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김모 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재력가다. 건설업과 관련된 7개 업체를 계열사로 소유하고 서울 노란자 위에 큰 빌딩도 두 채나 갖고 있다. 젊은 시설 막노동, 노점상 등 갖은 고생 끝에 부(富)를 일군 그는 재물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요즘도 돈이 될만한 것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75세가 된 그를 가르켜 어떤 이는 악덕기업주라고 욕하고 어떤 이는 전형적인 한국형 기업가라고 추켜세운다. 그가 요즘 고민에 빠져있다. 딸만 둘을 둔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재산이 자신과 성이 같은 후손들에 의해 대대손손 지켜지길 바랬는데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학문이 깊은 학자를 찾아가 자문을 했다. 어떻게 해야 어렵게 모은 내 재산을 후손들이 잘 유지시킬 수 있겠습니까· 학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재산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원심력을 지녀서 그 소유의 둘레를 빙빙 돌면서 자꾸만 소유자로부터 떨어져 나가려는 관성을 지녔습니다. 재산의 주인이 그 원심력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땐 괜찮지만 주인이 그를 지탱할 힘을 상실하거나 약해지면 가차 없이 그로부터 떨어져 나갑니다. 여기에 그치면 다행이지만 떨어져 나가는 힘이 강해 주인마저 넘어뜨리기까지 합니다. 재산의 관성
오랜만에 하늘재를 넘으려고 오후의 따스한 햇살을 등에 업고 미륵사지 옆을 지나 걷기 시작했다. 수년전 등산모임에서 오를 때는 등산로가 돌밭이었다. 지압효과는 있었지만 걷기가 불편했었다. 충주시가 하늘재를 찾는 관광객을 위해 고운마사토를 깔아놓았다. 흙길을 걷는 편안함이 온 몸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아 너무 좋았다. 장마로 흙이 파여 나갈 것을 대비하여 옛 석문분교장터에 마사토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문경새재길이 유명한 것은 편안한 흙길이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소나무 숲 사이로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맨발로 걷을 수 있는 여유로운 길이 흔치않아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계절의 변화를 맛보며 건강을 챙기는 명승지가 되었다. 하늘재는 신라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 공주가 함께 서라벌을 떠나서 하늘재를 넘었다. 미륵리에 당도한 마의태자는 그곳에 미륵입상을 세우고 덕주 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건립한 후 오랜 세월을 기도하며 신라의 부흥을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그들의 내세(來世)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소백산줄기 중에 영남의 과객(科客)들이 하늘재를 이용하여 한양으로 가장 많이 다녔던 길이라 한다. 죽령(竹嶺)과 추풍령(秋風嶺
물관리는 실내식물을 키우는 과정 중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물관리에 실패하게 되면 작게는 식물에 상처가 나거나 꽃이 빨리 져버리고 크게는 식물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다육과의 식물에 너무 많은 양의 물을 공급하게 되면 단시간 내에 식물이 죽을 수 있습니다. 또는 일반적인 관엽식물에 너무 적은양의 물을 줄 경우 꽃이 빨리 져버리게 되거나 잎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물관리 방법에 따라 실내식물의 수명과 건강상태가 결정됩니다. 이것은 식물의 종류와 관계없이 공통으로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물주는 방법은 식물마다 제각각입니다. 따라서 여러 종류의 식물을 같은 방법으로 물관리를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실내에서 키우는(화원에서 판매하는) 식물은 아주 기본적인 범주에 속하기 마련인데 크게 3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관엽식물은 잎을 감상하기 위한 식물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종류의 식물은 겉흙에 직접적으로 물을 부어서 주시고 뿌리까지 흙이 젖을 수 있도록 흠뻑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물을 주는 간격은 한참 자랄 시기인 봄부터 여름까지는 충분히 주시고 식물이 휴면하는 시기인 가을부터 겨울동안은 겉흙이 바짝 마른 뒤에 주시는 것이 좋습
