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생쥐는 천장 구멍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을 따라가 본다. 그 빛은 소녀가 혼자 자는 게 무서워서 켜 놓은 전등이었다. 그렇게 해서 겁 많은 소녀와 집 밖에 처음 나온 생쥐는 만나게 되고, 둘의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녀는 귀여운 생쥐를 소름 끼치게 징그러운 동물로 보고, 생쥐는 겁쟁이 소녀를 동화 속에서만 본 아름다운 요정으로 보았다. 그때부터 둘의 오해와 착각이 뒤엉키는 엉뚱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생쥐를 피하려고 요리조리 폴짝폴짝 뛰는 소녀를 보고, 생쥐는 요정이 기뻐서 춤을 춘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요정과 함께 빙글빙글 춤을 춘다. 소녀는 생쥐가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으로 오해하고 얼른 향수병을 집어서 생쥐의 주둥이에 뿌린다. 하지만 생쥐는 향긋한 향수가 행운을 주는 마법의 물이라고 착각한다. 향수 때문에 눈이 따가워서 눈물을 흘리는 생쥐를 보고 소녀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때도 생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요정이 자기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장면마다 하나는 소녀의 시선으로, 또 하나는 생쥐의 시선으로 표현되었다. 일상적인 소재에 동화적인 판타지가 인상적이다. 소녀에게는 무서운 기억이지만, 생쥐에겐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
한범덕 시장이 돌아왔다. 그러나 10년 전의 패기 찬 모습은 아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 한결 노련해진 것 같다. 청주시장을 비롯해 도지사 국회의원 선거 등에도 도전해 보았으니 정치가 얼마나 어려운 지도 잘 알 것이다. 청주시장이란 권좌에서 물러나 야인생활도 해봤다. 송죽매화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엄동설한에도 변하지 않는 절개 때문이다. 이제 누가 필요한 사람이고, 누가 아첨만 떠는 사람인지도 구분할 줄 아는 눈을 가졌을 것이다. 야인시절 우연찮게 마주치는 일도 간혹 있었다. 초대 받지 않은 행사에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을 볼 때도 있었다. 매연이 난무하는 길바닥에 서서 지나가는 차를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하는 모습도 보았다. 한 표의 중요성이 위민의식으로 승화됐을 것이다. 돌아온 한범덕 시장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지만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게 녹색수도 청주란 시정목표다. 그가 시장에서 물러나고 이승훈 시장이 취임해서 으뜸경제란 구호로 바꾸었을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주를 상징할만한 구호는 정파나 시장에 상관없이 계승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한범덕 시장이 당선되었을 때 맨 먼저 생각난 게 녹색수도 청주란 말이 부활할 것이란 기대였다. 그 이
갑질횡포에서 시작한 대한항공의 불똥이 계열사인 저비용항공사(LCC) 진에어의 면허취소 여부로 번지고 있고, 청주공항의 저비용항공사(LCC) 국제운송면허를 재신청한다고 하며, 이시종 충북지사는 헌법소원을 내서라도 청주공항 저비용항공사 유치를 관철하겠다고 한다. 지역 법조인으로써 헌법소원의 타당성에 궁금해졌다. 저비용항공사란 안전관련비용(인력·장비·시설 등)이외에 다른 서비스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여 수익을 극대화하는 모델을 말한다. 즉 안전과 관련해서는 대형항공사와 같은 규제를 받는 것이여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항공사업법 제8조에서 사업자 간 과당경쟁의 우려가 없을 것을 기준으로 삼은 점이다. 그러나 자유경제시장 체계에서 자유경쟁이 원칙이다. 과당경쟁과 자유경쟁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며 그 종이는 허가권자의 순수한 재량에 달려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오히려 2017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시장구조조사 보고서에 항공운송업이 독과점 구조 산업으로 분류된 것을 유의하여 보아야 한다. 즉 현재 항공운송업은 과당경쟁이라는 방패을 들고 있으나 자유경쟁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설립된 진에어는 대한항공이 100% 출자
