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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9.22 17:48:17
  • 최종수정2024.09.22 17:48:17
[충북일보] 햅쌀을 출하할 시기에 농민들은 다 익은 벼를 갈아엎는 등 항의 시위를 벌였다. 충북지역 농민들은 지난 19일 청주시 오송읍 들판에서 '논 갈아엎기 투쟁'을 벌였다.

정부는 농민들이 주장한 요구사항을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 쌀 생산과 소비의 불합리와 모순이 왜 생겼는지부터 분석해야한다. 정부가 늘 쌀을 매입해주면 농민들은 생산을 줄일 이유가 없다. 기존의 농업의 기조를 바꿀 필요가 없다. 쌀값 파동은 농업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생기는 현상이다. 지금 상태론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햅쌀 10만t을 가축용 사료로 공급할 계획이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최근 열린 당정회의에서 쌀값 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올해 생산되는 쌀 10만t 이상을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했다. 격리의 내용이 사료용 처분이라고 한다. 농민들이 피땀 흘려 재배한 쌀을 가축에게 먹이는 건 상식에 어긋난다. 게다가 막대한 세금 낭비를 유발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가 햅쌀을 비싼 값에 사들여 10분 1 정도의 헐값에 사료로 되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모순이다. 그러나 이게 현실이다. 쌀 정책의 불합리와 모순을 제대로 보여준다. 다 아는 것처럼 한국인의 쌀 소비량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벼 재배면적은 그렇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매년 만성적 공급과잉 상태를 빚고 있다. 거의 매년 수확기에 산지 쌀값이 폭락하는 사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만성적 과잉생산 구조 때문에 반복되는 나쁜 현상이다. 쌀값 폭락 문제는 이제 다시 살펴봐야 할 사안이다.

지난해 국민 1인당 평균 쌀 소비량은 56.4㎏이다. 통계청이 조사를 시작한 1962년 이래 가장 적다. 올해 쌀 소비량은 지난해보다 10% 정도 더 줄 것이란 예측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인당 쌀 소비량은 1991년 116.3㎏에서 2022년 56.7㎏으로 줄었다. 생산은 정반대다. 올해도 예년에 보기 드문 풍년이다. 생산 과잉은 쌀값 폭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80㎏당 21만7천552원 하던 산지 ㉻값는 현재 17만7천740원까지 떨어졌다. 정부도 매년 쌀 수매를 늘리고는 있다. 하지만 가격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해 공공 비축용으로 매입한 쌀만 40만t이다. 이후 11월과 올해 세 차례에 걸쳐 20만t을 추가 수매했다. 그런데 매입한 쌀은 헐값에 되팔 수밖에 없다. 정부가 특별 처분으로 시중에 내놓은 쌀만 14만t 규모다. 쌀은 남아돌지만 식량자급률은 46%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밀의 경우 국내 연간 소비량은 250만t이다. 생산은 10만t에 불과하다. 소비량의 96%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콩·보리 등 다른 곡물의 생산과 소비 상황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농업 정책을 전환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남아도는 쌀 대신 다른 곡물의 생산을 늘리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국민 식습관을 분석하고 전 세계적인 곡물 수급 상황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대처해야 한다. 쌀 생산 정책은 과잉생산에서 적정생산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정부가 감산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을 펴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재배면적 신고제'나 '지역별 감축면적 할당'으로는 부족하다. 쌀 생산 위주의 농업 구조를 바꿔야 농업의 자생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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