아버지의 연못 오미아 충주문인협회 풀로 메꾸어진 그곳 남아 있는 작은 연못 연꽃 한 송이 피었다 아버지 등에 앉아 놀던 나비인가 흰나비 한 마리 앉았네 그리움에 젖은 눈까풀 사이 아버지 하얀 등이 스친다 작은 연못에 수연이 되었나 아버지 어깨 등 베고 싶은 날 연꽃 한 송이 아름다운 날 아버지가 그리운 날에
[충북일보] 육체노동 정년이 30년 만에 바뀌었다. 대법원이 육체노동자의 노동가동 연한을 기존의 60세에서 65세로 올려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60 청춘'을 대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1일 물놀이 사고로 사망한 아이의 부모가 수영장 운영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이 같은 판단을 내렸다. 사망한 아이가 60세가 아닌 65세까지 일한다는 전제로 배상액을 계산했다. 이번 판결은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기초연금 대상은 이미 60세 이상에서 65세 이상으로 바뀌었다. 산업현장 곳곳에서 일하는 60세 이상 인력은 적지 않다. 통계청의 고용통계를 보면 60세 이상 경제활동 참가율은 40%에 육박하고 있다. 우리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시대에 맞는 적절한 판단이라고 여긴다. 노동정년의 변화를 반영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노동정년 변화는 1989년 55세에서 60세로 올린 이후 30년 만이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노동정년은 노동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최고 나이를 말한다. 사망하거나 노동력을 잃은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계산할 때 기준이 된다. 당연히 자동차보험료 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충북일보] 기자는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2박 3일간 부산여행을 다녀왔다. 10여년 만에 찾은 부산에는 '가봐야 할 곳'도 '먹어야 할 것'도 정말 많았다. 그 가운데 벽화마을로 잘 알려진 '감천문화마을'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기자는 그동안 관광산업에 관심이 많아 청주의 대표 관광지인 수암골을 종종 취재하곤 했다. 그때마다 수암골과 비교되는 감천문화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곳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수암골과 감천문화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모인 피란민들이 형성한 곳이다. 탄생 배경이 비슷한 만큼, 두 곳의 모습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두 곳은 너무나 달랐다. 순환 셔틀버스(20인승)가 산 아래부터 감천문화마을까지 쉴 새 없이 관광객들을 실어 날랐다. 이 때문에 마을 안으로는 차가 거의 다지니 않아 관광객들이 쾌적하고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주말이면 차와 보행자가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는 수암골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감천문화마을의 규모가 수암골보다 훨씬 큰 이유도 있겠지만, 즐길거리 역시 감천문화마을이 월등히 많았다. 대형 카페와 음식점들
가깝게 지내는 건축학 전공 교수 두 분이 필자의 도산서원 출입을 궁금해 하더니 아예 도산서원 답사에 설명을 해 달란다. 평소 도산서원 관련 공부는 조금 했기에 역사적 사실이나 연유 설명이야 하겠으나 건축 관련으로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은 터였다. 기껏해야 도산서원의 전체 구성이 삼진식의 배치에 전학 후묘의 전형적인 형태요, 단층팔작지붕의 전교당에 광명실이 장서고라서 통풍을 유념하여 누각 식으로 건립되었다는 수준인데 이 정도로야 어디 전공자의 안목에 부응하겠는가. 궁즉통이라! 무심히 넘나들던 출입문 하단에 결구된 북 모양 나무 장식에 눈이 간다. 무슨 이유로 이 같이 구성했을까· 선생 사당에 후학들이 배알 방문하는 순서는 곡구암에서 현재 현판이 없는 외문을 지나 진도문을 통해 서원 경내로 들어와서 마음을 다시 가다듬은 뒤에 상덕사 내삼문으로 들어가 알묘를 하고는 전교당에 올라 원규 등을 살피고 나서 도산서당에 들러 선생의 체취를 그리워하는 순이다. 그러므로 각 문은 건축상 중요한 위치에 있으리라. 세 개의 문 하인방 밑에는 모두 북모양 장식이 전면으로 돌출되어 있다. 이를 심방목이라 하는데 기능과 그 뜻은 무엇일까. 건축 기법에서는 일각문 아래 흔히…
