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꾸밈없이 순하게 늙은 은발의 남자, 어색한 몸짓이 수줍게도 보입니다. 그러나 곧 마디 굵은 대나무 통에서 뽑아 올린 듯이 회오리쳐 나오는 짙은 회한의 음색이 관객의 가슴을 그대로 관통합니다. 지난 주말, 가수 최백호의 '청춘콘서트 회귀(回歸)'를 관람했지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그는 '봄날을 간다.'를 부르고 나서 어머니가 참 좋아하셨던 노래였다고 술회하죠. 그 말을 듣자마자, 봄 햇살에 살구꽃 화사한 어느 시골 툇마루에서 흥얼거리듯 노래하는 중년의 여인이 정지된 한 컷의 사진처럼 각인되더군요. '봄날은 간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흔히 시간의 덧없음에 대한 한탄의 의미로 다가오지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봄이 아닌, 봄날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어느 하루의 봄날이 그만큼 찰나의 시간처럼 짧기 때문이 아닐까요. 봄날은 참으로 설레듯 아름답습니다. 그런 봄날의 정점에 슬픈 마음이 가만히 밀려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죠. 그 해답을 가수 최백호는 이어지는 노래 '낭만에 대하여'에서 적절하게…
인간은 관계(關係) 속에서 태어나고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처음 접하는 '엄마'와 관계를 비롯하여 생애동안 만나게 되는 가족, 친구, 선생님, 동료, 자녀 및 이웃 등, 많은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자아가 형성되고 사회화 되어간다. 누구나 어떤 집단을 중심으로 해서 삶의 터전을 잡고, 그 속에서 때로는 웃으면서 희열을 맛보기도 하고 때로는 울면서 절망과 좌절을 겪기도 한다. 어느 집단이든 사람에 따라 호(好) 불호(不好)가 존재하고,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류는 다수결(多數決)이라는 제도를 만들어내고 결과에 승복하는 '규칙(rule)'을 만들었다. 물론, 다수의 의견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최선의 방책이라고 할 수는 없고 말하자면 차선(次善)책인 셈이다. 그러나 소수보다는 다수인 편이 실패할 확률이 적기에 다수의 의견을 채택하고 있으며 인류는 아직 그보다 더 좋은 방안을 찾아내지 못했다. 사회적 합의를 중요시하고 승복해야 하는 까닭이다. 최근 전직 대통령들이 연이어 사법처리 되거나 수사대상이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왜 유독 한국에서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자주 발생하는 것일까. 첫 대통령은 '하야(下野)',
[충북일보] 청주산업단지관리공단 전 사무국장 A씨의 수억원대 비리의혹 사건이 불거졌다. 터질 일이 터진 셈이다. 경찰 조사결과 대부분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공단 측은 개인적인 일탈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관리감독 부실이 주요인이다. 이번 기회에 청주산단공 등 지방산단공단 관리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과 함께 대안까지 제시해야 한다. 그동안 청주산단공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지방산단공에 대한 총체적인 관리 부재가 생산한 부정부패 사례다. 물론 충북도가 1년에 한차례 정도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형식적이다. 청주산단공은 지난 2016년 2월 열린 37차 정기총회에서 사무국장의 정년을 만 60세에서 63세로 연장했다. 1955년 11월생으로 그해 정년을 맞은 A 전 국장에게 3년간 더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다. A 전 국장은 지난 2004년 청주산단공 사무국장에 취임했다. 이후 사표를 낸 최근까지 14년 동안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자신의 근무경력 30년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4년의 재직 기록이다. 특혜성 원 포인트 정년연장 덕이다. 지방산단공 문제는 근본적으로 낙하산 인사에서 비롯된
농경시대의 끝자락쯤 되는 내 어린 시절,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농촌의 산하와 하늘 그곳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 그곳 사람들이 들에 나가 허리 굽히고 밭일을 할 때, 농부들이 오일장에 나가거나 돌아올 때, 마을 어귀에서 이웃을 만나 환담을 나눌 때, 개구쟁이들이 골목길을 장난치며 뛰어 다닐 때, 심지어는 주부가 부엌에 나가려고 방문을 벌컥 열 때 느닷없이 맞닥뜨린 것은 화려한 꽃잎처럼 흩날리는 청아하고 처연하기까지 한 뻐꾸기의 울음이었다. 그것은 황금빛 울음이라고 표현한 시인도 있을 만큼 그 소리는 어린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잠깐이라도 뻐꾸기가 울음을 그치면 온통 산하가 텅 빈 느낌마저 들었다. 내가 그 소리와 마주친 특별한 기억, 땀 흘리며 산속을 헤매다가, 산딸기를 따서 입안에 넣다가, 웅덩이에 풍덩 뛰어들고 와당탕대며 한바탕 헤엄을 치고 나오다가 정면으로 딱 부딪힌 그 처연한 황금빛 울음소리여서 온통 내 마음을 흔들어 그것에 심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보다 가장 극단적인 것은 1950년 뜨거운 6월 26일 월요일 전쟁이 터진 것도 모른 채 멀고 먼 시골 학교 길에서 만난 그 소리였다. 그 날, 학교에…