[충북일보] 혹자는 청와대와 내각에 충북 인사가 다수 발탁되지 않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냐'고 반문한다. 오히려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지역 안배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시대적 흐름에 맞는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뿌리 깊은 연고주의 '연고주의(緣故主義)'는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전통적 사회관계의 복합적인 그물망을 의미한다. 일종의 '인적 네트워크(Network)'다. 연고주의는 그동안 부정적인 효과를 종종 야기했다. 마피아 조직 내의 의리와 충성심이 결코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이유로 과거 연고주의는 비합리주의, 정실주의, 배타적 집단주의로 간주돼 사회발전의 장애요인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신뢰와 같은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연고주의는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을 줄이거나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공동체의 문화적 토대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부산·경남(PK) 중심의 청맥회라는 모임이 있었다. 지난 2006년 3월 한 언론의 보도를 보자. 부산·경남지역 유력 인
[충북일보] 보은 속리산 법주사 등 한국의 산지승원 7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됐다. 이번에 지정된 산지승원은 보은 법주사,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이다. 축하할 일이다. 이번 지정으로 한국은 13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물론 충북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문화재는 어느 곳에 있든, 고유의 가치를 지닌다. 그래도 세계가 지켜야 할 인류 유산으로 지정은 더 의미 있다. 유네스코가 한국의 산지승원 7곳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이유는 분명하다. 7곳 모두 7~8세기 창건된 절들로 유서가 깊다. 신앙뿐 아니라 수도와 생활 기능을 천 년 이상 유지했다. 인류가 지켜야 할 특별하고 보편적 가치가 유산으로 인정된 셈이다. 속리산 법주사 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은 기쁘고 반가운 일이다. 모든 문화재는 누가 인정하든 않든 고유의 가치를 지닌다. 이제 더 잘 보존하고 가꿔나가는 일만 남았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한국의 문화재나 자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처음으로 등재된 건 1995년이다. 이후 문화·자연 유산에 많은 국민적 관심을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 덕분에 전국의 문화재와 자연환경
이번 연재는 손대는 식물마다 죽는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나 우리 집은 식물이 안되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간단하게 다루어 보겠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또는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받은 식물이 금방 죽어나간다면 굉장히 속상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는 우리 집의 실내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로 겉모습만으로 식물을 선택하면서 일어나는 상황인 경우가 많습니다. 식물을 선택하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실 요소는 햇빛과 온도입니다. 우리집 또는 놓아둘 장소의 햇빛과 온도가 어떠한지에 따라서 선택할 식물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만약 식물을 놓아둘 장소가 남향, 동향 또는 서향이라면 식물을 기르는데 큰 문제가 없고 선택할 수 있는 식물의 폭도 넓습니다. 하지만 식물을 놓아둘 장소가 북향이라면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선택하셔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내의 온도 또한 식물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실내식물을 놓아두는 장소가 집이라면 평균 기온이 크게 변동되지 않아 큰 문제는 없겠지만 만약 사무실이나 상가라면 퇴근이나 폐점 이후의 기온까지 고려하여 식물을 선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대게의 경우
전 세계는 월드컵의 열기로 들끓고 있다. 짧은 한여름 밤을 축구경기 관람으로 새우다 시피 보내니 아침10시까지 잠을 잔다. 토요일 둘째네 가족이 와서 온천욕을 하고 시원한 함흥냉면과 쪽 갈비로 저녁을 먹었다. 1학년인 손녀는 쪽 갈비가 맛있다며 성인 1인분을 먹어치운다. 서충주 신도시로 이사 온 후 친정에 오기가 가까워 졌다며 딸들은 좋아한다. 시내에서 들어오는 길목에 탄금호를 끼고 있는 중앙탑공원에 세계조정선수권대회가 열렸던 건물에 있는 커피 집에 들렀다. 시원한 호숫가에 자리 잡아 건너편의 골프장 야경과 어우러져 살랑바람과 함께 밤풍경이 너무 아름답다고 모두가 감탄한다. 여름밤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아름다운 호수공원이 있어 충주의 자랑이 되고 있다. 10시가 넘어 아파트로 들어와서 과일과 맥주를 마시며 자정부터 시작하는 FIFA 랭킹 1위인 독일을 이긴 멕시코전을 관람하기 위해 모두 TV앞에 앉았다. 축구를 유난히 좋아하는 3학년 손자는 눈동자가 빛났다. 주말이라서 마음 놓고 월드컵축구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마음 푸근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어 마음조이며 태극전사를 응원하였다. 광화문거리응원은 2002년 월드컵을 연상시켰다. 강호 멕시코를 이