시래기가 얼추 물렀다. 조반을 먹기 전 끓기 시작한 게 두 시간 남짓이다. 뚜껑을 열고 좀 더 두기로 했다. 김이 서리고 훈훈한 기운이 돈다. 깨끗이 헹궈서 국도 끓이고 나물로 먹으면 한동안은 반찬 걱정 없다. 벼 타작이 끝나면 바깥마당에 짚 낟가리가 쌓인다. 추수가 끝나고 농한기가 되면 아버지는 머슴을 시켜서 짚을 썰도록 했다. 멍석을 깔고 작두를 설치한 뒤 마당 가득 짚북데기를 부려 놓았다. 한 사람은 작두를 밟고 또 한 사람은 짚을 매긴다. 한 번 썰고 그리고는 다시 볏짚을 넣고 그럴 때마다 짚 무더기는 투두둑 잘려나갔다. 소가 먹을 여물거리는 시래기를 엮어 달고 난 뒤에 준비한다. 추워지면 여름내 풀 뜯던 소는 먹을 게 궁해지고 볏짚을 썰어 여물을 만들게 된다. 우리 집 암소 누렁이의 배부른 겨울나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겨울이면 누렁이의 콧김도 한 자는 넘게 서린다. 한 해 농사가 끝나면 줄잡아 석 달 남짓은 휴식에 들어간다. 겨울나기 장비라야 두툼하게 깔아둔 볏짚과 등에 걸친 덕석 한 장 뿐이었으나 아침저녁으로는 뜨거운 여물을 먹을 테니 그만해도 배부르고 호사스럽다. 저녁이면 머슴 아저씨는 사랑채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다. 김이 오
K 문고에 가면 빼놓지 않고 들르는 코너가 있다. 그 가게는 만년필부터 독특한 모양의 안경테와 서류 가방까지,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으로 채워져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만년필 앞에서 한참을 머무른다. 이런저런 모양의 만년필을 구경하다 보면 분주했던 마음도 차분해지고, 끼적거리고 싶은 충동이 손끝에서 저릿하게 올라온다. 사실 편리함에서 보자면 만년필은 다른 필기구에 비해 한참을 밀린다. 몸통을 열어 비어있는 통 안에 잉크를 채워 넣고 펜촉 끝으로 잉크가 나올 때까지는 작은 수고와 약간의 시간마저 필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빠르고 편리한 것을 좇아간다. 버튼만 누르면 심이 나오는 간편한 볼펜에 밀려 만년필은 시나브로 사람들 손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세월 뒤편으로 사라진 만년필이 요즘 들어 부쩍 눈에 띈다. 빠른 속도에 지친 이들이 느리지만 쉼이 있고, 번거롭지만 여유를 주는 만년필의 아날로그 정서가 그리워서 다시 찾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대부분 아이들이 만년필이나 작은 한영사전을 선물로 받았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후 아이들은 선물 받은 만년필로 영어 알파벳도 쓰고 어려운 한자도 쓱쓱 써 내려갔다.
잠을 설쳐가며 긴장과 설렘을 가지고 첫 출근을 했던 것이 어느덧 6개월 전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시보가 해제되고 지방행정서기보시보에서 '시보'라는 두 글자가 빠졌다. 처음 민원대에 앉아있는 것조차도 어색하고 서투른 민원 안내에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했던 기억이 어제 일만 같다. 이젠 업무에 익숙해졌지만 다른 사람들의 다른 요구들에 슬슬 지쳐가는 요즘에 '시보 해제'라는 글자에 책임감이 드는 것을 보면 이젠 정식 공무원이 됐음을 몸소 느낀다. 지난 6개월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봤다. 임명장을 받고 내가 맡은 업무는 유기한 민원이다. 1일 이상 처리기한이 소요되는 민원신청을 받거나 민원접수를 담당한다. 그중 접수 방식이 바뀐 분야가 있는데 민원24시를 통해서만 접수가 가능하도록 접수절차가 바뀐 것이다. 그런데 민원인이 바뀐 것이 복잡하다고 예전처럼 해달라고 요청했고, 당연히 절차상 접수해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민원인은 당장 급하고 멀리서 왔다며 이런 요구를 불편하게 느꼈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셨다. 그 당시에는 처음 겪는 상황이라 무척 당황스러웠고 이 일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그럴 때마다 작은 봉사에 감사를 표하는 다
삶을 사노라면 본의 아니게 화가 치밀 경우가 있다. 웬만한 일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향이어서일까. 평소 화가 나도 참고 삭히는데 익숙하다. 이는 어쩌면 지난 십 수 년 넘게 화를 참는 일에 적응이 돼서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그야말로 좋은 일 하고 뺨 맞았을 때이다. 어느 여인이 자신이 하는 일이 서투르다며 도움을 청해 왔다. 내가 그 일에 능숙한 것은 아니지만 백짓장도 맞들면 나을 듯하여 미흡하나마 힘을 보탰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면 내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한다'라는 옛말이 맞는 성 싶다. 자신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듯하자, 그녀는 네 덕 언제 봤느냐는 식으로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토사구팽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없는 말을 지어내어 험담을 했다. 이로 인하여 나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에 여념 없었다. 남에게 말 한마디라도 서운하게 하는 것을 경계해 왔던 나로선, 그녀의 태도를 지켜보며 황당한 마음뿐이었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받는 마음의 상처는 치료할 묘약도 없다. 배은망덕하고 표리부동한 그녀의 이중성에 인간적 실망을 하며, 추후엔 그 누구도 나에게 손을 내밀면 단호히 뿌리쳐야겠다는 각