파랗고 잔잔한 물결이 햇살에 물들어 은빛 춤을 추고 있다. 수몰되지 않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학교 운동장을 거닌다. 흘러간 세월을 말해주듯 풍성하게 자라있는 나무들이 나를 감싸주며 위안을 준다. '고향이란 이런 거구나, 포근함을 주는 아늑한 곳'한참을 서서 운동장 바로 앞까지 들어찬 호수를 바라본다. 친구들과 떠들고 재잘거리던 소리가, 좋아라 손뼉 치며 까르르 웃던 웃음소리가, 물안개 피어오르듯 물속에서 솟아오르는 듯하다. 모두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찌 살아가고 있을까· 내게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고향 집은 어떤 모습으로 물속에 잠겨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저 많은 물이 다 빠져 버려, 한 번만이라도 예전 풍경 그대로 되살아날 수는 없을까·'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릴 적 추억이 쌓여있는 그곳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한참을 서성이다, 하얀 연기가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솔향기 폴폴 피워내며 밥 짓던, 해질 녘 고향의 고즈넉한 풍경을 떠올리니 발걸음도 사뿐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연기가 오른 곳에 다다르니, 군고구마 통에서 장작이 활활 타고 있었다. 상상했던 시골의 정취와는 달
충북 사람이 서울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손부터 잡는다. 통성명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화번호도 주고받는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금방 말투부터 달라질 것이다. 남이 아니라는 뜻이다.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형이나 동생처럼 의지하고 살자는 다짐이다. 서울에 사는 동문이 얼마나 되고, 누구는 어디에 근무하며, 누군 돈을 얼마나 벌었다는 따위의 말을 나누게 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특별한 인연인데 만약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나왔다면 기연(奇緣)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들이 대학은 물론 일도 같은 직종에서 하고 있다면 놀라운 일이 분명하다. 그런 인연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6.13지방선거에서 충북교육감 예비후보로 등록한 심의보·황신모 두 사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심 후보는 65세이고 황 후보는 64세이니 한 살 차이다. 그들의 인연은 옛날 청원군 강내면 월곡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심 후보가 1년 선배지만 이웃동네에서 성장했으니 서로가 집안까지 잘 아는 사이일 것이다. 심 후보는 다섯 살 때 천자문을 뗄 정도로 재주가 좋아서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황…
우리는 수돗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 집집마다 고급 정수기가 필수 가전제품이고, 대형마트 식품군 중 생수 판매비중은 여전히 높다. 통계적으로도 국내 수돗물의 직접 음용률은 5% 수준으로 미국의 56%, 일본의 52%에 비해 극히 저조하다. 수돗물은 상수도시스템을 통해 공급하는 물을 말한다. 영국의 의학전문지 브리티시메디컬 저널에 따르면 위생적인 수돗물 공급은 1840년 이래로 가장 중요한 의학적인 진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간의 수명을 30년이나 연장시킨 인류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한 수돗물이 우리나라에서는 유난히 불신이 많고 사랑받지 못한다. '댐에 녹조가 많이 발생하는데, 소독약 냄새가 많이 나는데, 수도배관이 녹슬고 저수조가 더럽다는데' 등 원수에 대한 불안, 녹물과 약품냄새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이는 과거 국민의 불신을 살만한 수질오염사고 라든지, 오래된 아파트의 배관 및 저수조를 고발하는 언론 보도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수돗물 생산 및 공급시스템이 고도화돼 깨끗하고 안전한 수돗물을 공급받고 있는 요즘도 수돗물 불신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최대 공급자인 K-water가 생산하는 수
[충북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개헌의 시기를 얘기하면서 대통령과 지자체장 동시투표 문제를 언급했다. 국회의원 선거는 현행대로 이어가면서 대통령과 지자체장을 동시에 선출하면 상호 견제가 가능한 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 주장대로 이번에 개헌이 이뤄지면 오는 2022년 20대 대선과 민선 8기 지자체장을 동시에 선출할 수 있다. 앞서 2020년 21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면 딱 2년 간격의 징검다리 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지자체장도 중임으로 제한해야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 문 대통령은 4년 중임제로 바꾸고 싶어 한다. 단체장은 3선까지다. 4년씩 3선은 무려 12년이나 되는 셈이다. 5년 단임제는 실패한 시스템이다. 국가예산 편성 과정을 보면 더욱 그렇다. 임기 첫해 대통령은 전 정부의 예산계획을 이행해야 한다. 1~2년차 인사청문회와 맞물려 제대로 된 국정운용이 어렵다.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철학을 반영할 수 있는 시기는 집권 3년차 뿐이다. 4년차가 되면 지지율이 떨어지고 야당의 눈치를 보면서 협치(協治)를 얘기하지만, 내리막길의 대통령의 손을 잡을 야당은 지금까지 없었다. 대통령·지자체장 동시선거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제왕적
