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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애

수필가

가을비가 내렸다. 천천히 조용한 걸음으로 오면 좋으련만 길고 지루했던 여름을 서둘러 몰아내듯 극한호우로 쏟아졌다. 도심 침수 피해도 속상하지만, 수확을 앞둔 들판으로 흘러드는 붉은 흙탕물을 보려니 안타깝기만 하다. 대지를 한바탕 뒤흔든 비에 골목집 담장 아래 피던 채송화들도 목이 잠겼다 나온 모양이다. 줄기들이 흙물을 뒤집어 쓴 채 담벼락을 따라 기어가듯 누워있다. 그런데 꽃이 피었다. 짓무른 잎을 매단 줄기 끝을 세워 하늘을 향해 여린 꽃잎들을 팽팽하게 펼치고 있다. 더러 찢어지고 상처 입었지만 노랗고 빨간 꽃 빛 만은 맑고 환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그 모습을 화면에 담고자 쪼그리고 앉았다. 그렇게 툭 털고 일어선 작은 꽃이 한없이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장마철에는 잎이 무르고 불볕 아래서는 목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견디면서도 아침이면 해맑게 꽃을 피우는 채송화를 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돈다. 장독대 아래 돌 틈 같은 구석진 자리나 화단 가장자리, 담장 아래 가장 낮은 곳에서 피고 지면서도 오뚜기처럼 일어서는 그 작은 꽃, 허리를 구부리고 무릎을 굽혀야만 가까이 얼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곳에 살면서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그 꽃이 좋다.

문득 캄보디아 톤레사프 호수에서 만났던 채송화가 떠오른다. 짧은 학회 일정 끝 잠시 들렀던 톤레사프 호수는 메콩강 지류에 조성된 가장 큰 호수이다. 우기에는 메콩강으로 흘러드는 톤레사프강이 역류하며 주변 토지와 숲이 침수되어 호수는 더욱 넓어지고 수심도 깊어진다. 이곳에는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잇는 주민들이 모여 사는 수상가옥들이 호숫가를 따라 이어져 있다. 그 중엔 우리가 잊을 수 없는 베트남 난민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이 북베트남에 함락되자 작은 무동력 보트를 타고 조국을 떠나는 선상난민들이 이어졌다. 베트남 통일 정부는 나라가 어려울 때 조국을 떠난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캄보디아 또한 그들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톤레사프 호수 위에 선상집을 짓고 산다. 물을 따라 흘러 다니며 살기에 거주지가 정해져 있지도 않다. 모든 삶을 배 위에서 영위하기에 호수는 그들에게 삶의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역사를 들을 땐 한없이 삶이 고단하게 느껴지면서도 스치듯 수상가옥들을 지나며 가슴이 뭉클했다. 그곳이 어디든 머문 자리에 두 발 딛고 살아내야 하는 게 인간이 지닌 숙명인지도. 빨랫줄에 걸린 아이 옷과 어른 옷이 바람에 다정하게 팔랑거렸다. 해먹에 앉아서 혹은 누워서 활짝 웃는 아이들의 모습, 배 끝머리에 납작 엎드려 졸고 있는 강아지, 그리고 집 집마다 기르는 화초들이 따뜻했다. 어느 집은 잎 푸른 작은 나무들을 키우고 어느 집엔 키 낮은 풀꽃들이 피기도 했다. 배가 모퉁이를 돌아갈 무렵 나도 모르게 반가워 '어머나'라고 낮게 소리를 냈다. 나무 벽 아래 놓인 투박한 옹기에서 붉은 채송화가 무리 지어 피고 있었다. 순간 코끝이 찡했다. 그들의 삶이, 메마르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끝내 줄기 끝에 꽃을 피워 올리는 채송화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석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천성을 가졌다지만 그 천성이란 환경에 적응하며 몸에 새겨진 기억들이 만든 것이리라. 물 위에서 살다 물 위에서 삶을 갈무리해야 하는 그들에게 뿌리내릴 땅이 생기길 간절하게 기도한다.

선선해진 기운 속, 가을볕 아래 채송화는 또 내일을 이어갈 씨앗을 품느라 분주하겠다. 지극히 낮은 곳 작은 영토 안에서도 조용히 빛나는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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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문화에 모두가 함께 할 수 있기를"

[충북일보] 오곡이 풍성한 추석이 다가왔다. 누구나 풍요로울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손을 잡아야 주어야 할 이웃이 많다. 이런 이웃을 위해 추석 연휴에도 나눔과 봉사를 말없이 실천해 온 '키다리아저씨'가 있다. 30여년간 일상의 나눔을 이어오고 있는 최종길(48) LG에너지솔루션 오창2 업무지원팀 책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중학생때인 15세부터 일찌감치 나눔의 의미를 알고 몸소 봉사를 실천해오고 있다. 최 책임은 "당시 롤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보육원에서 체험활동을 온 5살짜리 아이를 케어했던 적이 있다. 스케이트를 가르쳐주고, 쉬는 시간에 품에 안겨 잠든 모습을 보며 아이의 인생을 바라보게 됐다"며 "당시에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옷을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5살 아이와의 만남 이후 그의 시선은 달라졌다고 한다. 성인이 돼 원료 공장에 입사했던 그는 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단순히 돈만 후원하는 것이 아닌 직접 찾아가 아이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할머니와 손주 두 명이 사는 조손가정이었다. 당시 할머님을 설득해 아이들과 하루종일 놀이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