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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문학평론가·세명대 교수

몇 년 전의 일이다. 그해 겨울 역사를 전공하시는 은사님과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소한(小寒)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날이 제법 쌀쌀했다. 그래서 평소 아끼는 진한 팥죽색 줄이 들어간 도톰한 목도리를 하고 나섰다. 얼큰한 음식을 좋아하던 그 분은 오랜만에 '붕어찜'을 먹자고 하셨다.

대전 모 백화점 근처에서 만나 그 분을 태우고 충북 옥천군 군북면 방아실에 위치한 한 식당으로 향했다. 충북 옥천은 시 <향수>로 널리 알려진 정지용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어 종종 가본 곳이었다. 그런데 방아실에 위치한 그 식당은 대전에서 옥천으로 가는 길이 아닌, 대청호를 끼고 가는 길이었다. 대전 판암동과 식장산 입구를 지나 세천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달렸다. 오랜 만에 겨울의 파란 하늘과 푸른 대청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니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가는 길에 충북 보은 출신인, 조선조 청백리 218인 중 한 명인 충암(沖庵) 김정(金淨) 유적지 이정표도 보였다. 30분 정도 달려 대청호에 위치한 붕어찜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주인은 은사님을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은사님의 단골집임을 알 수 있었다.

붕어찜 주문을 하고, 식당에서 나와 대청호 주위 경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기(寒氣)가 느껴져 식당으로 다시 들어가니 구수한 향이 나는 붕어찜 요리가 나왔다. 씨알이 굵은 붕어가 4마리나 들어 있었다. 목도리를 벗어 식탁 한쪽에 놓은 뒤 시레기가 넉넉히 들어있는 얼큰한 붕어찜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 얼큰한 음식(오징어칼국수, 아귀탕 등)을 좋아한 은사님은 아주 맛있게 드셨다. 은퇴 이후 은사님은 그동안 못 보던 책도 보고, 좋아하는 바둑도 두고, 친구들도 자주 만나 천변을 산책한다고 하셨다.

붕어찜을 다 먹은 뒤 방아실에서 출발하여 대전으로 향했다. 친구와 바둑을 두기로 했다며 가다가 기원(棋院) 앞에 내려달라고 하셨다. 그곳에 도착하여 은사님을 내려 드린 뒤 나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와서 보니 진한 팥죽색 줄이 들어간 목도리를 놓고 온 것이 생각났다. 그 목도리는 오랜 기간 투병생활 끝에 건강을 회복한 20년 지기 친한 후배가, 고맙다며 사준 소중한 선물이었기에 잃어버리면 안 되는 물건이었다. 전화번호를 검색하여 그 식당에 전화를 하니 주인이 상냥한 목소리로 목도리를 잘 보관하고 있겠다고 하였다. 나는 고맙다고 한 뒤 빠른 시일 내에 그 식당에 다시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붕어찜을 먹을 기회가 쉽사리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목도리만 찾으러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기에 차일피일 기회를 엿보았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목도리에 대한 기억도 점점 가물가물해져 갔다.

2년이 거의 되어 갈 무렵 한 지인이 '붕어찜'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때 '붕어찜'과 함께 떠오른 것이 '진한 팥죽색 줄이 들어간 도톰한 목도리'였다. 그때 바로 갔어야 했는데,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목도리를 안 찾으러 오는 줄 알고, 주인이 목도리를 어떻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배에게 미안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지인과 함께 은사님과 식사했던 그 식당으로 향했다. 방아실로 가는 대청호 길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 식당에 도착하여 붕어찜을 주문하며, 혹시 '목도리…' 하니 그 주인아주머니는 생각났다는 듯이 카운터 서랍에서 반듯하게 접은 목도리를 미소를 띠며 건네주었다. 처음에는 바로 오는 줄 알고 그대로 보관하였다가 봄이 다 가도 오지 않아 깨끗이 빨아서 보관해 두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인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하였다. 손님을 늘 정중하게 정성으로 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손님이 놓고 간 물건까지도 정성스럽게 대하는 그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정성스럽게 대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는 모든 사람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다시 찾은 '목도리'를 통해 사람과 물건을 정성스럽게 대하는 법도 배우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도 배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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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규 충북도 경제부지사 "고향 발전에 밀알이 되겠다"

[충북일보] "'고향 발전에 밀알이 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앞만 보며 열심히 뛰었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중심 충북'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충북 음성이 고향인 김명규 충북도 경제부지사는 취임 2년을 앞두고 충북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만큼 매일 충북 발전에 대해 고민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부지사는 취임 후 중앙부처와 국회, 기업 등을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며 거침없는 행보에 나섰다. 오직 지역 발전을 위해 뛴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투자유치, 도정 현안 해결, 예산 확보 등에서 충북이 굵직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견인했다. 김 부지사는 대전~세종~청주 광역급행철도(CTX) 청주도심 통과, 오송 제3생명과학 국가산업단지 조성 추진, 청주국제공항 활성화 사업 등을 주요 성과로 꼽았다. 지난 2년 가까이를 숨 가쁘게 달려온 김 부지사로부터 그간 소회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2022년 9월 1일 취임한 후 2년이 다가오는데 소회는. "민선 8기 시작을 함께한 경제부지사라는 직책은 제게 매우 영광스러운 자리이면서도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와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