[충북일보] 청주국제공항을 모기지로 한 저비용항공사(LCC) 설립 문제가 지역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6·13지방선거와 맞물려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일단 신규 항공사의 법정 면허요건 충족여부에 대한 점검을 강화키로 했다. 시장여건 및 안전, 소비자 편의 등 제반사항도 종합적으로 검토·결정할 방침이다. 신규 사업자들의 진입에 어려움이 예측되는 대목이다. 공항 활성화를 추구하던 충북도 등 지자체나 신규 시장 진출을 노리던 에어로케이 등 후발 업체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앞으로 면허 신규발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유독 항공 산업에만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청주공항 LCC 모기지화 사업은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차 원인은 정부의 승인 거부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 지역경제 활성화 골든타임 실기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자연스럽게 지역정치권의 정치력 부재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항공 산업의 체질 개선을 요구해 왔다. 가장 먼저 신규 항공사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향후 국내 항공운송사업 포화에 대비한 움직임이었다. 항공업계는 이를 심각하게…
공직사회도 발전을 거듭하여 능력과 자격, 성적이 우수한 인재를 우선 채용하는 실적주의로 변천했다. 신분사회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결정 되지만 계약사회에서는 돈과 경제적 이득을 쫓아 계약에 의하여 신분이 결정된다. 공직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 공직에서의 성공여부는 사람을 어떻게 사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나를 발전시키고 키워주는 것도, 나의 공직생활을 실패로 만드는 것도 주변사람들이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과 유대는 공직생활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공직생활 중 일어나는 신변 변화를 상의할 사람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교 선배이든, 직장에서 모신 상사이든, 동료이든, 진지하게 나의 문제를 지적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공직은 때론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 정권이나 제도가 바뀌면서 공무원 신분도 때때로 요동치며, 지위 상승의 기회가 오기도 한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을 수 있는 능력은 늘 갖도록 수련해야 한다. 직장생활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업무량이 많고 적음 보다는 상사와의 관계에서 질책과 괴롭힘을 당하거나 무시로 인하여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경우다. 이런 경우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할 때에는 공직생활에 큰 상처로 남을
[충북일보] 6·13지방선거가 석 달도 남지 않았다. 바둑 이야기를 부쩍 자주 듣게 된다. 선거판이 바둑판을 닮아 그런 모양이다. 세상사는 이치를 다시 생각한다. *** 정치도 세상사 이치와 비슷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두 손 두 발이 모자란다. 24시간이 짧다. 해는 지는데 갈 길은 멀다. 그렇다고 순리를 거스를 순 없다. 한 수만 삐걱하면 천 길 낭떠러지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첫 수를 제대로 둬야할 할 시기다. 각 정당 후보들은 경선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 바둑으로 치면 포석 단계를 거치는 중이다. 시간이 갈수록 네거티브 변칙수가 등장하고 있다. 판세 흔들기도 나오고 있다. 차별화가 어려우니 폭로전도 예상되고 있다. 이해득실(利害得失)의 수는 여러 곳에서 읽힌다. 특히 충북지사 선거판이 관심사다. 그중에서도 이시종 지사의 패에 관심이 간다. 충북도청 전직 실·국장들이 6·13지방선거에 잇따라 등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 나선 이들은 민선 6기 요직을 지냈다. 모두 시장·군수선거에 도전하고 있다. 이 지사와 정당도 같다. 이 지사와 한배를 탄 모양새다. 일단 이 지사에게 유리해 보인다. 이 지사의 3선 도전에 천군만마라