[충북일보] 120조원이 투입될 'SK하이닉스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부지가 경기도 용인으로 정해졌다. SK하이닉스는 "특수목적회사(SPC)인 ㈜용인일반산업단지가 어제(20일) 용인시에 투자의향서를 공식 제출했다"고 밝혔다. 정부에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로 용인을 정해달라고 요청한 셈이다. SK하이닉스와 국내외 협력업체 50여 곳이 참여하는 특수목적회사가 신청한 부지는 용인시 원삼면 일대 448만㎡(약 135만평) 규모다. 전국지방분권연대는 즉각 반발했다. "국가균형발전 역행"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21일 오전 11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균형발전을 내건 정부가 정작 수도권 규제 정책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가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을 불쑥 발표했다"며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 클러스터를 추진하는 일은 곧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총체적 실패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에도 용인 부지 결정은 좋지 않다. 우려가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청주는 그동안 경기도 용인과 이천, 충남 천안, 경북 구미 등과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실리의 길을 찾아야 한다.…
'금 밟았어!' 하는 말은 참 단호한 규정이었고 처벌이었다. 어린 시절 사방치지를 하거나 해바라기 놀이를 할 때 상대편의 '금 밟았어!' 하는 한 마디면 찍 소리 못하고 순서를 상대에게 내줘야 했다. 우리들만의 질서이고 법이었다. 그리고 깔끔한 승복이었다. 그어진 금은 내 것임을 알리는 경계이고 허락 없이는 들어올 수 없다는 경고인 셈이다. 옆집과 담장을 쌓고 있는 것, 나라가 국경을 알리는 철망을 치는 것도 금을 밟고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이다. 마음에도 이렇게 보이는 담장을 쌓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예고 없이 벌컥벌컥 마음의 문을 열거나 담을 허물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높은 담이나 법이 남의 침입을 막는 것이라면 질서나 예절은 마음에 쳐진 금이 될 것이다. 지난해에는 그 금을 밟고 들어온 사람 때문에 골탕을 먹었다. 해를 끼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둥 거짓말 좀 한 것이 뭐 그리 큰일이냐는 둥의 변명을 늘어놓는다. 양심도 없이 도덕과 예절의 금을 밟고 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그러지 말라는 경고에 절대로 승복하지 않는다. 남의 집 담을 넘어 들어와 도둑질을 하고도 뭐가 잘못이냐고 대드는 뻔뻔함을 보는 것 같아 어
요즈음 5,18민주화 유공자명단을 밝히라는 우파단체들과 유튜브 언론인들의 주장이 온 세상이 떠들썩하며 나라가 시끄럽다. 더구나 국회에서 5,18민주화운동의 공청회가 열리며 그 행사에 참석해서 발언한 야당 국회의원들을 제명하라는 요구에 나라 전체가 들먹들먹 한다. 그러자 우파단체에서는 국가유공자들인데 명단 발표를 하라고 하는데 왜 못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라고 또 시위중이다. 어떤 국회의원은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을 처벌하자는 반민주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고 있으니 뭐가 민주화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유공자들의 명단을 관리하고 도와주는 일을 하는 보훈처에서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발표를 못한다고 버티고 명단 자체가 없다고 발뺌을 하기도 한다. 5,18유공자의 발굴과 심의권은 광주시에서 움켜잡고 있어서 더욱 논란을 키우고 있는 형국인데 국가유공자를 발굴하는 업무를 국가가 아닌 지자체에서 한다는 자체가 말썽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유공자 발굴이니까 광주에서 쥐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추천만 국가에 해주는 역할만 해도 충분 할 것 같은데 굳이 오해를 받을 소지를 알면서 추천권과…