지구상의 위대한 지도자 토머스에디슨은 일생동안 한 달에 한번 꼴로 총 1천93개의 발명특허를 따냈고 세계적인 기업 GE를 탄생시켰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만 해도 어둠을 밝혀주는 백열전구를 비롯해 소리를 재생해 주는 축음기, 전기를 모아주는 축전기, 영화제작에 필요한 촬영기, 등사기, 영사기 등이 모두 그의 발명품이다. 이런 에디슨이 훌륭한 것은 수많은 발명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 수많은 실패를 이겨내고 결실을 거뒀다는 점이다. 그의 위대한 발명품중 하나인 전구는 적어도 147번 이상의 실패를 딛고 성공을 거뒀다. 이때 한 기자가 물었다. '전구를 만들기까지 수많은 실패가 있었는데 얼마나 좌절을 했나요·' 에디슨은 대답했다. '천만에요, 저는 그때마다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1801년 정적들의 공격을 받아 귀양살이가 시작됐다. 그는 귀양살이 길에서 선영을 찾아 하직인사를 하게 된다. 그는 그때 무너지고 꺾기는 처절한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아버님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어머님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우리 갑자기 뒤집혀져서 죽고 사는 문제가 이
[충북일보] 충북이 시끄럽고 또 시끄럽다. 6·13지방선거 관련 공천 잡음이 커지고 있다. 공천대가 금품거래 의혹파문이 걷잡을 수 없다. 갈수록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광범위한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 충북 공천헌금 의혹 제기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이 발칵 뒤집혔다. 6·13지방선거와 관련 '공천헌금'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충북도당은 자체 진상조사에 나섰다. 충북도선관위도 곧바로 사실관계 확인에 들어갔다. 자유한국당 충북도당과 정의당 충북도당, 민주평화당 충북도당은 즉각 비난 성명을 냈다. 사법당국의 철저한 수사도 촉구했다. 공천헌금 의혹 제기 당사자는 잠적 상태다. 일단 겉으로 드러난 파문은 다소 가라앉는 분위기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추가 의혹이 계속 나오고 있다. 공천 순번 변경, 공천지역 갈아타기, '다'번 경선, 싹쓸이 공천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청주시의원 공천 과정 의혹이 일파만파다. 급기야 '공천장사'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당내 핵심 인사 개입 등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소문까지 잇따르고 있다. 당 차원의 조사에 대한 신뢰도 무너지고 있다. 말로만 떠돌던 공천장사가 충북에서 시도됐다는 자체가 충격적이
2006년의 일이다. 이름 모르는 회남초 졸업생의 감사편지를 받았다. 그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추억을 남겨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사연은 그 1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우연히 제자들이 운영하고 있는 첫 부임지 회남초 졸업생들의 카페를 방문했다. 28년 전의 세월 속에 묻혀있던 추억을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었다. 나도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어 그 때의 추억을 되살려보았다. 어느 날은 비가 와서 차가 빠져 피반령 산길을 걸어서 출근하느라 구두가 젖었던 일부터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추억에 감회가 새로웠다. 문득 내가 가진 사진을 제자들이 가졌을까.아닐 것 같았다. 사진을 스캔해서 카페 앨범에 올려주었는데, 나의 작은 배려가 고마웠다며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리고 또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의 40년 교직생활의 기본 생각은 배려이다. 학생, 학부모, 동료직원, 민원인까지 모두 배려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그것을 '섬김'이라고 표현한다. 교실에서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의 인격체를 고스란히 인정하고 학생 개개인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하는 교사이고자 했다. 학부모들과는 학생교육을 위해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교육주체로 여기며 그들의 요구와
