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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

시인

태풍이 비를 뿌리고 지나갔다. 하늘이 맑다. 태양의 빛이 보석처럼 떨어져 베란다에 놓인 식물의 잎사귀에 쌓인다. 인도고무나무의 연둣빛 잎새가 초록으로 깊어진다. 베란다에 가득한 햇빛, 엽록소를 태워 새로운 색을 창조하는 무한 에너지. 빛의 변화에 따른 생물의 반응은 놀랍다. 가을 태양이 신비로운 빛을 내뿜으며 만물의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다.

떨어져 내린 빛은

숲에서

난반사의 새로 흩어져 날고

물에 닿으면 물새가 되어

숲으로 간다.

그대 몸 모든 구석에서

그대 눈빛을 검게 밀고 나오는

저 물소리,

떨어져 내린 빛은

우리 몸에 와서

흐르는 반야(般若)로 떠돈다.

오규원, '떨어져 내린 빛은-순례9' 전문

흔들리는 만물에 떨어진 빛은 시인의 심상 속에서 '새'로 보인다. 잎사귀 하나하나, 출렁이는 물빛이 모두 날개를 달았다. 시 속에서 빛은 무생물과 생물의 경계를 나누지 않는다. 우리 몸에 닿은 빛은 물소리를 내며 흐르고 우리가 크나큰 우주 속에 고귀하게 살아 움직이는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인간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 불, 공기, 흙 같은 우주 원소의 합일체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배경에는 인간만이 '사유'한다는 오만과 독선이 숨어있다. 자연의 숨소리를 듣고 그 생명을 감지하는 건 생태의 아름다움 안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우주의 지혜를 체득하며 순례의 길을 걷는 일이다.

환한 가을빛 때문일까. 문득 '태양은 가득히'라는 알랭드롱 주연의 영화가 떠오른다. 가난한 주인공 '톰 리플리'는 부자 친구를 요트 안에서 살해하고 포대기에 묶어 바다로 던진다. 연습을 통해 친구의 서명까지 위조하는 데 성공한 리플리는 죽은 친구 행세를 하며 그의 돈을 찾아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친구의 연인까지 가로채지만 결국 꼬리가 잡힌다. 요트의 스크루에 말려 있던 시체가 올라온 것이다. 흔히 어떤 존재가 되길 원해서 그 사람의 흉내를 내는 병을 '리플리증후군'이라고 부르는데 실제 의학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라고 한다. 영화의 주인공 리플리는 환자가 아니라 '허상의 부와 욕망'을 쫓아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 불과하다. 간혹 사람은 죄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자신을 잃는다. 죄는 그릇된 욕망에서 비롯된다. 부유한 아버지의 돈으로 방탕한 삶을 사는 한 젊은이와 그런 삶을 동경하는 가난한 젊은이. 결국, 교차하는 두 사람의 욕망은 그들의 삶을 바꾼다. 그 끝은 죽음과 파멸이다. 영화는 아름다운 해변과 섬, 홀로 잔잔한 바다 위에 떠있는 요트와 파라솔을 비추며 끝난다. 60년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그리는 '신분의 격차'에 따른 두 젊은이의 왜곡된 모습은 현대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재조명한다.

하지만 '눈부시게 부서지는 지중해의 태양'은 '부와 행복의 소유'를 상징하지 않는다. 빛의 소유자는 없기 때문이다. 빛은 우주가 만물에 주는 선물이므로 누구든 자유롭게 누릴 수 있다. 무형의 바람, 색이 바뀌어 떨어지는 잎새, 그리고 계절에 따라 다른 색감으로 공간을 채우는 빛은 돈으로 값어치를 따질 수 없다. 그 가치는 무한하며 영원한 것이다.

신비로운 가을빛이 내린다. 잠시 들녘으로 산으로 강으로 혹은 바다로 나가 보라. 떨어지는 한 줄 빛이 진실한 생명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리라. 우리가 부유하든 가난하든 빛은 공평하게 우리를 비춘다. 그 고요한 손에 내 몸을 맡기면 또 다른 세계가 마음 안에서 빛을 내리라. 진정한 빛은 인식의 내부에 존재한다. 원하기만 한다면 누구든 그 빛에 닿을 수 있다. 가을빛에 빛나는 새무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파란 하늘을 날아간다. 아름다운 계절의 문이 활짝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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