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이 춤을 춘다, 우리 머리 위에서~' 만국기가 펄럭이는 운동장 아래서 운동회를 했다. 우리 반은 달리기와 터널 통과하기 게임을 했다. 열심히 뛰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했다. 허공을 가르며 귓전에 펄럭이는 아이들의 함성 속에서, 내 어릴 적 운동회를 떠올린다. 공책 한 권 받아보지 못했던 초등학교 운동회. 그때는 달리기를 하고 나면 아이들 팔에 1,2,3 도장을 찍어줬다. 마치 돼지 껍질에 등급을 찍는 거 같은 파란 도장이 팔에 찍힌 아이들. 그 파란 도장이 왜 그리 부러웠는지. 운동 신경이 없었던 나는 단 한 번도 그 도장을 받지 못했다. 그 시절에는 달리기를 해도 3등까지만 상품을 줬다. 체구도 작았던 나는 달리기를 하면 늘 꼴찌였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내 가슴에 화석처럼 박힌 기억이 뾰족하게 올라온다. 달리기 후 팔뚝에 도장이 찍히고 공책을 받고 즐거워하던 친구들의 기쁨에 찬 얼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그리고 쪼그라들기만 하던 어린 내 모습도 클로즈업 된다. 돌아보면 운동회는 내게 즐거운 날이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운동회를 준비하면서 제일 신경을 쓴 것이 모든 아이들에게 기쁨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훗날 운동회를 생각하면 즐거
돌 틈으로 아이비 덩굴이 우거졌습니다. 우리 집과 이웃 집 사이에 담이 쳐져 있고 경계 지점에 사람 하나 간신히 드나들만한 곳인데 난데없는 화초가 올라왔습니다. 너비라야 두어 뼘 남짓에 휴지와 깡통만 굴러다닐 뿐, 이따금 고양이가 블록 담을 타넘어 다니는 곳에서 참기름이나 바른 듯 파랗게 반짝이는 잎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가슴이 다 짠합니다. 맨 처음 나올 때는 쥐가 밟아댔는지 신통치 않았습니다. 빈약한 줄기가 뜯겨 있을 때는 헌데가 난 뒤통수를 보듯 민망했는데 지금은 세 바퀴쯤 똬리 튼 모양새로 어우러졌습니다. 답답하고 울적한 날 보면 더 힘이 났습니다. 그 풀은 나를 위해 더 모질게 자라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 옥탑에 사는 여자가 창밖으로 화초를 버렸다는데 그 중 한 가닥이 뿌리를 내리면서 감동적인 상황을 연출한 것입니다. 그 간 장독을 오가면서 눈 여겨 보기는 했어도 꽃까지 필 줄은 뜻밖입니다. 잎이야 그늘에서 자라는 식물도 있으니까 가능하겠지만 꽃은 볕이 들어야 합니다. 어둡고 눅눅한 것은 그렇다 쳐도 군데군데 깨진 시멘트 바닥입니다. 비가 오면 동냥젖을 먹듯 목은 축일 수 있을지 몰라도 볕은 들지 않고 쓰레기뿐인데 하필 땡볕이 내
천지가 초록으로 부풀어 오르건만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나보다. 그녀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다. 헐거워진 생이 앓는 소리다. 소리는 늙고 지친 여자의 울음처럼 들린다. 조심스레 그녀의 몸을 열어 보건만 안타까운 마음 뿐. 옷을 여며 주고도 차마 돌아설 수 없어 꺼져 가는 한 생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생의 끝이 그렇듯 그녀 또한 마지막을 예고하듯 간헐적으로 가래 끓는 소리를 토해낸다. 그녀의 몸이 처음으로 엇박자를 낸 것은 재작년 추석 전날이었다. 추석 제물과 음식들을 들이밀고 돌아서려는데 한 시간 전 까지도 활기찼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곧 입을 열겠지" 했다. 한 시간 두 시간을 기다려도 응답이 오지 않는다. 슬금슬금 불안해왔다. 동서들도 "형님, 이상해요, 빨리 손을 봐야겠어요."라며 재촉이다. 당장 내일이 명절인데 얼마나 마음이 조급해지고 당황스러웠던지. 그런데 미련한 게 사람이라고 추석사건이 있었음에도 난 그녀를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내게 그녀는 늘 그 자리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있는 그런 존재로만 여겼던 것 같다. 올해 들어 3차례의 수술을 받고서야. 이미 그녀의 몸이 심각한 상태란 걸 전문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녀의 몸에
교육부의 박춘란 차관이 주요사립대학 총장들에게 2020년 대학입학 수능에 정시모집을 확대할 것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이에 각 대학입시처장들은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정시모집 인원확대에 대하여 논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입학의 정시, 수시모집 인원의 결정은 대학의 판단에 따른 문제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육부는 공정한 입시를 위한 차원의 의사 타진이었다고 하나, 야당에서 직권남용으로 고발하는 등 적절치 못한 행동으로 판단된다. 교육부는 지난 4월 11일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했다. 이 시안은 대통령소속 국가교육회의에 넘겨 여론수렴과 및 논의과정을 거쳐 8월쯤 대학입시제도 개편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또 시안은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입시를 치르는 2022학년도부터 적용 된다. 