꽃샘추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주말을 맞았다. 우리 부부는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외출준비에 들어갔다. 물과 모자를 챙기며 부산을 떠는 가운데 전화벨이 울렸다. 큰언니였다. 등산 계획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도 좋다며 같이 가자고 부추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계획에도 없었던 대청댐으로 봄 마중을 나갔다. 물길을 따라 걷는 길에는 산수유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다. 꽃다지도 땅바닥에 찰싹 붙어 꽃대를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좀 더 따뜻할 때를 기다리며 개화開花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꿈을 향하여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에게 좋은 기회가 오는 것이며 행복이라는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봄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둘레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이 봄처럼 순하다. 나도 애써 순한 표정을 지으며 호수의 풍경을 둘러본다. 멀리 보이는 동네와 도로, 그리고 흐르는 물이 가슴에 안긴다. 보슬비처럼 촉촉하게 스미는 익숙한 감정을 가슴으로 느낀다. 그런 것이었구나! 피를 나눈 언니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은 바로 고향을 보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언니와 나란히 걸으며 세월
우리 민족은 위대하다. 어떻게 된장 속에 넣어 오랫동안 묵혀 음식을 만들고 먹을까· 그 지혜가 새삼 놀랍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유목적인 수렵문화가 발달한 고구려에서는 오래 묵힌 음식이 별로 전해지는 것이 없지만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은 주로 신라에서 각종 어류의 저장식들은 백제에서 널리 애용되고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우리 음식사에서 묵힌 또는 삭힌 음식은 한국 고유의 음식문화라 할 수 있다. 발효시켜 맛이 나는 묵힌 음식의 발효식품은 전라도의 홍어, 함경도와 강원도 등의 가자미식해, 경상도의 대두콩잎 저린 것들과 같이 전국적으로는 김장김치가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깻잎장아찌, 고추무침, 청국장(淸麴醬) 등 묵힌 음식들은 추억 또는 향토음식으로 통한다. 홍어나 청국장은 상온에서 삭힐 수 있음에도 우리 조상들은 볏짚에 있는 유익한 균(納豆菌)을 이용해 맛있는 음식을 발견했다. 그 냄새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향이 아주 강하지만 즐겨 먹는 사람들은 "그 냄새가 역겨워도 먹을 때면 고소, 구수하다 등 실로 독특한 맛"이라 평한다. 가히 그 냄새만으로도 음식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연상시키는 삭힌 음식들은 청국장과 함께 사찰음식으로 삭힌 콩잎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마지막 공판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에게 사형이 선고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안중근 의사의 두 동생을 급히 여순(旅順)으로 보내 다음과 같이 일렀다.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의 대한매일신보와 일본의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는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안중근 의사는 항소를 포기하기로 결심한 뒤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며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自敍傳) '안응칠 역사'는 1909년 12월 13일에 쓰기 시작해서 1910년 3월 15일에 끝마친 것으로, 출생에서부터 의병 활동과 하얼빈 의거, 그리고 여순에서 사형 선고를 받기까지의 옥중생활을 기록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자서전을 끝마친 뒤 3월 15일부터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쓰기 시작했다. '동양 평화론'은 안중근 의사의 사상을 대표하는 것으로, 항상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리기 쉬운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의 세 나라가 중심이 돼 여순과 같은 분쟁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에…