[충북일보] 1995년 6월 출범한 지방자치제가 벌써 7번째 임기에 들어섰다. 햇수로 무려 25년 스물다섯 살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이제 성인의 반열에서 왕성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시기가 됐다. 민선 지자체는 그동안 적지 않은 부침(浮沈)을 보여줬다. 중앙 정치권에서나 볼 수 있는 정략적 태도가 사라지지 않았다.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여야가 바뀔 때마다 화두가 됐지만, 단 한 번도 진정성을 담은 비판과 견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국민들은 당리당략과 무관하게 국민의 입장에서 자당(自黨) 소속 단체장에게도 서릿발 서린 비판과 견제를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정당 색깔이 다르면 대립각을 세우고, 어떨 때는 의도적으로 딴지를 거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지방의회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2일 민선 7기가 출범한다. 이시종 충북지사를 비롯해 도내 11개 시·군 단체장이 공식 취임한다. 재선의 김병우 충북도교육감도 이날 재선 교육감 행보를 시작한다. 우리는 단체장과 교육감은 물론이고, 광역 도의원과 기초 시·군 의원들의 행보를 더욱 주목하고 있다. 비판과 견제야 말로 우리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채찍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행부
내가 몸치라는 걸 중학교 무용 시간에 처음 알았다. 얄팍한 몸 어디에 굵은 철심이라도 박혔는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게다가 움직임마저 한 박자씩 느렸다. 내가 손을 올릴라 치면 친구들은 벌써 내렸다. 나와 운동은 자연스레 멀어졌다. 규칙적으로 피던 붉은 꽃이 어느 날부터 피지 않았다. 꽃이 지니 몸도 시들부들해졌다. 낡은 기계처럼 결삭은 몸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호르몬제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운동 처방을 같이 내려줬다. 오랜 세월 운동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내가 고심 끝에 택한 게 수영이다. 그나마 다른 운동에 비해 움직임이 적어 보였기 때문이다. 몸치가 물에 뜨기까지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었겠는가. 그중에서도 물에 대한 공포심이 제일 넘기 어려운 걸림돌이었다. 대 여섯 살 때, 용진 다리 밑 맴돌이에 빠져 죽을 뻔했던 아찔한 기억이 물귀신처럼 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물 위로 뜨려는 부력과 가라앉으려는 중력 사이에서 몸은 가드락댈 뿐,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킥 판을 움켜쥔 채 이 년여를 버텼다. 어느 날, 아차 실수로 생명줄 같은 판을 놓쳤다. 살겠다는 본능은 나를 한 마리 물방개로 만들었다. 넉더듬이하듯 팔다리를…
골짜기는 완전 별천지다. 멀리 물결처럼 일렁이는 산봉우리와 함께 청옥색 하늘도 푸르다. 빗자루로 쓸어도 될 만치 자욱한 골안개와 바위 틈 어우러진 잔솔나무 몇 그루. 갑자기 세상 모든 게 사라지고 바람 소리만 들려온다. 엊그제 폭우가 쏟아진 뒤 옥같이 맑은 시냇물도 정겹다. 불현듯 여기 이대로 눌러 살면 참 좋을 것 같은 생각. 보이는 것은 하늘과 숲과 개울 뿐 이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모든 시름이 덜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봄에는 진달래가 어우러지고 지금은 온통 녹음에 뒤덮였으나 눌러 살면 과연 아름답게만 보일지 그도 미심쩍다. 인적 드문 골짜기는 철철 계절을 담은 채 그야말로 경관 좋고 공기 맑고 그림 같은 전원생활이 될 것 같지만 풍경은 잠깐이다. 경치가 좋을수록 지대가 높고 결국 밭농사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오래 전 여기 살던 사람들의 정황이 그랬을 거라는 의미다. 끝내는 먹고 살기 위해 돌밭을 후벼 산밭이라도 일궈야 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근심을 덜자고 나온 게 오히려 부추기는 상황이 된다. 요즈음에야 그렇지는 않아도 우선은 교통이 불편하다. 목마르면 샘물을 떠먹고 무료한 날은 발 담근 채 쉴 수 있지만 힘들
고 김환기 화백의 아들 김화영씨가 환기재단을 상대로 한 '동산인도청구소송' 항소가 기각됐다. 어머니가 환기미술관에 기증한 아버지의 유작 130점 중 5점을 반환하라며 제소한 소송에서 패소한 것이다. 환기미술관은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화가 김환기 화백의 유작을 영구 보전하기 위해 김화백의 부인 고 김향안 여사가 1992년 서울 부암동에 설립한 미술관이다. 김향안씨는 2004년 타계했다. 잘 나가던 사립미술관이 내분으로 어수선해진 것은 지난 2008년 김화영 환기재단 이사장이 환기미술관 소장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부터였다. 김 이사장은 미술관 측에 '작품대여 확인증'을 요구하며 환기미술관장과 재단이사가 아버지의 작품을 임의로 내다팔고 있다고 주장해 파란을 일으켰다. 결국 김 이사장은 당시 관장을 횡령과 사문서 위조 등으로 고소했다. 그러나 김 이사장이 주장하는 임의 매각을 입증할 수 없어 사건은 무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다만 문화체육관광부 감사 결과 1994년 미술관 등록 시 수록된 작품 130점 중 5점이 사라진 점은 확인됐었다. 고소를 당한 이사진들은 김 이사장의 해임을 의결했고, 환기재단 이사회의 이사장 해임 사유가 정당하다는…