김상곤 교육부장관은 이 대학입시제도 시안 발표에서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전형 간 비율조정 등을 제시했다. 국가교육회의에서 토론과 공론화를 거칠 내용은 선발방법 균형과 선발시기, 수능평가방법, 학생부종합전형, 수능시험체제 등으로 교육부가 제시한 수능평가 방식을 숙의하고 여론을 수렴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충북일보] 청주산업단지 내 유해화학물질 유출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안전한 청주산단 만들기' 구호가 무색해지고 있다. 청주산업단지에서 또 유해화학물질 유출사고가 발생했다. 이번엔 환경부 산하 환경시설관리 청주사업소가 운영하는 하수종말처리장에서 황화수소가 누출됐다. 작업 중이던 근로자 4명이 가스를 흡입해 병원 치료를 받았다. 청주산단 내 사업장에서 유해물질 유출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 3월에는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염소 유출사고가 발생했다. 그 후에도 여기저기 다른 업체에서 크고 작은 유출사고가 이어졌다. 염소는 화학 원소 중에서 양면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원소 염소는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독가스로 사용돼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다. 반면 표백제와 살균·소독제로 사용돼 많은 사람들을 질병에서 구하기도 했다. 소금은 대표적인 염소 화합물이다. 사람에게 유익한 물질이다. 하지만 또 다른 염소 화합물인 DDT는 해충들을 죽이는 살충제로 사용됐다.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으로부터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환경오염 물질의 대명사로 낙인찍혔다. 이번에 유출된 황화수소 역시 유독물질이다. 수소의 황화물로 무색의 유독기체
사람들은 날씨가 더우면 그늘을 찾고 날씨가 차면 몸을 바짝 움츠리며 따뜻한 곳을 찾는다. 그런데 춥고 더운 것 가리지 않고 새벽부터 오후까지 쾨쾨한 냄새와 먼지를 뒤집어쓰며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주민들이 먹고 쓰고 버린 것들로 거리 곳곳에 쌓여 있는 쓰레기봉투며 종이컵 담배꽁초 등 거리에 널려있는 것들을 깨끗이 쓸어 가 아름다운 거리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그들을 환경미화원이라고 부른다. 더 없이 고마운 사람들이다. 만약 그들이 없다면 거리는 어떻게 되고 또 국민건강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환경미화원이 작업 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다. 그것도 자주. 지난 2017년만 해도 작업 중 사고로 25명이 넘는 사람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환경미화원 중에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가로환경미화원과 위탁업체 소속 생활쓰레기수거환경미화원이 전국에 3만 5천여 명이 있다. 우리는 대개 그들에 대해 무관심하다. 환경미화원 그것 그들 직업인데 주민이 특별히 관심 가질 필요가 있겠느냐며 일축하겠지만 반드시 그럴 일만도 아니다. 관심을 갖다 보면 쓰레기배출을 함부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 적지 않게 사고를 당한다
90년대 공포영화로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수많은 패러디의 소재로 대히트를 기록하였다. 10대의 음주운전으로 시작된 사건은 모르쇠로 변명을 늘어놓다 살인, 시체은닉으로 막장 범죄의 끝을 보여주는 줄거리이다. 이 영화의 "술은 마셨지만 운전은 안했다..음주 운전을 했지만 살인은 안 했다. 아니, 기억이 안 난다"라는 변명 아닌 변명들은 2018년 현재에도 수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전국의 법원과 수사기관에서 반복되고 있는 일상이다. 땅콩회항으로 유명한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 오너일가의 지난 수년간의 갑질들이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의 폭로로 연일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정권들의 적폐 청산으로 시작된 폭로시리즈는 현재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될 것 같다. 이러한 폭로와 그 사회적 확산과 충격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시작되고 증폭되고 수습되고 있다. 단순히 개인 간의 혹은 이해 당사자 간의 법적 다툼으로 수습되었던 사건사고들이 현재는 일파 만파 전국민들의 관심과 분노로 펴져 가며 관련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리스크가 되어가고 있다. 정치권력과 공권력, 그리고 경제 권력의 일탈행위는 '갑질'이라 불리며 관련 집단,
