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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연

청주시 상당구청 세무과 주무관

길고 긴 동면을 마치고 경칩(驚蟄)과 함께 나의 공직생활이 시작됐다. 길거리에는 일찍 핀 꽃들과 이제 만개를 준비하는 꽃봉오리들로 가득 찼다. 초록빛 새순들은 마치 내 모습처럼 서툴고 어색했지만 옹골차게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었다. 발령을 받고 출근하기 시작한 나는, 이제 갓 알에서 깨어난 듯 삐약소리 조차도 낼 수 없는 가녀린 초보 병아리였다.

사무실은 차가우면서도 따뜻했다. 엄숙하면서도 활발했고, 여유로우면서도 분주했다. 이러한 힘의 균형은 어디서부터 오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느낀 우리 구청 사무실은 그랬다. 민원인들이 걸음을 하실 때마다 우리 선배님들의 손길은 바삐 움직였고 뜨거웠다. 선배님들은 어떤 민원이든 허투루 넘기지 않으셨다. 민원인들의 갈겨쓴 메모를 보며 관련 부서를 찾고 꼼꼼히 안내하고 도와드렸다. 두루뭉술한 마음으로 민원인들을 상대하려고 했던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선배들의 손끝 하나하나를 열심히 배우려 노력했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선배님들의 모습은 제임스 앨런 맥퍼슨의 작품 '닥터를 위한 솔로 송'이 생각나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철도 웨이터이다. 철도 조달본부에서는 신입직원을 채용하면서 규정집을 달달 외게 하였다. 주인공은 신입직원을 애송이라 부르며 커다란 책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멋지고 현란한 서빙의 기술을 줄줄이 꿰었다. 애송이가 규정집을 아무리 읽는다 하여도 주인공이 수십 년간 몸으로 익혀온 요령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우리 선배님들의 모습이 그랬다. 애송이인 내가 아무리 지방세편람과 실무 책을 읽어도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았다. 내가 읽은 글자들은 민원인들이 오실 때마다 까맣게 사려졌다.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우리 선배님들이 달려와 주셨다. 감히 애송이가 가질 수 없는 내공이 느껴졌다. 내 뒤에 계시는 선배님들의 고요함이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변하는 시점이었다.

'직업의 광채'라고 했던가· 구청 안의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뇌리를 스치는 말이다. 나는 첫 출근을 시작한 지 겨우 몇 달 만에 운 좋게도 의견서를 제출하고 면허세 과세자료 조사계획을 시행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면허세는 다른 세목들에 비하면 너무 간단한 세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루한 솜씨 때문에 며칠간을 야근하면서도 결국 선배님들의 손끝을 거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물며 더 복잡한 행정 집행을 하는 일이랴! 구청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고 우아하지만 물밑에서 열심히 발길질을 하는 백조의 모습과 같았다. 우리 구청의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고 배우면서 여느 직업인들과 같이 이곳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직업의 광채가 빛나고 있음을, 필자의 졸렬한 글을 통해서라도 알려드리고자 서툰 글을 힘들게 써내려가 본다.

나는 얼마 전 청렴한 공무원이 되기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고경중마방'을 읽고 신입 직원으로서 좌우명이 생겼다. 바로 '나날이 새롭게 하라'라는 구절과 '뜬 구름이 지조를 팔지말라'라는 구절이다. 전자(前者)의 말처럼 현재나 과거의 안주하려 하지 않고 후자(後者)의 말처럼 청렴한 공직생활을 하기를 다짐했다.

그리고 이 글의 독자들이 민원인이 되어서 우리 구청에 오셨을 때 이 글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하는 내가 되도록 할 것이다. 내가 우리 구청 안에서 보았던 직업의 광채가 나에게도 생길 수 있음을 비루한 내가 나에게 감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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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