[충북일보] 속리산 법주사 일대 상권이 쇠락의 길을 걸은 지는 오래다. 충북도와 보은군 등이 나서 대책을 강구했지만 허사였다. 옛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일대 상권 활성화에 청신호가 켜졌다. 2018 행정안전부 주민주도형 골목경제 활성화 공모사업에 보은군의 '속리산으로 떠나는 추억과 힐링여행'이 최종 선정됐기 때문이다. 절호의 기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행안부에 따르면 이 사업은 '정이품송~오리숲~법주사'를 잇는 상권 활성화 사업이다. 속리산면 사내리 일원 약 2만5천㎡(7천562평) 골목상권에 모두 10억 원(국비5억, 지방비 5억)이 투입된다. 이곳을 명품관광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번 공모사업은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충북에선 보은군이 유일하다. 보은군은 이 사업을 통해 각종 콘텐츠개발 및 마케팅강화에 나설 예정이다. 이 사업을 속리산관광 재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 1980년대 영광 재현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 다시 법주사 문화재 관람료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속리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가장 원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선 아무
해가 바뀌면 사람들이 달력을 펼쳐보며 기념일들을 살펴보고 생일을 기록하듯이, 하늘과 날씨를 바라보는 기상인들 에게도 생일과 같은 날이 있다. 날씨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달력에 큰 동그라미를 그려놓게 되는 날, 3월 23일 바로 세계 기상의 날이다. 이날은 세계기상기구(WMO,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의 창립 협약이 발효된 날로, 1960년 3월 23일을 '세계 기상의 날'로 제정하고 1961년부터 이 날을 기념해 오고 있다. 기상의 날은 기상과 관련하여 각 나라 간 협력의 의미를 다시금 인식하게 하고, 그 발전을 기원하기 위한 것으로 매년 시대에 따른 기상관련 주요 관심사를 주제로 정하고 있다. 과거 기상의 날 주제를 보면 그 시대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1990년대에는 자연재해 경감, 경제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기상업무와 같이 주로 사회·경제적 측면의 주제였으나, 최근에는 우리가 마시는 공기, 당신의 행복을 위한 약속, 우리의 미래를 견인하는 기상·기후·물과 같은 건강과 미래를 주제로 전환되면서 날씨기반의 복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올해 기상의 날 주제는 '날씨
시간은 꼬리도 없이· 잘도 헤엄친다. 벌써 새해를 맞고도 두 달이 어제로 흘러갔다. 성급한 초봄이 겨울의 끝자락에서 길을 잃고 주춤거린다. 아직은 칼칼한 월문리의 아침이 눈을 뜬다. 난로 위에서는 생강과 계피를 넣은 주전자가 끓고, 꿀꿀이는 난로 앞에 배를 깔고 엎드려 시간을 잊고 있다. 산을 향해서 난 거실 유리창 앞에는 햇살이 수없이 많은 발을 들이 밀고 있다. 나는 창가에 흔들의자를 놓고 햇살을 쬐며 『호모데우스』를 펼친다. 내 옆엔 철이와 영이가 엎드린 채 꼬리를 흔들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다. 컴퓨터 유트브에선 쇼팽의 녹턴이 흐른다. 거실에 풀어진 쇼팽의 선율이 허공을 가득 채우며 떠돈다. 하루가 아다지오 보폭으로 걷기 시작한다. 창으로 넘어오는 햇살의 꼼지락 거리는 발가락을 눈으로 만지고 있는데, 피지에서 문자가 날아든다. 도원리 언니다. 피지로 어학연수를 간 언니가 이곳의 안부를 묻는다. 육십이 다 된 나이에 학생비자로 먼 이국땅에 가서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언니가 마냥 부럽고 또 대단해 보인다. 그곳의 날씨와 풍경들과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톡으로 보며, 새삼 지구촌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언니는 시험지를 사진 찍어 톡으로 보내온다. 17문
일요일 새벽 전화벨이 울린다. 동도 트지 않은 이 시간에 무슨 전화일까. 혹시 부모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얼른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받으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온다. "애비야, 오늘 뭐하니!" 별일 없으면 원주에 있는 절을 가자고 하신다. 내려앉은 가슴을 추스르며 새벽부터 왠 절이냐고 물으니 그냥 오래 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단다. 평소 다니던 절을 가까이 두고 왜 원주에 있는 절을 가자고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급하면 동생과 함께 다녀오라고 해도 나와 함께 가시겠단다. 무슨 이유일까.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소풍가는 어린아이처럼 밝게 웃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다. 둘이서 떠나는 여행길, 따사로운 햇살아래 노란 개나리의 꽃망울들이 희미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소중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가 보다. 부처님을 뵈러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안았다. 남제천 톨게이트를 돌아 제천방향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기우뚱 하더니 뒷바퀴에서 탱크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펑크였다. 우선 급한 대로 견인차를 부르고 어머니와 나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첫 주 월요일이다. 