"사자님.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허허. 그렇게 보이는가?" "에이, 좋은 건 나누셔야죠. 의리 없이 혼자만 갖고 계시지 말고요." "의리라…….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구먼." 동방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언가 호소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에 나에게 한 이야기도 있고 해서 짐짓 모르는 척 했다. 그러나 동방은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투로 내게 다짐을 놓았다. "사자님과 저는 의리로 맺어진 사이 맞죠·" "……·" "저는 그렇게 믿고 있는데요. 아니에요?"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동방이 나에게 무얼 원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내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할 자신이 없기에 어정쩡하게 얼버무리려고 했다. "오늘은 우리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논의하죠." 동방은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와 앉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그쳤다. "지난번에 실태파악을 먼저 하자고 했잖아요? 그래서 함께 할 사자들을 모으려고요. 1번, 당연히 김 사자님. 2번은 동방, 3번은 가장 경력이 많으신 진 사자님, 4번은 제 후배 사자인데 그 애는 정보통신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거든요. 그 애가 동기들 중 또릿또릿한 애들 몇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16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사람이 있는 문화-문화비전 2030'과 새 예술정책 '사람이 있는 문화, 예술이 있는 삶'을 발표했다. 이는 이창동 장관 시절 만들어졌던 '창의한국' 이후 15년 만에 만들어진 문화정책 백서인 것이다. 이번 발표된 문화비전과 새 예술정책은 자율성·다양성·창의성을 바탕으로 개인의 문화권리 확대와 문화예술인 권리 보장, 공정하고 다양한 문화 생태계 조성 등 '사람이 있는 문화' 실현을 위한 것들이다. 도종환 장관은 이 자리에서 '사람이 있는 문화'는 사람에 의한 문화, 사람을 위한 문화, 협력과 다양성의 문화, 여유와 쉼이 있는 문화로서 개개인의 일상이 행복해지기를 꿈꾸는 문화라 강조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문화비전과 새 예술정책은 지난 문화예술의 적폐를 넘어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여는 획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여러 곳에서 문화정책과 문화현장의 괴리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데 이는 아직 기존의 관료적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한 문체부 내의 여러 적폐에 기인한다 할 수 있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등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적폐청산을 위해 노력하여왔고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증액해
엊그제 부처님 오신날, 많은 사찰들이 연등을 밝혔다. 연등은 청정하고 아름다운 연꽃으로 만든 등이다. 왜 불자들은 부처님 오신 날 연등을 다는 것일까. 부처의 자비와 광명이 온 누리에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등을 건다고 한다. 80대 노모가 거는 등과 젊은 부모들이 밝히는 연등의 이미는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누구나 사랑하는 자식과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함은 다를 바 없다. 그 정성이 자신을 가다듬고 전능한 부처와 보살의 가호를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겪은 역사에서의 5월, 부처님이 오신 달은 매우 잔인했다. 시인 피천득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우리 민족이 겪은 잔인한 달은 아마 5월이 될 것 같다. 왜 이 달이 민족사에 갈등과 분노와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 된 것일까. 부처는 왜 이런 비극을 막아주지 않은 것일까. 많은 사암들의 연등이 내려지기도 전 절망과 탄식의 울부짖음이 가득 찬 것일까. 임진 전쟁을 미증유의 비극이라고 한다. 일본의 침략으로 우리 선조들이 무참히 도륙된 가장 비극적인 환난이었다. 음력으로 4월 13일 이달 27일, 일본 전함이 부산항에 상륙한 날이다. 날이 밝아오는 시각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엄청