지방선거가 끝났다. 이번에도 많은 사연과 함께 여러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렸고 게다가 여강 야소의 정국으로 끝났다. 선거의 여운으로 피선거권자였던 사람은 복잡다단한 심정으로 인생을 곱씹고 있을 테고, 투표권을 행사한 사람은 결과로 나타난 세상인심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선거 유세하는 사람들의 말과 반응을 보노라니 중국 송나라의 범중엄이 떠오른다. 북송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탁월한 문학가요 교육가였던 범중엄은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주희는 유사 이래 최고의 일류급 인물이라고 범중엄을 칭송했다. 지독히 가난했던 범중엄이 1년 내 죽만 먹으며 공부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친구가 큰마음을 먹고 맛난 음식을 보냈다. 이 음식으로 기운을 차려 공부하라는 갸륵한 뜻이었는데 범중엄은 맛도 보지 않고 그대로 되돌려 줬다. 기름지고 맛난 이 음식을 먹으면 내 입이야 좋아하겠지만 나중에 악식을 견디지 못할까 염려해 그리 했다며 마음만 받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협박을 하고 모진 감방 생활에도 굴하지 않는 죄수에게 갑자기 목욕을 깔끔하게 하고 옷도 새로 주며 맛난 음식을 먹게 한 뒤에 회유가 안 되면 다시 돼지우리 같은 예전의 감방에 넝마 같은 죄수복을 입히면 견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피서철이 다가오고 있다. 올 봄 전국을 뒤덮었던 미세먼지의 종식시점과 여름 휴가철이 맞물리면서 그 동안 야외활동을 자제했던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장이나 계곡 등으로 휴가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매년 7~8월에 성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피서철 해수욕장 등 관광지에서 여성들의 야외활동이 늘어나고 또한 노출이 심해지면서 범죄 기회가 증가된 것으로 보인다. 피서지에서 많이 발생되고 있는 성범죄 유형으로는 물놀이를 하는 척 하면서 접근해 신체를 만지거나 밀착시키는 행위, 여성들의 신체부위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행위, 즉석만남이 성범죄로 이어지는 경우 등이 있는데 최근 스마트폰 이용자가 늘면서 불법촬영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청에서는 다음달 1일부터 8월 31일까지 두 달간 전국 78개소에 여름 경찰관서를 설치해 경찰관 534명·의경436명을 투입하고 수사·형사·지역경찰 등으로 구성된 '성범죄 전단팀'을 꾸려 불법촬영·강제추행 등 성범죄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성범죄 신고 보상 제도를 활성화해 적극적인 신고를 유도할 계획이다.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상
[충북일보] 청와대가 최근 경제라인을 교체했다. 언론은 고용지표 악화에 따른 문책성 인사라고 분석하고 있다. 경제·일자리 수석만 교체한 것을 보면 청와대가 최근 경제상황을 심각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는 지난 27일 예정됐던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취소했다. 국무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연기를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오후 3시 개최하기로 했던 2차 규제혁신 점검회의는 지난 1월 22일 1차 회의 이후 무려 5개월 만에 열릴 예정이었다. 관계 부처별로 규제혁신 사항의 이행 정도를 점검하고 속도감 있는 혁신성장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국민들은 잔뜩 기대했다. 규제혁신은 말 그대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시장의 기능을 저해하는 문제를 발굴해 시대적 상황에 맞게 바꾸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최근 우리 경제는 시장기능을 확대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관치경제로 퇴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공무원 8천명 증원이다. 공무원을 줄여 시장의 역할을 강화해야 하는데, 오히려 시장에서 해야 할 일을 공무원들에게 맡기겠다는 꼴이다. 대기업 규제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최근에는 본질적이 규제의 범위에서 초월해 대기업 오너가족
최근 주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라는 정부의 제도 때문에 여러 계층에서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OECD 최장 수준인 근로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장시간 노동 관행을 개선하고 모든 근로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제도는 그간 권고에 그쳤던 과거에 비해 훨씬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시행한 네덜란드의 경우를 살펴보면, 1980년대 초 평균 청년 실업률이 13%에 이를 만큼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던 시기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 네덜란드 전역을 아우르는 노사 대협약을 추진했다. 이 협약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첫째는 노조가 기업에게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를 줄이고, 둘째 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주 40시간이었던 근무시간을 정부에서는 36시간으로 줄였으며, 시간제로 근무를 하더라도 종일 근무하는 근로자와 업무가 같다면 급여와 연차 등의 혜택을 똑같이 받도록 했다. 