해가 뜨지 않을 무렵인 이른 새벽 4시, 모두가 잠자고 있을 시간에 젖소 농가는 일찍이 착유를 시작한다. 1년 365일 꼬박 이렇게 일찍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만큼 축산 농가는 쉴 틈이 없다. 한우 농가도 마찬가지다. 내 자식들 아침밥을 준비하듯 잘 마른 볏짚과 풍부한 영양소로 가득한 사료를 정성을 다해 이른 아침부터 급여를 한다. 축산 인들은 밥을 먹기 전, 소를 키워내기 위해 배고픔도 잊고 일을 시작한다. 축산업은 힘든 직종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의 식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야이지만 힘들고 고된 노동을 이겨내야 한다. 최근에는 친환경 축산이라는 키워드가 급부상하면서 축산업의 형세가 변하고 있다. 보은군은 깨끗한 축산 이미지 제고를 위해 가축분뇨 악취제거에 도움을 주는 가축생균제 지원사업 및 미네랄제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시설 현대화사업 등 축산 농가의 경영 안정 및 생산성 향상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도내 11개 시·군 중 7번째 면적인 보은군의 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 3만3천680명으로 면적 대비 인구수가 매우 적다. 반면 축산 규모는 그와는 정반대이다. 20
아내의 프롤로그 정연덕 충북시인협회 새벽을 음모했던 무력한 몽환의 난동자들 불이 켜지고 스치는 바람에 나부끼는 붉은 색조의 그림들이 옷을 벗기 시작한다 무엇이 그렇게 중증의 질고라고 아우성인가 무대에서 내려와서 아직도 대사를 읍조리고 있나 빠른 템포로 소화해내는 그의 창백한 시나리오 몽골의 모래바람 속에서 혼자 우는가 모두 떠난 사막의 질곡 저주받은 영혼의 고향 무서워요 제 속을 만져 봐요 어린새끼의 눈동자 얽혀진 흰 뼈들이 절망의 유서를 띄운다 흐느낌의 생 두려움의 자궁 속으로 묻힌다 아직 눈물의 의미를 파먹고 살만한 곳이라 붉은 포도즙을 짜서 비워둔 독에 채워도 좋으리 멀티포엠시나리오에 생성의 이미지 클릭하자 창백한 아내의 보물창고가 붉게 빛난다
[충북일보]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의 해다. 세계가 감동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해다. 시대의 요구에 몸을 던진 사람들의 함성이 물결친 해다. 3.1운동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100주년의 해에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야 한다. 한일관계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관계 회복의 전기를 찾아내야 한다. 원망이 크다 보니 국민감정이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 일본의 평화 위협 행위는 도를 넘고 있다. 일본 자위대 소속 초계기가 네 차례나 우리 해군 함정에 위협적인 근접 비행을 했다. 기존의 외교적 갈등에 군사적 갈등마저 더해지고 있다. 자칫 한일관계가 언제, 어떤 식으로 파탄 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급기야 일본의 시민사회가 나섰다. 일본지식인 226명은 지난 6일 악화일로의 양국 관계를 우려하는 '2019년 시민 지식인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무라야마 도미이치와 간 나오토 총리 담화(한일 합병과 식민 지배 사죄)에 기초해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이야말로 한일, 북일 관계를 지속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성명은 한일 관계 악화를 더 방치해선 안 된다는 간곡한 호소다. 이들은 올해 3·1…
1919년 3월1일. 그녀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여성해방 없이는 진정한 조국의 독립도 없다고 믿었던 박차정. 서른넷. 그녀의 짧은 생은 여성해방과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이었다. 1919년 2월, 서울에서 전달된 독립선언서가 개성의 한교회에 도착했으나 섣불리 독립선언서를 배포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일은 정말 위험한 일이었기에, 선뜻 나서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때 전도부인인 어윤희 선생이 나서서 조선독립선언서 80매를 전달받아 보따리 장사를 가장하고 가가호호 독립선언서를 돌렸다 우리는 왜 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3·1운동을 기념하는 것은 다소 고루하게 느껴졌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하고 있다. 3.1운동은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독립을 넘어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선포한다. 즉 봉건 양반체제의 계급사회에서 억압받던 민중들이 주체가 되는 대동세상을 만들겠다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의가 살아있는 혁명적 선포이다. 이 혁명적 사건에 남녀의 따로 있지 않았다. 3·1운동을 계란으로 바위치기로 보았던 윤치호조차 "경찰서에서 구치소로 이감되는 여학생들의…