[충북일보] 충북교육감선거에 나선 보수 후보들의 우여곡절이 계속되고 있다. 그나마 후보등록을 앞둔 시점에서 다시 단일화 합의가 진척돼 다행이다. 심의보 예비후보는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도민의 여망을 받들어야 한다는 소명으로 다시 단일화를 논의를 벌였다"며 "기필코 황신모 예비후보와 단일화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두 후보는 여론조사에 따른 결과를 100% 수용키로 했다. 후보 단일화 작업은 선거 때마다 있었다. 대개 세력이 약한 쪽에서 나서는 게 통례였다. 최종 목표는 말 할 것도 없이 선거 승리다. 목표대로 승리할 때도 있었고 그러지 못할 때도 있었다. 당리당략에 따른 야합이란 비난도 자주 받았다. 두 후보가 선거 초반에 단일화에 나섰던 까닭도 분명했다. 현직 교육감에 대한 지지세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말할 것도 없이 초반 유리한 고지 점령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단일화 실패를 겪으며 되레 더 나빠졌다. 지역교육은 누가 교육감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보수 성향이냐 진보 성향이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크다. 그만큼 교육감 개인성향이 지역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단순히 학교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 아이의 삶과 미래와도 연관된다
[충북일보] 공지영 작가가 23년전 모 중앙지에 쓴 기사 내용을 소개한다. 당시 그 신문의 10년차 사회부기자였던 필자의 부탁을 받은 공 작가는 일일 객원기자로 서울 송파구청장 후보 유세현장을 취재했다. "서울의 한 구에서 국회의원은 보통 2~3명 나오지만 구청장은 단 한 명을 뽑는다. 그 의미의 심장함을 나는 요즘에서야 어렴풋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 후미진 밤 길목의 가로등,길가의 벤치와 작은 공원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구체적인 일상들의 책임을 내가 원하는 그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통령을 뽑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중간 생략)유세는 무사히 끝났지만 이번 선거의 전반적인 문제점이기도 한 젊은층의 무관심이 가장 아쉬워 보였다.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이번 선거는 젊은 사람들에게 특히 중요한 일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들은 밤거리의 뒷골목을 나이든 사람들보다 더 오래,잘 심어진 가로수 아래를 나이든 사람들보다 더 오래,잘 기획된 문화공간들을 나이든 사람들보다 더 오래 걸어 다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오는 6월 13일이면 만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봄 기지개를 켜는 사무실이 아이들의 목소리로 화들짝 깬다. 가까운 어린이집에서 주민센터 견학을 왔다. 나도 하던 일을 내려놓고 아기 천사들에게 눈을 맞춘다. 올 1월 칠금금릉동 주민센터에 발령받은 나는 이렇게 불쑥 찾아온 원아들처럼 '깨끗한 동네 다정한 이웃'이란 슬로건을 뜬금없이 만났다. 처음엔 '깨끗한 이웃 다정한 동네'로 잘못 보고 '잘 씻고 다니자는 목욕탕 육성사업인가' 했을 만큼 무지했다. 슬로건이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지났다. 이 한 살배기가 이뤄낸 변화와 성과는 어른 못지않다. 경로당 어르신과 직능단체 회원들이 도로변 녹지대에 켜켜이 쌓인 낙엽을 모두 걷어냈다. 새로 이사 오는 주민들에게 대형폐기물 배출방법 등 우리시 생활정보를 담은 안내문을 나눠주니 몰래 가구를 버리는 일도 크게 줄었다. 주민들은 청결활동에 나서면서 '깨끗한 동네'가 무얼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주민의식이 변화하면서 어렵고 힘든 주변을 돕자는 '다정한 이웃'에도 관심을 갖게 되며 한 해 동안 5천여 만 원 상당의 물품과 성금을 보내왔다. 또 이미용 봉사, 저소득가정 반찬봉사 등 발로 뛰며 센터가 미처 감당하지 못하는 어두운 복지사각지대를
임상심리사인 야마노 유코는 수많은 사람을 상담하면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입버릇을 습관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경험이나 환경에 따라 말하는 습관의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인데, 부정적인 입버릇은 상담을 통해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고, 그 결과는 당사자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합니다. 그녀는 '입버릇을 바꾸니 행운이 시작됐다'는 자신의 저서에서 묻습니다. 최근에 "이거 진짜 맛있다"라고 말해 본 경험이 있느냐고. 그런 질문을 던지면 "그러고 보니 요즘 통 맛있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네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답니다. 특히 바쁜 일정에 쫓기는 직장인은 스케줄 중간 중간에 의무적으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맛있다고 느낄 여유조차 없다"고 하소연을 한다는군요. 그녀는 그런 사람일수록 일부러라도 식사 중에 "맛있네"라고 소리 내어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충고합니다. 맛은 엄밀하게 혀가 아니라 뇌가 느끼는 것이어서 미각은 물론 여러 감각 기관에서 오는 정보에 따라 반응하기 때문에 "맛있다"와 같은 좋은 정보는 즉시 우리 몸과 마음에 생기를 가져오고 뇌 기능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지요
