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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

시인

군부 퇴진 시위 현장, 한 수녀가 경찰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수녀는 눈물을 흘리며 방패와 총을 든 경찰들에게 애원한다. "제발 쏘지 마세요. 원한다면 나를 쏘세요. 항의 시위대는 무기가 없어요. 그저 평화적으로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표현할 뿐이에요" 그녀의 처연한 눈빛에 경찰들도 미동 없이 멈춰 있다. 뉴스에 올라온 미얀마의 안 로사 누 타웅 수녀에 관한 사진과 기사 내용이다.

나는 숨이 멎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무수한 영상이 머리를 스쳐 간다. 군인들이 곤봉을 휘두르던 광주의 장면과 중국 천안문 민주화 항쟁 시, 탱크를 온몸으로 막으며 군인들의 양민학살을 저지하려 했던 청년의 모습이 하나로 겹친다. 세계는 왜 이리 변하지 않는 것일까. 무력을 가진 이의 욕망은 왜 이리 한 치도 다르지 않은 것일까. 도대체 권력욕은 무엇이고, 시민들을 향한 폭압은 언제 끝나는 것일까. 희생이 커질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떨리는 마음으로 김현승 시인의 시집을 꺼낸다. 예언과도 같은, 본질을 꿰뚫는 성찰의 힘에 전율하며 시를 소리 내 읽는다. 시는 견고한 빛을 비추며 마음의 한 자락에 스며든다.

빼지 않은 칼은 빼어 든 칼보다 더 날카로운 법

빼어 든 칼은 원수를 두려워하지만

빼지 않은 칼은 원수보다 강한 저를 더 두려워한다.

빼어 든 칼은 이 어두운 밤 이슬에 이윽고 녹슬고 말지만

빼어 들지 않은 칼은 저를 지킨다.

이 어둠의 눈물이 소금이 되어 우리의 뺨에서 마를 때까지......

―무기의 의미 Ⅰ전문

그리하여 가장 날카로운 칼은 꽃잎 앞에도 무릎을 꿇고,

그 꽃잎은 그 칼을 쥔 손목에 입을 맞춘다.

그리하여 칼집 속에 칼을 잠들게 하고서

우리는 승리를 얻는다.

―무기의 의미 Ⅱ 3, 4연

시인은 알고 있다. 빼어 든 칼보다, 빼지 않은 칼이 더욱 강하다는 것을. 빼지 않은 칼은 인간이 지켜야 할 신념과 사랑 그리고 자유와 평화 같은 순수한 가치이다. 그것은 죽음보다도 강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우리가 죽은 후에도 영원히 세상에 존재하며 우리의 인간 됨을 지킨다. '어둠의 눈물이 소금이 되어 우리의 뺨에서 마를 때까지' 인간을 지탱하는 힘인 것이다. 빼어 든 칼, 즉 정의롭지 못한 무력은 결국 '어두운 밤이슬에 녹슬고 말' 것이고, 아무리 날카로운 칼일지라도 '꽃잎'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꽃잎으로 명명된 순수한 진리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긍정적이고 좋은 것이다. 그 생명력이 인간의 삶을 발전시켜왔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시인은 ' 칼집 속에 칼은 잠들고' 결국 '우리는 승리한다.'라고 노래한다.

경찰의 총칼 앞에 무릎 꾼 수녀는 한 송이의 '꽃잎'이었다. 그 꽃은 슬퍼 보였지만 어떤 모습보다 빛나는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본 꽃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꽃, 절대 지지 않는 꽃. 저 꽃뿐이겠는가. 세상에는 무수한 꽃이 있다. 억압의 칼이 세상의 꽃을 모두 자르고 잠재우지는 못한다. 빗소리가 들리면 무수한 꽃이 곳곳에서 불처럼 피어나리라.

시인이 세상을 떠난 건 1975년의 일이다. 그 이후로도 현대사에 많은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현재에도 수많은 양민이 전쟁과 정권의 폭압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다. 미얀마 사태도 아직 진행 중이다. 여러 나라에서 일하면서 나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같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다. 대부분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며 타인과 교감하기를 원한다. 지금은 어떠한 형태든 세계인들이 미얀마인들에게 도움을 줘야 할 시기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기도라도 해야 한다. 칼의 무력이 자유로운 꽃의 가치를 훼손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미얀마의 평화를 기원한다. 그들의 얼굴에 마른 소금이 사라지고 밝은 빛이 깃들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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