물론 도입 초기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수년에 걸친 제도의 보완과 국민적 합의를 통해 시간제 노동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나 선입견을 줄일 수 있었으며, 전반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남과 동시에 청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런 것을 보통 혈육을 빗대어 이야기 하는데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더니만 낙하산으로 내려온 혈육이 요직을 차지하는 경우를 빗대어 이야기 하곤 한다. 이미 결정 난 것은 관계에서가 아니라 나와 동질을 해석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나와 가깝다는 관계를 가족, 친족, 동일지역, 동일국가 사람과 같이 점점 나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넓게 설정한다. 보통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설정이지만 나와의 친밀도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웃사촌이 가족보다 낫다느니 하는 것은 친족이라는 혈육의 상황보다도 관계가 더 중요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관계는 사람을 넘어서 동물까지 미친다. 반려 동물이 많은 요즘에는 사람보다 동물을 우선순위에 두곤 하는데 개인의 취향이라고 하지만 사회적 통념이나 제도와는 다르다. 동물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동물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이 문제는 없지만, 사람과 동물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한다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위험에 빠진 모르는 사람과 자신의 반려동물이 있다면 누구를 먼저 도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먼저 구한다고 하였다고 한다. 자식처럼 키운 소라
장마는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 우리나라 남북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내리는 비를 뜻한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와서 저수지에 물을 가득 채우고 곡식에 물을 뿌려 농사에 도움을 주고 산불을 예방해 주는 귀한 손님이지만 이 장마가 올 때가 됐는데도 오지를 않고 비를 뿌리지 않는 가뭄이 들 때가 가끔 있다. 100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지독한 마른 장마가 이어져서 온 국민들이 애를 태우며 기우제를 지낸 적도 있고 농사를 망쳐서 물가가 다락같이 오른적도 많이 보아왔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제 날짜에 찾아오는 장맛비는 반갑기가 그지없다. 올해도 장마철이 된 것 같은데 비가 올까? 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수도권의 식수를 책임지고 있는 충주호의 수위는 한참 내려가 있었고 농사짓는 분들의 한숨 소리가 서서히 커지고 있던 때인지라 때맞추어 내리는 장맛비는 그야말로 한동안 못 만났던 친구가 찾아온 것보다도 더 반갑다. 본격적으로 뜨거워지는 7월의 햇빛과 자외선도 어느 정도 막아주고 기온도 떨어뜨려서 우리는 장마철을 반갑게 기다리기도 한다. 물론 너무 많은 강수량에 홍수가 나서 애를 태운 적도 많이 있었지만 가뭄이 들어서 애를 태운 것 보다는 차라리 강수량이…
커다란 경제성장을 이루거나 막대한 천연자원을 보유해 국민소득이 높은 국가에 대해 잘 사는 국가라고는 하나 고소득 국가를 곧 선진국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선진국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약속이 잘 지켜지고, 상호 신뢰가 형성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요소다.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과 국민소득에 상응하는 사회적 신뢰도가 형성되어 있을까· 외식, 항공, 호텔 업계 등에서 예약을 했지만 취소 연락 없이 예약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손님을 뜻하는 노쇼(No-Show)라고 한다. 이로 인한 피해규모가 커지면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소위 예약부도(豫約不渡)로서 약속위반이다. 각종 업계는 노쇼로 인해 큰 손해를 입고 있으며 특히 소규모로 운영되는 식당은 노쇼로 인해 가게 문을 닫게 되기도 한다. 그러자 예약을 하고 방문하지 않는 손님에게 위약금을 받는 경우가 생기고,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2월 28일부터 소비자가 예약시간 1시간 전에 예약을 취소하거나 취소하지 않고 식당에 오지 않으면 예약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안을 시행했다. 법치국가의 사회질서는 일종의 약속과 약속준수에 따른 신뢰의 구축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일상에서 도로를 횡