엊그제가 석가세존 탄신일인 사월초파일이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여기저기 축등이 내걸리기 시작했기에 사월초파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다. 거리에 내걸린 축등을 보며 마음이 썩 편하지도 않을뿐더러 뭔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엄습해 오며 씁쓸하기까지 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는 지난날을 돌이켜 봐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지나간 과거는 분명한 역사로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모두가 짐짓 깨달음을 얻기 위해 냉철하게 성찰해 보는 계기를 가져야 한다는 마음이다. 노력 없이는 깨달음은 물론, 사람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의미를 되새기기엔 부족함만 있을 뿐이다. 육신이 편하고 보자는 게 목적이라면 종교적인 의미를 찾기엔 너무나 멀고먼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된다. 사월 초파일이 다가오면 각 사찰마다 축등을 만드느라 기나긴 기간을 두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재료는 열악한 편이었어도 스님들과 신도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 축등을 제작하노라면 때로는 기발한 창작품도 나온다. 축등을 제작하는 의미를 되새기기에 마음을 모으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석가세존을 기리고 성불하는 뜻을 깊게 되새기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에 흠씬 젖어보곤 했었다.…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의 석곡리, 석실리는 그 어원을 '솝실'에서 찾을 수 있는데, '솝실'이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솝'이 '속, 또는 안쪽'의 의미임을 알게 해주는 지명이 바로 전라북도 익산시의 전이름인 '이리(裡里)'인 것이다. 지금은 익산시(益山市)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이리'라고 하면 이리역 폭발 사고를 생각나게 한다. 전북 익산시는 1995년까지 이리시(裡里市)로 불리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익산보다는 이리라는 이름을 익숙하게 생각한다. 목천포 북쪽 10여 가구의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던 '솝리'가 이리(裡里, 속마을)로 바뀐 것은 호남선 철도가 놓인 뒤라고 한다. 1912년 호남선과 군산선의 개통과 함께 익산군청을 비롯한 관공서가 금마에서 이리역 주변으로 옮겨왔다. 호남선이 대전~익산에 이어 익산~김제 등 철도를 잇달아 개설하고, 1914년 1월 대전~목포(256.3㎞) 전 구간을 완성한다. 전주의 유지들은 지맥이 끊기고 지반이 흔들려 도시가 몰락한다는 이유로 호남선 전주 통과를 극구 반대했었다. 익산에 호남~군산선이 개통되고 근대문명의 경이를 목도하고 나서야 뒤늦게 철도를 유치, 1914년 12월 익산~전주 전라선 첫 구간을 폭 좁은…
[충북일보] 선거운동 방식이 바뀌고 있다. 6·13지방선거 출마 후보들이 '1인 방송'으로 유권자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 선거운동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충북도지사 예비후보들 사이에서도 1인 방송 바람이 불고 있다. 말 그대로 열풍이다. 소비자들은 이미 텍스트와 이미지 중심의 소비 형태를 버렸다. 동영상 중심으로 콘텐츠 소비 형태를 바꿨다. 1인 방송은 그런 사회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시종 지사 후보는 지난 16일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곧바로 페이스북(Facebook)을 통해 공약발표 기자회견을 생중계했다. 자유한국당 박경국 지사 후보는 지난 19일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생중계했다. 바른미래당 신용한 지사 후보는 생중계 보다는 주제가 담긴 기획 영상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1인 방송은 다양한 1인 미디어 중 하나다. 텍스트가 아닌 오디오와 영상을 콘텐츠로 제공한다. 쌍방향 통신을 통해 정서적 유대감을 제공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수평 연결 구조로 사용자와 네트워크를 강화해 방송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1인 방송은 제작 공정이 상대적으로 매우 단순하다. 기존 미디어에 비해 훨씬 적
