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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자

전 보은문학회장

내게 길이란 내 삶의 흔적이 될 수도 있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기대일 수도 있고, 실제로 길일 수도 있다. 그 길 중에 나를 성장하게 했던 둑길이 있다. 물이 흐르는 양옆으로 만들어진 둑길은 유년시절 놀이터였던 곳으로 집과 가까운 곳에 있었으며 뚝방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여름날 오이 풀을 손으로 비비거나 손바닥에 얹고 다른 손으로 치면서 냄새를 맡으며 "오이냄새 날래, 참외냄새 날래?"하며 달리던 곳. 둑길에서 놀다가 소낙비를 만날 때면, 집으로 오지 않고 우산 풀을 뽑아서 쓰고 비를 맞으며 마냥 뛰어 다녔던 곳. 여름밤에는 더위를 피해 언니 둘과 나오기도 했는데 언니들은 소리 내어 가곡을 마음껏 불렀다. 그 가곡들은 나를 음악의 세계로 이끈 계기가 됐다.

그때의 둑길은 내게 또 다른 세계의 경계였다. 둑길 너머에는 냇물과 온갖 풀과 물고기 자갈들이 내게 놀 거리를 제공하며 친구들과 작은 사회생활의 시초가 될 수 있는 뿌리였다. 또 다른 둑길 안에는 돌로 쌓은 담장이 있었고, 어머니가 가꿔 놓으신 꽃밭의 예쁜 꽃들과 초가집 안의 정돈되지 않은 혼돈의 방과 가족들 속에서 늘 나약한 나로 성장해 갔다. 둑길 안에는 답답함과 무료함이 존재하는 반면 안정성과 따스함이 넘쳤고, 둑길너머에는 놀 거리가 산재해 있는 반면 독소가 있는 곤충과 뱀, 장마 후에는 깊은 물의 함정, 잘 넘어지는 난 자주 다치는 등 늘 위험이 따라 다녔다.

또 다른 둑길은 유년시절에 놀이터였던 둑길을 따라 쭉 걷게 되면 읍내로 이어졌다. 읍내로 가는 길은 두 길로 신작로와 둑길이 있었다. 신작로는 포장이 되지 않아 차가 지나갈 때면 먼지를 뒤집어 써야 했다. 그래도 그 먼지를 버티며 미루나무며 계절마다 바뀌는 작은 풀꽃과 코스모스는 제 모습을 잃지 않고 가끔씩 내려주는 비에 말끔히 목욕을 하곤 했다. 비온 뒤 또는 시간이 바빠서 빨리 가야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주로 둑길을 걸었다. 그 둑길은 구부러지고 길게 늘어져 신작로보다 멀었다. 둑길 초입에는 10여 채의 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아이들은 같은 또래지만 초등학교가 달라 말을 붙여보지 못해 자주 부딪치는 동네 아이들보다 왠지 호기심이 더 있었다.

둑길은 좌측으로는 마을을 지나 논과 밭이 있고 우측은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군데군데 보가 있고 둑 밑으로는 밭을 만들어 채소며 곡식들을 심곤 했었다. 쾌적한 그 길을 걸을 때는 내게 두려움도 동반했다. 그 이유는 읍내 가까운 둑길 밑에 움막이 있었고, 거기에는 거지들이 살고 있었다. 그 거지의 얼굴은 동네에 초상이나 잔치가 있을 때면 제일 먼저 나타나 음식대접을 받곤 했기에 익숙했다. 그곳을 지나칠 때면 멀리서부터 다리가 잘 떨어지지 않았고 그 들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 걷곤 했었다. 마음속으로는 그곳을 뛰어서 빨리 지나가고 싶었지만 혹시나 화를 내며 따라와 해를 입힐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길은 우리의 선택에서 장단점을 지니고 있듯이 읍내로 가는 길도 그랬다. 신작로로 가면 빨리 갈 수 있는 반면 싫은 먼지를 뒤집어 써야 하고, 둑길을 가게 되면 작은 풀들과 만날 수 있고 생각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반면 긴 거리였고, 무서운 움막 옆을 지나가야 했다. 두 길 다 장단점을 지니고 있어서 둑길과 신작로가 갈라지는 길에서는 어느 길을 걸어야 할지 늘 망설였다. 그래서 일까 신작로와 둑길을 번갈아 걸으며 어떤 때는 이 길을 잘 택했구나 하고 생각했던 날들과 오늘 이 길은 정말 잘못 선택했네 하는 후회로 읍내까지 걸어야 했던 때도 있었다.

내가 읍내를 갈 때, 신작로와 둑길 중에 수시로 번갈아 갔지만 우리의 삶은 두 길 중 한 길을 선택해야 할 때, 어느 길을 걷다가 다시 돌아와 또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현재 자신이 가는 길에 순간순간 회의를 갖기도 한다. 내 삶속에 둑길은 재미가 넘쳐나는 놀이터였고, 늘 신작로와 둑길 사이에서 어느 길을 택해야할지 갈등의 대상이었고 여유가 넘쳐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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