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창문의 크기만큼: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

  • 웹출고시간2024.09.22 14:59:03
  • 최종수정2024.09.22 14:59:03

홍승표

원남초등학교 학교장 (교육학 박사)

출근하면 업무용 컴퓨터를 켠다. 신문스크랩(충청북도교육청 뉴스 서비스)을 보고 우리 학교 홈페이지를 살펴본다. 업무포털에 로그인한다. 그리고 메일을 확인한다. 거의 매일의 일상이다. 그다음은 자주 사용하는 몇 개의 상용 메일도 확인한다. 가끔 암호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로그인 실패' 대신 '로그인 정보를 확인해 주십시오'라는 문구가 나온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무엇인가에 '실패하였습니다'라는 표현보다는 '정보를 확인해 주십시오'라는 표현, 참 세련된 표현이다. 어떤 상황에서 표현의 방법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물 잔에 '물이 절반이나 남아 있네'와 물 잔에 '물이 절반밖에 안 남았네!'라는 표현처럼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하곤 한다.

빨간색 안경을 끼면 세상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색 안경을 끼면 세상이 파랗게 보인다. 또 세모 모양의 틈으로 밖을 바라보면 세상은 세모로 보이고, 네모 모양의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세상은 네모로 보인다. 어떤 틀(frame)을 통해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프레이밍(framing)은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심리학 등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에서 어떤 사건에 대한 여론이나 해석의 틀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동일 상황을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그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의사결정, 결과가 달라지는 현상을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라 한다.

프레이밍 효과의 대표적인 실험 중 하나는 600명의 사람이 질병에 걸렸을 때 사람들이 어떤 치료법을 선택할지에 관한 실험이다. A 치료법을 택하면 200명이 생존할 수 있다. B 치료법은 환자 전체가 살 수 있는 확률은 33%이고 아무도 못 살 확률은 67%이다. 이 중 A 치료법을 선택한 사람이 72%였고, 나머지 28%의 사람은 B 치료법을 선택했다. 똑같은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C 치료법은 400명이 죽고, D 치료법은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은 33%이고 모두 죽을 확률이 67%라고 했을 때, 이번에는 D 치료법을 선택한 사람이 78%였다. 기대 생존 비율은 모두 200명으로 동일하고, 치료 효과 또한 같았다.

이러한 차이는 표현하는 방법에 있다. '살 수 있다'라는 긍정적 표현과 '사망한다'라는 부정적 표현에 있다. 어떻게 표현하였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은 달라진다. 표현의 방식이 사람의 인식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 이것이 프레이밍 효과이다.

프레이밍 효과를 활용하면 어떤 행동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고,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위한 캠페인에 활용한다면 건전한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의도적으로 어떠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끔 하기도 한다. 반면 프레이밍 효과를 잘못 활용할 수도 있다. 양날의 검과 같은 효과로 그 활용에 있어 윤리적인 책임감도 반드시 수반된다.

"네가 이렇게 하면 안 돼"라는 표현보다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싫으니?"보다는 "이게 더 나은 선택 아닐까요?"라고 표현해 보는 것이 어떨까?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나눔의 문화에 모두가 함께 할 수 있기를"

[충북일보] 오곡이 풍성한 추석이 다가왔다. 누구나 풍요로울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손을 잡아야 주어야 할 이웃이 많다. 이런 이웃을 위해 추석 연휴에도 나눔과 봉사를 말없이 실천해 온 '키다리아저씨'가 있다. 30여년간 일상의 나눔을 이어오고 있는 최종길(48) LG에너지솔루션 오창2 업무지원팀 책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중학생때인 15세부터 일찌감치 나눔의 의미를 알고 몸소 봉사를 실천해오고 있다. 최 책임은 "당시 롤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보육원에서 체험활동을 온 5살짜리 아이를 케어했던 적이 있다. 스케이트를 가르쳐주고, 쉬는 시간에 품에 안겨 잠든 모습을 보며 아이의 인생을 바라보게 됐다"며 "당시에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옷을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5살 아이와의 만남 이후 그의 시선은 달라졌다고 한다. 성인이 돼 원료 공장에 입사했던 그는 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단순히 돈만 후원하는 것이 아닌 직접 찾아가 아이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할머니와 손주 두 명이 사는 조손가정이었다. 당시 할머님을 설득해 아이들과 하루종일 놀이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