만 6세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모여 생활하는 초등학교.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학문과 소양을 가르친다. 우리 아이가 처음으로 시작하는 학교생활인 초등학교에서 주의해야 할 건강관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활 습관 만들기 학교에 입학하면 생활이 크게 바뀌므로 입학 전에 학교생활에 맞는 생활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생활 습관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오후 10시 이전에 자고, 등교 시간 한 시간 전에는 일어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정해진 시간에 화장실 가기 등 배변 습관도 챙겨야 한다. 또한, 입학 직후부터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므로 바른 자세로 앉는 것도 미리 연습한다. ◇스스로 하는 연습하기 혼자 일어나 세수하고, 이를 닦고, 가방을 챙기는 연습을 한다. 읽은 책이나 갖고 놀던 장난감은 스스로 꺼내고 치울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특히 학교에 다니게 되면 오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있게 되므로, 아이가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건강기록부에는 소아마비,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홍역, 결핵, 간염, 일본뇌염 등의 접종 여부
청주시는 올해 전기차(EV) 206대에 대해 차량 가격에 따라 구매 보조금을 최저 950만 원에서 최고 2천2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지원 대상자를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7일까지 313명을 접수해 전자 추첨을 통해 대상자 206명을 최종 선정했다. 전기자동차란 휘발유 등의 화석연료가 아닌 전기에너지만으로 움직이는 차를 말한다. 전기자동차의 장점은 차량 유지비가 적게 든다는 것과 친환경적이라는 점이다. 전기로 배터리를 충전하기 때문에 연료비나 소모품비가 내연기관의 차량보다 저렴하고 내연기관이 없어 유해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엔진이 없어 승차감이 좋고, 소음과 고장이 적다는 장점도 있다. 반면 전기자동차의 단점은 비싼 차량 가격, 짧은 1회 충전 주행거리, 긴 배터리 1회 충전시간, 부족한 충전 인프라 등이다. 이런 단점 때문에 아직은 보편화되지 못하고 있어, 정부가 구매 보조금을 지원해주며 보급을 활성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월 말 기준 국내 전기자동차 보급 대수는 약 2만5천 대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기자동차 보급 활성화를 위해 지원과 혜택을 주고 있는데,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원 이외에도 현재 전기자동차에 대한 모든
석판 버스 종점에서 은항골 골짜기로 들어서니 새들이 우짖는 연록의 숲이 손짓하여 부른다. 길섶에 줄지어 선 영산홍도 붉은 볼을 더욱 붉히며 배시시 웃어준다. 색소폰앙상블 정기연주회가 열리는 '좋은 카페'의 아담한 모습이 숲에 품에 살포시 안겨있다. 제복을 멋있게 차려입은 단원들이 민첩하게 무대를 채웠다. 은회색 머리의 중후한 단장님을 비롯하여 젊고 발랄한 여성 대원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가 어우러진 구성이 이채롭다. 객석은 이미 다 차고 보조 의자까지 동원되었다. 합주, 독주 4중주 바이올린 협연, 비올라연주, 중창 등 13가지나 되는 순서가 얌전하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순서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하늘까지 닿을 듯 장엄하게 울려 퍼지면서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이다. 어머니 품속같이 편안하고 감미로운 선율로 시작하여 가슴을 치는 고음의 경지까지 넘나드는 연주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하다. "I am strong, when l am on your shoulders.(당신이 나를 떠받혀 줄 때 나는 강인해집니다.) You raise me up to more then l can b
선유, 이름만으로도 안개 같은 섬이었다. 신선이 노닐던 곳이라고 했다. 이곳엔 갯바람조차도 선하게 흘렀다. 밀물이 들어찬 얕은 바다엔 아주 자그마한 고깃배가 장난감처럼 떠다녔다. 섬의 백사장을 거닐 때면 가슴이 따뜻해졌다. 머릿속은 환해졌고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호젓한 해안을 거닐다 보면 용서 못할 자신조차 바다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 남루한 내 욕망쯤이야 다 털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천형의 시간들도 이곳에선 다 비껴가고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이 섬에서는 내 외로움조차 우아하고 당당했다. 릴케의 말 한 마디가 가슴에 탁 박혔다. "가장 중요하고 진지한 것에서 인간은 이름 없는 혼자다" 이 섬에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수록 내 이름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도 만족스러웠고, 이름이 불리지 않아도 난 외롭지 않게 되었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구름사이로 카랑카랑한 햇살이 설핏 비출 때 난 행복하다고 느꼈다. 구름 사이로 잠시 드러나는 햇빛처럼 행복이라는 것도 한 순간의 느낌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행복은 무덤덤하게 스쳐가는 하루하루 사이에 아주 잠시만 나타나는 짧은 순간의 반짝임, 눈부심, 따뜻함, 설렘일 것이다. 그 잠