지난해 11월, 걱정과 설렘으로 처음 청주시 흥덕구청 주민복지과로 발령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팀장님께서 옆에 앉히시고 공직자의 자세와 조직 전반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시던 것이 어제 일만 같다. 그런데 어느새 6개월이 지나 시보가 해제되고 정식 공무원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는 것도 많아서 선배님들께 묻는 것도 많다. 하지만 흥덕구청에 근무하면서 어렴풋이 알고 있던 공무원들의 직분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됐고, 선배 공무원들이 업무에 임하는 모습에서 공무원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공무원이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항상 마음에 새기고 업무에 임하자 스스로 다짐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먼저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고 있다. 누구나 언제든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메모지만, 그 중요성과 위대함은 실생활에서 쉽게 잊힌다. 팀장님이나 팀 선배님들이 조언이나 피드백을 주실 때마다 무엇이든 항상 메모하고 있다. 단지 기계적으로 내용을 적기보다는 적용 과정이나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같이 적으면 다음 업무를 처리할 때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손으로 적으면서 머리에 기억하게 되고, 그 메모를 보며 혼자 업무를 실행해보면서 다시 한번
[충북일보] 국토교통부가 청주국제공항 내 거점 저비용항공사(LCC) 면허를 보류하면서 꺼낸 '과당경쟁 방지'의 근거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다. 더불어민주당 윤후덕(경기 파주갑) 의원이 지난 26일 국회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은 한 목소리로 국토부의 항공정책을 집중 성토했다. 이날 국토부 관계자는 이 같은 집중 성토에 대해 "현재의 진입규제는 시장에 전적으로 맡길 경우 안전문제 등 부작용 우려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심사한 다음 결정하겠다는 뜻"이라고 에둘러 해명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청주·양양 공항 기반 LCC 면허 승인을 보류시켰다. 이때 국토부가 내세운 논리는 '과당경쟁 방지' 였다. 기존 사업자들 간 출혈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항공사가 설립될 경우 더욱 심각한 출혈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해석한 셈이다. 토론자들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과당경쟁 우려가 있다면 모든 신규사업자를 봉쇄할 수 있는 것이냐는 주장이 나왔다. 거점 항공사를 보유하지 못하다면 지방공항을 유지할 명분이 없어진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심지어 항공 산업은 어항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망망대해(茫茫大海)의 바다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가
며칠만 지나면 청주시 서원구청 건설교통과 교통지도팀장으로 근무한 지 어느덧 1년이 된다. 엊그제 발령받은 느낌이 나는데 참 시간이 빨리 흐른 것 같다. 내 주 업무는 주정차 지도단속, 방치 차량 처분 업무이다. 출근해 온종일 민원인과 사투 아닌 사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입씨름할 때도 많다. 하지만 우리 팀 직원들에 비하면 훨씬 적다. 그들에 비하면 저는 적은 편이어서 힘들다는 말을 못 한다. 하루 중 주로 민원 콜센터에서 전화 오는 사례를 보면 도로 및 주차장, 아파트 입구 등에 한 주차로 민원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 이사를 해야 하는데 앞에 주차돼 있어 차를 옮겨야 하는 경우, 남의 집 앞에 오래 주차하는 행위 등 사정도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제발 부탁드리고 싶다. 남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된다. 차 앞에 안내 전화번호를 기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데 이것도 시정돼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17년 12월 제천 화재사고, 2018년 1월 밀양 화재 사고 등 연이어 화재사고가 발생해 엄청난 충격 속에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이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기 위해서는 소방차 진입로 주변 불법 주
