시 나타나는 이상적인 구조가 되고 있다. 특히 규모보다는 내용과 지식이 지배하는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인공지능의 시대에 지방자치를 하기에 최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컴팩트하고 스마트한 지역이 증평이다.

과학기술로 초연결사회가 된 지금은 규모는 그리 중요한 요소가 되지 못한다.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연결성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증기기관으로 통칭하는 1차 산업혁명과 전기 에너지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2차 산업혁명 그리고 컴퓨터에 의한 자동화로 대변되는 3차 산업혁명은 산업의 전개 과정이 어느 정도 규모가 진보의 크기와 방향을 이끌어 주기도 하였으나 초연결성과 초지능성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인 현재는 속도와 범위 그리고 지능이 규모를 초월하는 차원이 다른 시대가 된 것이다.

규모가 무색한 예로 핵잠수함을 들 수 있다. 디젤기관이었다면 300만 갤런의 연료가 필요한 거리를 골프공 크기만 한 우라늄 원료로 단숨에 9만여㎞를 달려 장기간 잠수와 깊은 바닷속 항해가 가능함을 동시에 해결하여 과학기술이 규모와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입증하고 있다.

증평은 군으로 역사는 21년이 되었으나 시간의 흐름을 무색하게 하는 유구한 역사와 자원이 넘쳐나는 지역이다. 도안면은 지역의 이름이 940년 고려 태조 때에 도안현으로 명명돼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름에서 보듯이 도안(道安)으로 길이 편한 교통의 결절지로서 또 문화의 매개로 역할을 제대로 해온 지역이다. 길 도(道)자에 편안할 안(安)지를 쓰는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소월문학관과 붓 명장인 유필무필장이 자리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증평은 1913년에 처음으로 이름이 지어졌고 이듬해에 전국적인 행정구역의 폐합이 이루어질 때 증평면으로 탄생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111년 전의 일로 증평면은 이후에 지역주민들이 끈질긴 노력으로 읍으로 그리고 군(郡)으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읍 승격 당시인 1949년 인구가 2만 명에 육박하였고 충북에서는 영동읍 다음으로 읍이 되었으니 당시에도 그리 만만한 지역은 아니었을 것이다.

증평군의 탄생과정은 그야말로 증평군민들의 의기와 결기가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을 가능케 한 역사적 결정체이다. 증평군민들은 증평읍이었던 1955년에 이미 증평군을 설립하여야 한다는 정연한 사실적 논리로 각종 언론에 그리고 정부 요로에 건의하고 또 주도면밀하게 실행하는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1963년에는 보다 체계화하여 증평지방행정구역변경추진위원회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군 설립을 체계화했다.

1980년대에는 전략을 바꿔 증평시를 위한 조직으로 변경해 시(市)를 향해 설득하고 투쟁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중단없이 어려움을 돌파했다. 지역주민들의 발전에 대한 잠재력과 참여와 응집력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에너지가 돼 엄청난 동력으로 작용했다.

증평 태동에서부터 군 설립까지를 살펴보면 왜 지역에서 군으로 설립을 갈망하였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증평지역은 이미 4세기 중엽인 한성백제 시기에 한성지역 외에서는 유일한 토축산성(土築山城)이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 개국 1등 공신인 배극렴에게 태조가 내려준 식읍(食邑)도 증평이며 묘소도 증평에 자리하고 있다.

시화 역참은 조선시대 역참으로는 손꼽히는 역할을 하여 증평의 토산품인 인삼이 뛰어난 역참으로 인해 임금께 진상할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증평이 이동의 중심으로 문화를 이끌어 가는 지역으로서 역할을 하였다는 증거이며 증평 들노래는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농요를 집대성하고 축제로 승화시킨 거의 유일한 지역이다.

근현대사에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도 증평지역주민들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냈다. 1955년 37사단의 증평 이전과 1956년 한국 의료사에 큰 획을 긋는 역할을 한 메리놀병원과 메리놀시약소를 유치한 것도 지역주민들께서 땅을 희사하고 유치운동을 강렬하게 전개해 이루어 낸 것이다.

전국에 33개소 그리고 충북에 단 3개소밖에 없는 증평단군전은 일제 신사를 불태우고 그 자리에 민족정기가 서려 있는 곳으로 지역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한 것이다.

이미 면이었고 읍이었던 시절에도 증평지역주민들은 군(郡)이자 시(市)로서의 지위를 갖는 실질적인 삶은 살아왔으며 역할을 해 오셨다. 지역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생활 여건이 전혀 다른 지역으로서의 정체성은 군으로 분리 독립해야 한다는 명분과 당위성이 2003년 드디어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일무이하게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군으로 탄생하게 됐다.

그리하여 증평에서는 8월 30일은 역사적이며 지역주민들의 염원과 희망이 이루어진 매우 뜻깊은 날로 군민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올해에는 주민화합과 대통합의 행사까지 곁들여 더욱 의미가 있었다.

올해 8월 30일을 보내면서 증평군은 스마트한 지역으로서 규모를 넘어 주민의 삶의 질은 물론 정주 여건과 인프라가 매력적인 내일의 도시가 될 것이다. 공간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응집력과 정체성, 주인의식이 더욱 옹골차게 자리하고 주민들의 군정에 대한 참여도와 관심도는 한층 성숙해졌다. 이제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하여 제대로 된 지방자치의 롤모델이 되는 20분 도시를 구축해 행정의 서비스를 최적화하고 지역을 경쟁력 있는 멋진 증평군으로 확실하게 키워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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