미·북 정상회담은 성공할까? 만약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 한국 등으로부터 천문학적인 보상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8·15해방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써 그보다 더한 경사는 없을 것이다. 만약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면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할까·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던 상황이 재현될까? 북한이 핵을 포기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상황은 냉온탕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차이가 엄청나다. 어쨌든 우린 한 달 남짓한 동안에 극과 극으로 변할 수도 있는 남북문제를 예측하고 대비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역량을 총동원해서 김정은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 지를 판단해야만 한다. 우리 정보기관도 정보력이 만만찮지만 미국 일본을 비롯한 우방국의 정보협력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때 생각나는 말이 역지사지란 사자성어다. 만약 내가 김정은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엄청난 정보력을 갖고서도 자신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가정 두려워하는 것은 권좌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리비아 카다피 등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는 상상하기도 싫을 것
[충북일보] Delusion, 망상 또는 착각 등을 의미한다. Grandeur는 장엄함, 위엄 등을 뜻한다. 반대의 의미를 가진 이 두 단어가 'Delusion of grandeur'로 엮이면 과대망상이 된다. 과대망상(誇大妄想)은 자신의 지위, 재산, 능력, 용모 등을 과장하고 사실로 믿는 증상이다. 자신이 아주 위대한 인물이거나 특별한 능력(돈·권력)을 가졌다고 여긴다. 자신의 열등감, 패배감, 불안감 등을 보상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장밋빛 공약 판치는 세상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능력은 다양한 차이를 드러낸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탁월한 사람은 리더로 성장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리더가 된 뒤 일방적 지시에 몰두하거나, 우호적인 세력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으면 탄핵(彈劾)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다. 최근 대한항공 사태를 바라보면서 법적인 의미는 아니더라도, 국민들로부터 정서적 탄핵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비단 정치와 대기업에만 이런 현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와 비슷한 크고 작은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 모
[충북일보] 태양광발전소가 친환경에너지 공급이라는 선량한 이름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정부의 무분별한 지원이 인위적인 자연 파괴를 돕고 있다. 친환경에너지 정책의 역설이다. 태양광발전소는 지금도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정부의 친환경에너지 정책에 힘입어 전국 곳곳에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개발이익에 따른 수익보장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정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충북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작용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산림파괴 등 환경훼손으로 난개발이 걱정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발자와 주민 간 갈등도 심각해지고 있다. 각종 마찰로 홍역을 앓는 지역이 많다. 신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라는 당초 취지가 퇴색했기 때문이다. 충북도에 따르면 5월 현재 도내 100㎾초과∼3천㎾이하 태양광발전소 인·허가 건수는 모두 980건이다. 시·군에서 인·허가하는 100㎾이하는 2천321건이다. 연내 300∼400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태양광발전소는 문재인정부의 탈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육성 정책과 맞물려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현행 7%에서 20%로 늘리기로 했다. 그런데 태양광 발전설비가 재