"우리 동에 막내가 들어왔으니 희경 씨가 멘티로 삼아 잘 가르쳐봐" 처음 팀장님이 신규직원에 대한 멘토링 권유를 하셨을 때의 감정은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내 마음은 아직도 파릇파릇한 햇병아리 직원인데 내가 벌써 누군가의 멘토를 맡을 시기가 되었다니. 신규 직원을 맡아 가르칠 능력이 안 된다 생각했지만 임용장을 받고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막내 직원을 보자 '그래, 좋은 선배가 아니면 좋은 언니라도 되어주자'라는 마음으로 멘토 역할을 수락하게 됐다. 그러나 막상 멘토링 활동 계획서를 작성하려고 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은 맛있는 밥을 먹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공통의 취미생활을 찾았다. 겨울이면 뜬금없이 생각나는 취미. 바로 '뜨개질'이었다. 젊은 여자 둘이 모이면 으레 그렇듯 어떤 색깔로 할지, 어떤 모양이 좋을지 서로 검색한 화면을 보며 어떤 목도리를 만들어 볼지 한창 얘기하던 중, 갑자기 우리 동네 이웃들에게 늘 많은 도움을 드리지 못했다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생겨났다. 이런 내 마음을 이야기하자 신규 직원은 흔쾌히 목도리를 떠서 필요한 분들께 드리자고 말해 주었다. 이후 우
[충북일보] 청주의 대표음식이 무엇인가. 청주를 대표할 만한 음식이 있기는 한 건가. 청주시는 '반찬등속'이란 요리책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때마침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반찬등속이 국립청주박물관으로 이관됐다. 충북도 문화재로도 지정 예고됐다. 청주의 대표음식 발굴·개발에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찬등속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청주 양반가 음식문화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민간인이 한글로 간행한 충북 최초의 음식서적으로 기록문화유산이다. 32페이지 분량의 조리서로 누가 썼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진주 강 씨 문중의 며느리인 밀양 손 씨가 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집안 일상에 관한 책이기에 굳이 작자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1913년 12월24일 필사가 완료된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가로 19.3㎝, 세로 20.5㎝ 정도로 가는 붓으로 필사했다. 겉표지에는 반찬 하는 이야기라는 의미의 '찬선선책(饌饍繕冊)'이 적혀 있다. 김치류와 반찬류, 떡류, 만두, 과자류, 음료, 술 등 44가지 음식 조리법이 담겼다. 당시 청주지역의 식생활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청주시는 여기에 나오는 옛날
가장 위대한 영웅의 죽음은 그 국가의 운명과 일치한다. 는 말이 있다. 예컨대 계백의 죽음과 백제의 멸망이 일치하고 정몽주와 고려가 같은 세력의 칼에 죽음을 맞은 것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특별한 예는 이순신이다. 그는 덕수 이씨 이름 있는 문관 집안에서 1545년 4월 28일 태어났다. 그 조부가 평시서라는 벼슬을 버리고 조광조趙光祖를 따르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칼끝에 참변을 당했다. 그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가난과 위기에 쫓기다가 1576년 뒤늦게 32세 되던 해 2월, 무과에 합격하고, 그해 12월 함경도 삼수 고을의 동구비보 권관(종9품)으로 발령 받은 것이 첫 부임지였다. 그리고 여러 곳 전근 다니다가 1587년 열 번째 근무지로 두만강 입구 녹둔도 녹둔관(종4품)으로 부임했다. 국경지대인 그곳에는 툭 하면 여진족이 침탈했다. 그가 부임하기 전에도 그들이 기습하여 조선 백성 160명을 포로로 잡아가고도 또 침략해 왔다. 이순신은 뛰어난 용기로 그들을 물리치고 50명의 포로를 석방시켰다. 그 공적을 조정에 알리는 과정에서 상사인 병사 이일의 모함으로 부패된 조정으로부터 육군 장교가 이등병으로 무참하게 강등된 것이 첫 번 째 백의종군이었다.