입학식 후 '흥부전'을 공연 해 달라는 증평초병설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좀 먼 곳이라 이른 아침 재능기부를 하기 위해 출발했다. 교문 안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소품을 챙겨 들었다. 강당을 향해 가다가 앞서가는 이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여 눈여겨보았다. 새 옷에 새 신발을 신고 엄마의 손을 잡고 폼 나게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입학생인 모양이다. 그 자태가 참으로 귀엽고 앙증스러웠다. 그 아기가 생활 할 유치원이 활기찬 웃음꽃이 활짝 필 것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담당 선생님의 안내로 강당으로 들어서니 입학식장 정면위에 '힘찬 새 출발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반겨주었다. 입학생과 학부모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글귀가 내 가슴을 마구 뛰게 했다. 아가와 엄마들이 얼마나 고대하던 입학식인가. 새학기, 새학년, 새교실, 새친구, 새담임선생님, 새가방에 새학용품을 챙겨 넣고 손꼽아 기다렸던 그들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고 어설픈 긴장 속에 새로운 환경으로 옮겨진 아가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즐겁게 뛰어놀고, 공부하는 가운데 호기심의 천국에서 점
소환조사를 받기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들어서는 이윤택의 모습이 TV에 떴다.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던 긴 단발머리를 짧게 정리해서 그런지 피둥피둥한 얼굴이 성폭행 혐의에 시달리고 있는 피의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눈을 뜨고 있는 내내 대한민국의 모든 욕을 배부르게 먹고 있는 터라 욕살이 통통히 오른 것일 수도 있겠다. 사죄드린다는 말을 하긴 했다. 그러나 성추행, 성폭행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성범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피해자들에게 사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너희들이 피해를 당했다며 사과하라 떼를 쓰니 선심 쓰듯 '옛다 사과' 한마디를 던져 준다는 말인가. 이윤택은 자신의 성폭력 가해 폭로가 나온 뒤 마련했던 지난달 공개사과 기자회견을 미리 '리허설'했다고 한다. 감고 있던 두 눈도 공손히 모았던 두 손도 모두 리허설을 거쳤다는 얘기다. 기자회견 이틀 뒤 연희단 거리패에서 상임 연출을 맡았던 배우 오동식씨는 "단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리허설한 것"이라며 그의 가증스러움을 천하에 폭로했었다. 기자회견이 짜여 진 각본대로 연출된 연극이 아니었냐는 의혹에 대해 그는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할 때 최선을 다해 준비…
[충북일보] 23대 청주상공회의소 회장에 이두영 ㈜두진건설 회장이 취임했다. 청주상의는 지역 내 상공인과 기업인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종합경제단체다. 기업구조 개선과 지역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청주시와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 괴산군, 증평군 등을 관할지역으로 한다. 누가 뭐래도 충북을 대표하는 경제단체다. 청주상의에는 제조업을 비롯해 유통, 물류, 서비스 등 다양한 업종의 회원사가 있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소상공인까지 규모 면에서도 각양각색이다. 회원사 하나하나만 보면 분명히 충북 경제의 중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주어진 무게만큼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소상공인이나 영세기업들의 참여가 미진했다. 회원사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도움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 상의에 각인된 관변단체 이미지 영향이 크다. 이제 변해야 한다. 청주상의가 앞으로 할 일은 참 많다. 이 회장은 취임사에서 "기업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선진 경영문화와 규범을 확산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사회 전반에 퍼진 기업에 대한 부정성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옳은 강조다. 하지만 청주상의가 관변단체로 남아선 별로 희망이 없다. 높아진 위상만
