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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9.24 15:01:02
  • 최종수정2024.09.24 15:01:02

윤진영

세명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아이 엄마에 대한 첫인상은 몹시 지쳐 보인다는 것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대충 입은 옷차림, 외모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둘러업고 온 남자아이는 여기저기 밥풀이 붙은 얇은 내복만을 입고 있었는데, 아무리 자가용으로 오간다고 하더라도 한겨울에 5살 아이에게 내복만 입혀 외출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상담실을 찾은 이유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엎드린 채로 자동차를 굴리거나 좋아하는 숫자 퍼즐을 맞추며 보낸다고 했다. 의미 있는 대화는 거의 불가능했고 TV에서 들은 말을 혼잣말처럼 웅얼거릴 때가 있다고 했다. 병원 진료를 제안했고, 아이는 언어와 사회성을 포함한 전반적인 발달이 심각하게 지연된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이 엄마는 유명 잡지사의 기자로 근무하며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연년생으로 남매를 출산하고 키우면서 삶이 달라졌다고 했다. 남편은 늘 바빴고, 친정 식구들은 모두 먼 지방에 살고 있어 육아에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특히 둘째 아이는 병치레가 잦아 하루가 멀다하고 병원을 드나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엄마는 결혼 전의 생활이 그리웠다고 했다. 마감에 쫓기며 기사를 쓰고,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사회와 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밤새 토론을 이어갔던 시간들이 좋았다고 했다. 자신에게는 엄마로서 그리고 주부로서의 삶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점점 우울해졌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아이들을 챙겨 먹이는 것조차 겨우겨우 해내는 정도라고 했다. 엄마에게는 세심한 양육과 따뜻한 보살핌을 제공할만한 에너지가 없었던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엄마가 갑자기 디스크 수술을 받게 되면서 아이들은 친정 식구들이 있는 지방으로 보내졌고, 한 달 후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둘째 아이는 더욱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놀이치료를 받으면서 아이는 점점 좋아졌다. 엄마와의 놀이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말도 늘어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어린이집에서도 친구들이 내미는 손길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이의 호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엄마의 변화였다. 엄마는 상담을 받으면서 자신의 정서 상태와 양육 방식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스스로 달라지기 위해 애를 썼고, 엄마의 노력은 아이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아이는 반응성 애착장애(Reactive Attachment Disorder)에 가까웠던 것 같다. 반응성 애착장애는 주요 양육자와의 애착 문제로 인해 사회적 관계 형성과 정서 발달에 손상이 생기는 장애를 일컫는다. 주로 영유아기 동안의 학대나 방임과 관련되지만, 돌봄과 위로, 관심이 심각하게 결핍된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아이의 문제가 오로지 엄마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동일한 환경에서 자란 한 살 위의 누나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양육자와의 안정적인 애착 관계가 필수적이다. 양육자의 우울증과 같은 정서 상태는 민감성과 반응성을 손상시키고, 결국 아이와의 애착 형성에 핵심적인 충분한 관심과 돌봄, 애정과 보살핌을 제공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나도 복잡하고 바쁜 요즘 시대에 엄마 개인의 노력만으로 행복해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엄마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은 남편과 가족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주제일 것이다.

※ 본 글에 언급된 이야기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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