도심 한복판 대낮의 공원은 군데군데 무리 지어 윷판을 벌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친구들과 약속 장소였던 의자에 앉아 옛 추억을 더듬어 보고 싶은 마음에 찾았건만. 삼삼오오 의자에 앉아 이야기 나누던 교복 입은 학생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형언할 수 없는 낯섦에 마음이 허전하다. 홀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은행나무 아래서 윷판을 벌이고 있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농악을 울리며 신명 나게 놀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아니다. 그저 애꿎은 땅바닥에 윷가락을 던지며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듯하다. 가장이란 이름으로 집안을 호령하던 당당했던 모습을 엿볼 수도 없다. 손은 주머니에 찔러 놓고 몸은 움츠린 모습들. 축 처진 어깨들이 오늘날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려니 생각하니 먹먹하다. 이맘때면 앞마당이 넓은 옆집 친구네 집에서는 "윷이다" 하며 "한사리 더"를 외치며 박장대소하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멍석 위로 떨어지는 윷가락의 어정쩡한 모양에 "도"다, "모"다 실랑이를 벌이며 왁자지껄하던 광경. 말판을 놓고 "잡아라, 업어라" 신경전을 벌이며 시끌시끌했던 장면. 마당 한쪽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를 자르던 아주머니의 표정. 막걸리 한…
[충북일보] 필자가 건축과 건축물관리팀으로 온 지 5개월이 지났다. 우리 팀에서 다루는 업무는 태어나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는 사람의 일생처럼 건축물의 일생, 즉 대장 생성, 품질관리, 철거에 의한 대장말소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시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신·증축 등으로 사용 승인된 건축물은 신속·정확하게 신규 작성해 시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자료의 정합성 및 누락 자료를 수정·보완하는 등 품질관리를 강화해 과세의 기초 자료 및 공공데이터 활용에 정확한 자료를 제공한다. 또 안전한 철거 환경 조성을 위해 인·허가받은 건축물은 철거 예정일 3일 전 철거신고를 해야 함을 안내·홍보하고 있다. 이렇게 구구절절 업무에 대해 늘어놓는 이유는 건축물대장의 중요성을 많은 이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새로운 건물을 신축할 때 인·허가에 대한 관심이 쏠려 인·허가 업무를 관장하는 공무원, 설계사무소 관계자, 건축주 등 인·허가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으나 정작 사용승인 후 관리되고 있는 공적장부인 건축물대장에 대한 중요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는 아이를 임신한 산모가 태교와 사랑을 듬뿍 주고 아이가 건강하게 나오기를…
한국은 관존민비(官尊民卑) 사회다. 예로부터 관과는 시비하지 말라고 했다. 유일하게 관을 이기는 민(民)이 있다. 언론이다. 언론이 한마디 하면 경찰은 물론 검찰도 움찔한다. 권위주의 시절 성역으로 여겼던 정보기관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은 물론 청와대까지도 비판을 일삼는다. 그런 권력은 누가 주는 걸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처럼 언론권력도 독자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언론은 누가 감시해야 하는 걸까· 당연히 독자가 감시해야 마땅하지만 독자는 그럴만한 조직도 힘도 없다. 자율적인 정화기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요즘 언론의 자율정화기능을 믿어도 되느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사건이 터지고 있다. 소위 박수환 문자라는 것이다. '뉴스컴'이라는 광고 대행사 여사장이 유력 언론사 간부들과 주고받은 문자가 공개되면서 언론인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사실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이니 공직만큼의 비리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은 했다. 그래도 남을 비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니 공직자만큼 추(醜)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었다. 그런 신뢰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유력 언론
[충북일보] 한반도 평화는 시대적 소명이다. 일시적인 평화가 아닌 항구적 평화를 이뤄내야 한다. 항구적인 평화는 곧 완전한 비핵화다. 시기는 조절될 수 있지만, 목표는 바뀔 수 없다. 철학의 문제가 아니다. 정쟁(政爭)의 도구는 더더욱 아니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불현듯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유격장군 심유경(沈惟敬)과 일본의 고니시유키나가(小西行長)의 사기극이 머릿속을 맴맴 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강이남 할지(割地) 심유경은 1592년 명 군대를 따라 조선에 들어왔다. 평양성 전투에서 명나라가 대패하자 일본과 화평(和平)을 꾀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평양성에서 일본의 고니시를 만나 협상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겨울이 되면서 궁지에 몰린 일본은 이순신 장군의 남해 재해권 장악으로 보급로까지 차단을 당하자 재협상에 나섰다. 당시 일본은 명 황녀를 일본 천황의 후궁을 삼는 한편, 무역증서제 부활, 양국 대신 각서 교환, 조선 8도 중 4도 일본에 이양, 조선 왕자·신하를 일본에 볼모로 보내고, 포로로 잡고 있는 조선 두 왕자 석방, 일본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조선 권신의 서약 등을 요구했다. 반면, 명나