한때 최고의 대중소설 작가였던 최인호 선생이 지난 2013년 안타깝게 타계했지요. 그와는 2007년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 취푸(曲阜)에 함께 여행을 다녀온 인연이 있었죠. 근거리에서 접해본 그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면서 자유분방한 사고를 지녔더군요. 그의 작품 '바보들의 행진', '고래 사냥' 등은 영화로 만들어져 한 시대의 젊은 영혼을 휘어잡았지요. 대학가를 중심으로 유신체제로 인해 경직된 사회상과 젊은이들의 방황과 우울함을 그린 '별들의 고향'은 1970년대 청년영화의 대표작이기도 했습니다. 곡부의 한 음식점에서 늦은 밤, 최인호 작가와 지역 특산주인 공부가주를 함께 나누며 담소를 나눴지요. 그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물었더니 그는 '길 없는 길'이라고 즉시 답하더군요. 그 이유를 묻자 "그 작품에 삶의 모든 것을 담았지."라고 쿠바산(産) 시가를 물며 담배연기를 허공에 무심하게 뿜어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길 없는 길'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승 경허 스님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것이죠. 제목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길 없는 길이라니요. '길이 있지만 보이지 않고, 길은 보이지 않으나 길은 있다.'라는 의미가 마음에 들어옵니다. 결국 보이
[충북일보] 산과 들이 펼쳐진 청주 낭성면 추정리에 마당 가득 항아리가 늘어서 있다. 천여 개의 크고 작은 항아리 근처에는 구수하게 익어가는 장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정겨운 풍경이 벌써 맛있는 기억을 되살린다. 전순자 대표의 옥샘정은 1995년 청주 금천동에서 선식 가게로 출발했다. 곡물가루 등을 취급하며 메주와 고춧가루에도 관심을 가졌다. 알음알음으로 주문하는 가정에서 원하는 대로 장을 담가준 것이 옥샘정의 시작이다. 더 맵게, 혹은 달지 않게, 각자의 입맛에 맞춰 장을 담가 주며 입소문이 났다. 몇 번의 이전 끝에 2012년 지금의 추정리에 완전히 정착했다. 서늘한 기온과 맑고 풍부한 물이 장 담그기에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씨간장으로 숙성하는 옥샘정의 간장은 진하고 깊다. 온전한 콩이 한 알도 들어가지 않은 시판 간장과는 색부터 향까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십여 가지가 넘는 첨가물이 재료로 쓰인 시판 간장과 달리 옥샘정의 원재료는 국산 콩, 국산 천일염, 정제수로 간결하다. 작은 항아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뚜껑마다 날짜와 이름이 쓰여있다. 매년 초 이곳에 찾아와 담그는 손님들의 장이다. 햇볕과 바람 등 숙성을 위한 관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청주에서 자궁출혈 증상이 있는 임신 15주차 임신부가 병원을 전전하다 신고 접수 2시간 만에 수술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3일 충북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오전 5시께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서 "임신 15주차 산모인데 복통이 심하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119 구급대는 임신부가 하혈과 함께 복통을 심하게 호소하는 등 위급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구급대는산모를 흥덕구의 한 산부인과로 이송했으나, 응급 수술이 필요하단 이유로 상급병원 이송을 권유했다. 구급대는 청주권 주요 병원 6곳의 수용 가능 여부를 알아봤지만,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다며 이송을 모두 거절했다. 소방당국은 충북 권역까지 넓혀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수소문 했다. 이후 진천의 한 병원에서 산모를 수용할 수 있단 답변을 받았고 119 신고 접수 2시간 만인 오전 7시 10분께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당시 산모는 자궁출혈이 심해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매우 긴급한 상황이었다"며 "안타깝게도 태아는 사망했다"고 말했다. 현재 산모는 수술을 받은 뒤 안정을 되찾았다. /
[충북일보] 오곡이 풍성한 추석이 다가왔다. 누구나 풍요로울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손을 잡아야 주어야 할 이웃이 많다. 이런 이웃을 위해 추석 연휴에도 나눔과 봉사를 말없이 실천해 온 '키다리아저씨'가 있다. 30여년간 일상의 나눔을 이어오고 있는 최종길(48) LG에너지솔루션 오창2 업무지원팀 책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중학생때인 15세부터 일찌감치 나눔의 의미를 알고 몸소 봉사를 실천해오고 있다. 최 책임은 "당시 롤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보육원에서 체험활동을 온 5살짜리 아이를 케어했던 적이 있다. 스케이트를 가르쳐주고, 쉬는 시간에 품에 안겨 잠든 모습을 보며 아이의 인생을 바라보게 됐다"며 "당시에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옷을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5살 아이와의 만남 이후 그의 시선은 달라졌다고 한다. 성인이 돼 원료 공장에 입사했던 그는 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단순히 돈만 후원하는 것이 아닌 직접 찾아가 아이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할머니와 손주 두 명이 사는 조손가정이었다. 당시 할머님을 설득해 아이들과 하루종일 놀이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