'직지(直指)'는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유산이다. 고려 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찍은 불서 중 하나다.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발명보다 78년이 앞서는 것으로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게다. 왜 직지라는 이름을 얻은 것일까. 불교 고승들의 언행을 모은 것이라는데 직지심체요절을 줄여 이같이 부른다. 직지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에서 나온 말이다.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보면,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라는 뜻이다. 직지가 태어난 고려 시대 가람 흥덕사(興德寺) 터가 찾아진 것이 33년 전 1985년 10월이다. 영원히 찾지 못할 뻔했던 절터의 발견은 기적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 흥덕사지의 발견은 학계의 오랜 숙원이기도 했다. 필자도 전문가들과 더불어 수년간 인근의 절터를 샅샅이 뒤지기도 했다. 청주 인근의 절터나 마을 지명이 '흥'자가 들어가는 곳이라면 달려갔다. 그래도 흥덕사 절터를 찾지 못했다. 절터가 찾아진 것은 운천동일대의 택지개발이 한창일 때다. 청주대학박물관은 운천동 모퉁이에서 이름 없는 작은 절터를 발굴 중이었다. 그런데 충북도문화재과로 한 시
2차 퇴출자가 게시되고 난 이후 저승사자들의 태도도 변했지만 강림의 태도가 많이 변했다. 퇴출자 선별계획이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도도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사자들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었었다. 특히 사자들이 전체 모이는 자리인 회의나 교육시간에는 그의 빛나는 외모와 진행 매너가 그를 더 돋보이게 했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사자들끼리 나누는 대화에서도 그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었다. "강림차사는 못하는 게 도대체 뭐야?" "그러게.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니까." "맞아. 얼굴이 잘 생기고 재주가 뛰어나면 머리가 좀 둔하던지. 이건 뭐 다 가졌으니." "그러게 말일세. 우리 같은 평범한 사자들은 언제 저런 단상에 서 보겠나." 많은 사자들이 그를 칭찬하고 부러워하면서 선망하는 동안, 아니 정확히는 퇴출자 선별계획을 실행하면서 조금씩 그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여러 사자들을 몰고 다니면서 자신의 세를 과시하는 듯 보였다. 어쩌면 그를 따라다니는 사자들이 그를 우쭐대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 강림차사님만큼 잘 할 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무슨 그런 말이……." 강림차사가 낯간지러운 칭찬에…
직장내 위계에 의한 성희롱를 다룬 영화로 1994년 미국영화중에 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직장내 성희롱을 남자가 아닌 여자가 가해자로 나온다는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대강의 줄거리는 탐 샌더스(마이클 더글라스)는 유능하고 촉망 받는 인재로 곧 부사장으로 승진될 예정이었으나, 그런 예상과는 달리 그 자리에 메리더스 존슨(데미 무어)이 그의 상사로 부임하게 된다. 둘은 결혼전 연인관계였다. 부임후 메리더스 존슨(데미 무어)은 사무실로 그를 불러 유혹하는데 주인공은 그녀를 뿌리치고 그 자리를 도망치듯 떠난다. 그런데 다음날 메리더스는 탐에게 성푝행을 당했다고 회사에 알리고 고소를 한다. 이에 탐은 자신과 가정을 지키고 결백을 밝히기 위해 역고소를 하며 힘들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기존의 성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을 거꾸로 설정해 일반인에게 조직내 성희롱은 단순히 성적 공격이 아니라 권력관계에 의한 강요가 문제라는 것을 알리고자 했던 것 같다. 단순히 성적 행위나 남녀관계로 보는 일반의 비난에 대해 영화는 "성폭력은 섹스가 아니다, 권력이다."라고 말한다. 조직내 권력을 앞세운 폭력인 것이다. 지
봄입니다.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산수유며 매화나무에 혓바닥 내미는 움들을 보노라면 괜히 가슴이 뜁니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이 부드럽게 감싸 안습니다. 이럴 때면 눈을 감아봅니다. 두런두런 일어서는 생명의 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들판에 보리며 마늘의 시퍼런 입사귀가 솟구쳐 오릅니다. 포로롱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이 참 따뜻합니다. 벌써 이만큼 봄이 왔는데도 한참동안이나 봄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봄이 지난 뒤 봄을 아는 아둔함으로 세상을 삽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이 때에 맞춰 사는 것인데 요즘은 하루하루를 가늠하지 못한 채 살아 왔습니다. 번듯하게 세상에 당당히 살고자하지만 매번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습니다. 봄 햇살 받으며 뒤 돌아보니 매번 허우적거리며 실수도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내 모습이 저기서 걸어오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한 것 같습니다. 며칠 전까지 외투며 속옷을 껴입고 살았는데 요 며칠 따뜻한 바람이 부니 벌써 여름 걱정을 합니다. 짧아진 봄이 매번 아쉽기만 합니다. 눈뜨기 어지러운 하늘에서 꽃비가 내립니다. 살며 기다리는 것들이 왜 이리도 후딱 지나가는지 야속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게 사는 게지요.