[충북일보] 충북도내 시·군 중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없는 지역은 보은·영동·증평·진천·괴산,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없는 곳은 괴산·단양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시군구 및 전문과목별 활동의사인력 현황'에 따르면 2024년 7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 1천명당 의사는 3.2명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의사 2.1명, 치과의사 0.6명, 한의사 0.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천명당 활동의사수가 가장 적은 지역은 '강원 고성'으로 인구 천명당 1.0명으로 전국 평균의 3분의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강원 양양(1.0명)·강원 인제(1.1명)·강원 정선(1.3명)·강원 횡성(1.3명) 순이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없는 지역은 229개 시군구 중 66개 지역이나 됐다. 충북에서는 보은, 영동, 증평, 진천, 괴산 등 5개 군이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없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없는 지역도 229개 시·군·구 중 14개 지역이나 됐다. 충북에서는 괴산, 단양군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는 지역도 11개 지역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산부인과 전문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청주에서 자궁출혈 증상이 있는 임신 15주차 임신부가 병원을 전전하다 신고 접수 2시간 만에 수술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3일 충북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오전 5시께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서 "임신 15주차 산모인데 복통이 심하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119 구급대는 임신부가 하혈과 함께 복통을 심하게 호소하는 등 위급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구급대는산모를 흥덕구의 한 산부인과로 이송했으나, 응급 수술이 필요하단 이유로 상급병원 이송을 권유했다. 구급대는 청주권 주요 병원 6곳의 수용 가능 여부를 알아봤지만,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다며 이송을 모두 거절했다. 소방당국은 충북 권역까지 넓혀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수소문 했다. 이후 진천의 한 병원에서 산모를 수용할 수 있단 답변을 받았고 119 신고 접수 2시간 만인 오전 7시 10분께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당시 산모는 자궁출혈이 심해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매우 긴급한 상황이었다"며 "안타깝게도 태아는 사망했다"고 말했다. 현재 산모는 수술을 받은 뒤 안정을 되찾았다. /
[충북일보] 오곡이 풍성한 추석이 다가왔다. 누구나 풍요로울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손을 잡아야 주어야 할 이웃이 많다. 이런 이웃을 위해 추석 연휴에도 나눔과 봉사를 말없이 실천해 온 '키다리아저씨'가 있다. 30여년간 일상의 나눔을 이어오고 있는 최종길(48) LG에너지솔루션 오창2 업무지원팀 책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중학생때인 15세부터 일찌감치 나눔의 의미를 알고 몸소 봉사를 실천해오고 있다. 최 책임은 "당시 롤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보육원에서 체험활동을 온 5살짜리 아이를 케어했던 적이 있다. 스케이트를 가르쳐주고, 쉬는 시간에 품에 안겨 잠든 모습을 보며 아이의 인생을 바라보게 됐다"며 "당시에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옷을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5살 아이와의 만남 이후 그의 시선은 달라졌다고 한다. 성인이 돼 원료 공장에 입사했던 그는 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단순히 돈만 후원하는 것이 아닌 직접 찾아가 아이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할머니와 손주 두 명이 사는 조손가정이었다. 당시 할머님을 설득해 아이들과 하루종일 놀이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