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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

'금 밟았어!' 하는 말은 참 단호한 규정이었고 처벌이었다. 어린 시절 사방치지를 하거나 해바라기 놀이를 할 때 상대편의 '금 밟았어!' 하는 한 마디면 찍 소리 못하고 순서를 상대에게 내줘야 했다. 우리들만의 질서이고 법이었다. 그리고 깔끔한 승복이었다.

그어진 금은 내 것임을 알리는 경계이고 허락 없이는 들어올 수 없다는 경고인 셈이다.

옆집과 담장을 쌓고 있는 것, 나라가 국경을 알리는 철망을 치는 것도 금을 밟고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이다.

마음에도 이렇게 보이는 담장을 쌓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예고 없이 벌컥벌컥 마음의 문을 열거나 담을 허물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높은 담이나 법이 남의 침입을 막는 것이라면 질서나 예절은 마음에 쳐진 금이 될 것이다.

지난해에는 그 금을 밟고 들어온 사람 때문에 골탕을 먹었다. 해를 끼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둥 거짓말 좀 한 것이 뭐 그리 큰일이냐는 둥의 변명을 늘어놓는다. 양심도 없이 도덕과 예절의 금을 밟고 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그러지 말라는 경고에 절대로 승복하지 않는다. 남의 집 담을 넘어 들어와 도둑질을 하고도 뭐가 잘못이냐고 대드는 뻔뻔함을 보는 것 같아 어른으로 사는 모습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도 했다.

어린 시절 사방치기를 할 때 깨진 기왓장을 들고 세워둔 돌을 맞추기 위해 발끝을 최대한 금에 가까이 대려고 애를 썼었다. 몸을 잔뜩 앞으로 기울이고 발가락에 힘을 잔뜩 주고 금을 밟지 않으려했다. 그러다 약간의 움직임으로 금을 살짝 건드리면 상대편 친구의 "금 밟았어!" 라는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진다. 그러면 대부분 안 밟았다고 우기지 않았다. 금세 승복하고 상대에게 공격권을 내어준다. 법으로 질서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들끼리 만든 놀이 규칙이고 예절의 금이었다. 그리고 절대적인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고 깨끗한 승복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치기, 제기차기, 사방치기, 핀 따먹기를 하면서 묵시적 금을 지켰고 온가족이 모여 했던 윷놀이에서도 그 질서의 금은 잘 지켜졌다. 대보름을 맞이하여 글을 쓰는 동인들이 윷놀이를 하자고 한다. 생각만 해도 벌써 즐거워진다. 윷놀이를 하면서 수없이 상대의 말을 잡을 것이고 우리 편 말도 수없이 잡히고 말 것이다. 윷가락이 모로 누웠느니 섰느니 하며 꽤나 시끄러울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윷판을 엎어버리고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떠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이 그을 쓰고 있는 중에 관리실 기사가 와서 변기의 물내림 관을 교체하고 있는 중이다. 오래된 아파트라서 낡은 부품을 찾는 것부터 어려운 일인 줄 알긴 하겠는데 기사님이 자꾸만 혼잣말로 욕을 한다. 나 들으라는 소리인 것 같아 무섭고 불안하다. 다른 아파트는 입주민들의 갑질이 심하다고 하지만 우리 동네는 역으로 입주민인 우리가 늘 '을'이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경비아저씨에게 쓰레기는 10시 이전에 버리라고 혼이 난 적도 있고 특정주민을 욕하는 소리를 고스란히 들어야 했던 적도 있다. 경비 아저씨와 입주민의 금이 지워진 것 같다.

이런 사소한 일로부터 감정을 상하는 일은 남이 쳐놓은 경계를 무단으로 침범하기에 생기는 문제이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예고 없이 훅 금을 밟고 들어오는 것. 그리고는 나쁜 마음이 없었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한다. 이럴 때마다 "금 밟았어요!" 라고 단호히 말해주고 싶다. 깨끗한 승복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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