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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11.19 14:10:43
  • 최종수정2023.11.19 14:10:43

김정범

시인

기온이 급작스레 떨어졌다. 베란다의 화분을 실내로 옮기다가 깨진 화분 모서리에 오른 검지를 베었다.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자신을 나무라며 밴드를 손가락에 감는다. 나머지 손가락으로 무거운 화분을 옮기려니 불편하다. 우리 몸의 기관은 어찌 이리 예민한가. 며칠 전 받은 시집 속에서 꿈틀거리는 시어의 촘촘한 신경망처럼.

왼손이 가만히 오른손을 만져본다 이 손 이렇게 싸늘한 적이 있었나 의자에서 떨어지는 육중한 몸을 지키려 먼저 땅을 짚고 부러진 손 지금은 아픔조차 가늠할 줄 모르는 마취된 오른손의 냉기를 가만히 더듬는다 많이 아픈가보다

온종일 물젖은 노동으로 살면서도 늦은 밤 후미진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누구보다 먼저 어둠을 더듬어 두려움을 거둬내던 손, 오늘 마취가 덜 깬 오른손을 더듬으며 생각해 보니 이 싸늘한 손 한시도 편히 쉬어본 날이 없네 울컥해진 왼손이 미안했던 기억을 되착이며 자꾸만 뭐라 뭐라 웅얼거리네

─ 김예태, 「왼손이 사랑을 알았네」 전문 (시집 곡선에 관한 명상, 월간문학 출판부 2023)

시는 두 손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삶과 상처, 그로 인한 미세한 감성을 다룬다. 시에는 세 개의 오브제가 나온다. 부러진 오른손과 그걸 어루만지는 왼손 그리고 영혼과 육체를 연주하는 기관인 머리이며 관찰자인 화자다. '마취된 오른손의 냉기'는 부스러진 한 편의 자아를 나타낸다. 왼손은 싸늘한 오른손을 만지며 위무와 사랑을 보낸다. '물젖은 노동으로 살면서도' '누구보다 먼저 어둠을 더듬어 두려움을 거둬내던 손'은 주어진 육신의 삶을 위해 '노동'하며 고통을 향해 기꺼이 몸을 던지는 자신의 일부다. '울컥해진 왼손이 미안했던 기억을 되착이'는 모습은 화자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아린 아픔과 부담을 안고 산다는 걸 암시한다. 시 속의 손은 여러 의미를 담는다. 물리적인 움직임뿐만 아니라 삶을 통해 겪는 고난과 인내, 희생을 표현한다. 화자는 오른손의 상태를 통해 내면의 감정과 경험, 고통과 극복의 마음을 전한다. 오른손은 삶을 위해 행한 모든 기억을 담고 있는 그릇이며 사회적으로는 타자의 삶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초월적 자아'의 모습으로 비친다. 우리 시대의 왼손은 누구이며 오른손은 누구일까. 보이지 않는 어둠을 거두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이는 어떤 이일까.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의 육신과 영혼은 늘 부스러지고 깨지고 변이한다. 그 복잡한 의식과 영혼의 구조에서 사랑은 접착제와 같다. 자연과 인간, 사회체계를 잇는 일은 작은 것을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한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깨달아야 타인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시인은 몸의 일부인 손을 통해 인식과 실제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에 대하여 또한 사랑의 방법과 실천에 대하여 아름다운 결론을 끌어낸다. 우리의 손이 아픔과 사랑을 반사하기를 그리하여 타자의 고통을 내 것으로 인식하기를 시인은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사랑이 점차 시들어 가는 시대, 얼음 같은 계절. 고통의 분담과 사랑의 나눔은 누군가의 온기 잃은 손을 데우지 않을까. 욱신거리는 오른손 위에 왼손을 얹는다. 두 손이 따듯해진다. 이웃의 냉기가 걱정되는 밤, 시인이 빚은 두 손의 사랑이 물결로 번져 하얗게 언 창을 두드리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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