[충북일보] 산과 들이 펼쳐진 청주 낭성면 추정리에 마당 가득 항아리가 늘어서 있다. 천여 개의 크고 작은 항아리 근처에는 구수하게 익어가는 장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정겨운 풍경이 벌써 맛있는 기억을 되살린다. 전순자 대표의 옥샘정은 1995년 청주 금천동에서 선식 가게로 출발했다. 곡물가루 등을 취급하며 메주와 고춧가루에도 관심을 가졌다. 알음알음으로 주문하는 가정에서 원하는 대로 장을 담가준 것이 옥샘정의 시작이다. 더 맵게, 혹은 달지 않게, 각자의 입맛에 맞춰 장을 담가 주며 입소문이 났다. 몇 번의 이전 끝에 2012년 지금의 추정리에 완전히 정착했다. 서늘한 기온과 맑고 풍부한 물이 장 담그기에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씨간장으로 숙성하는 옥샘정의 간장은 진하고 깊다. 온전한 콩이 한 알도 들어가지 않은 시판 간장과는 색부터 향까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십여 가지가 넘는 첨가물이 재료로 쓰인 시판 간장과 달리 옥샘정의 원재료는 국산 콩, 국산 천일염, 정제수로 간결하다. 작은 항아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뚜껑마다 날짜와 이름이 쓰여있다. 매년 초 이곳에 찾아와 담그는 손님들의 장이다. 햇볕과 바람 등 숙성을 위한 관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청주에서 자궁출혈 증상이 있는 임신 15주차 임신부가 병원을 전전하다 신고 접수 2시간 만에 수술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3일 충북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오전 5시께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서 "임신 15주차 산모인데 복통이 심하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119 구급대는 임신부가 하혈과 함께 복통을 심하게 호소하는 등 위급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구급대는산모를 흥덕구의 한 산부인과로 이송했으나, 응급 수술이 필요하단 이유로 상급병원 이송을 권유했다. 구급대는 청주권 주요 병원 6곳의 수용 가능 여부를 알아봤지만,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다며 이송을 모두 거절했다. 소방당국은 충북 권역까지 넓혀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수소문 했다. 이후 진천의 한 병원에서 산모를 수용할 수 있단 답변을 받았고 119 신고 접수 2시간 만인 오전 7시 10분께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당시 산모는 자궁출혈이 심해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매우 긴급한 상황이었다"며 "안타깝게도 태아는 사망했다"고 말했다. 현재 산모는 수술을 받은 뒤 안정을 되찾았다. /
[충북일보] 오곡이 풍성한 추석이 다가왔다. 누구나 풍요로울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손을 잡아야 주어야 할 이웃이 많다. 이런 이웃을 위해 추석 연휴에도 나눔과 봉사를 말없이 실천해 온 '키다리아저씨'가 있다. 30여년간 일상의 나눔을 이어오고 있는 최종길(48) LG에너지솔루션 오창2 업무지원팀 책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중학생때인 15세부터 일찌감치 나눔의 의미를 알고 몸소 봉사를 실천해오고 있다. 최 책임은 "당시 롤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보육원에서 체험활동을 온 5살짜리 아이를 케어했던 적이 있다. 스케이트를 가르쳐주고, 쉬는 시간에 품에 안겨 잠든 모습을 보며 아이의 인생을 바라보게 됐다"며 "당시에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옷을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5살 아이와의 만남 이후 그의 시선은 달라졌다고 한다. 성인이 돼 원료 공장에 입사했던 그는 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단순히 돈만 후원하는 것이 아닌 직접 찾아가 아이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할머니와 손주 두 명이 사는 조손가정이었다. 당시 할머님을 설득해 아이들과 하루종일 놀이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