내게 길이란 내 삶의 흔적이 될 수도 있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기대일 수도 있고, 실제로 길일 수도 있다. 그 길 중에 나를 성장하게 했던 둑길이 있다. 물이 흐르는 양옆으로 만들어진 둑길은 유년시절 놀이터였던 곳으로 집과 가까운 곳에 있었으며 뚝방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여름날 오이 풀을 손으로 비비거나 손바닥에 얹고 다른 손으로 치면서 냄새를 맡으며 "오이냄새 날래, 참외냄새 날래?"하며 달리던 곳. 둑길에서 놀다가 소낙비를 만날 때면, 집으로 오지 않고 우산 풀을 뽑아서 쓰고 비를 맞으며 마냥 뛰어 다녔던 곳. 여름밤에는 더위를 피해 언니 둘과 나오기도 했는데 언니들은 소리 내어 가곡을 마음껏 불렀다. 그 가곡들은 나를 음악의 세계로 이끈 계기가 됐다. 그때의 둑길은 내게 또 다른 세계의 경계였다. 둑길 너머에는 냇물과 온갖 풀과 물고기 자갈들이 내게 놀 거리를 제공하며 친구들과 작은 사회생활의 시초가 될 수 있는 뿌리였다. 또 다른 둑길 안에는 돌로 쌓은 담장이 있었고, 어머니가 가꿔 놓으신 꽃밭의 예쁜 꽃들과 초가집 안의 정돈되지 않은 혼돈의 방과 가족들 속에서 늘 나약한 나로 성장해 갔다. 둑길 안에는 답답함과 무료함이 존재하는 반
[충북일보] 산과 들이 펼쳐진 청주 낭성면 추정리에 마당 가득 항아리가 늘어서 있다. 천여 개의 크고 작은 항아리 근처에는 구수하게 익어가는 장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정겨운 풍경이 벌써 맛있는 기억을 되살린다. 전순자 대표의 옥샘정은 1995년 청주 금천동에서 선식 가게로 출발했다. 곡물가루 등을 취급하며 메주와 고춧가루에도 관심을 가졌다. 알음알음으로 주문하는 가정에서 원하는 대로 장을 담가준 것이 옥샘정의 시작이다. 더 맵게, 혹은 달지 않게, 각자의 입맛에 맞춰 장을 담가 주며 입소문이 났다. 몇 번의 이전 끝에 2012년 지금의 추정리에 완전히 정착했다. 서늘한 기온과 맑고 풍부한 물이 장 담그기에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씨간장으로 숙성하는 옥샘정의 간장은 진하고 깊다. 온전한 콩이 한 알도 들어가지 않은 시판 간장과는 색부터 향까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십여 가지가 넘는 첨가물이 재료로 쓰인 시판 간장과 달리 옥샘정의 원재료는 국산 콩, 국산 천일염, 정제수로 간결하다. 작은 항아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뚜껑마다 날짜와 이름이 쓰여있다. 매년 초 이곳에 찾아와 담그는 손님들의 장이다. 햇볕과 바람 등 숙성을 위한 관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청주에서 자궁출혈 증상이 있는 임신 15주차 임신부가 병원을 전전하다 신고 접수 2시간 만에 수술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3일 충북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오전 5시께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서 "임신 15주차 산모인데 복통이 심하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119 구급대는 임신부가 하혈과 함께 복통을 심하게 호소하는 등 위급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구급대는산모를 흥덕구의 한 산부인과로 이송했으나, 응급 수술이 필요하단 이유로 상급병원 이송을 권유했다. 구급대는 청주권 주요 병원 6곳의 수용 가능 여부를 알아봤지만,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다며 이송을 모두 거절했다. 소방당국은 충북 권역까지 넓혀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수소문 했다. 이후 진천의 한 병원에서 산모를 수용할 수 있단 답변을 받았고 119 신고 접수 2시간 만인 오전 7시 10분께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당시 산모는 자궁출혈이 심해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매우 긴급한 상황이었다"며 "안타깝게도 태아는 사망했다"고 말했다. 현재 산모는 수술을 받은 뒤 안정을 되찾았다. /
[충북일보] 오곡이 풍성한 추석이 다가왔다. 누구나 풍요로울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손을 잡아야 주어야 할 이웃이 많다. 이런 이웃을 위해 추석 연휴에도 나눔과 봉사를 말없이 실천해 온 '키다리아저씨'가 있다. 30여년간 일상의 나눔을 이어오고 있는 최종길(48) LG에너지솔루션 오창2 업무지원팀 책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중학생때인 15세부터 일찌감치 나눔의 의미를 알고 몸소 봉사를 실천해오고 있다. 최 책임은 "당시 롤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보육원에서 체험활동을 온 5살짜리 아이를 케어했던 적이 있다. 스케이트를 가르쳐주고, 쉬는 시간에 품에 안겨 잠든 모습을 보며 아이의 인생을 바라보게 됐다"며 "당시에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옷을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5살 아이와의 만남 이후 그의 시선은 달라졌다고 한다. 성인이 돼 원료 공장에 입사했던 그는 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단순히 돈만 후원하는 것이 아닌 직접 찾아가 아이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할머니와 손주 두 명이 사는 조손가정이었다. 당시 할머님을 설득해 아이들과 하루종일 놀이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