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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

시인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 소식은 밝지 않다. 얼마 전 무너진 아파트가 부끄럽고 초라한 뼈를 드러낸다. 가족을 찾는 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프게 울린다. 대선을 앞둔 매체들의 보도는 온통 네거티브로 도배를 하고 있고,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모르는 채 시간은 흘러간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피해는 어떠한가. 어떤 이는 백신 부작용으로, 다른 이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세사의 어두움을 바라보면 무질서와 혼돈 안에서 헤매는 양 어지럽다. 이럴수록 작은 일에서나마 밝은 기쁨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오후의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산책하러 공원으로 나섰다. 날씨는 조금 쌀쌀하지만, 볕이 따스해서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녹지 않은 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1월이 반쯤 비낀 오후

산길에 햇빛 한 줌 풀어 놓는다

햇빛이

내 콧등에 걸리고

밤나무 가지에 아카시나무 가지 끝에

매달리고 겹치고 엇갈리며 그려낸

모자이크 무늬 따라 옮겨 다닌다

움직이는 무늬가 스커트에 감긴다

가느다란 기하학적 줄무늬로 어른댄다

한 줌 햇빛과 함께 산길을 돌아다니며

겨울나무의 숨소리 따라

겨울 산이 풀어지는 소리를 만난다

빗금과 평행선을 자르고 지나가는

눈부신 푸른 길

내 몸 여기저기 살이 오르고 길이 뚫려

몸 속으로 물 흐르는 소리

투명한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

온몸에 새순 뾰족하게

물무늬 찍힌다

한 줌 햇빛을 밟으며 햇빛 속으로 간다

―'햇빛은 큐비즘이다' 전문, 이솔



나뭇가지를 빠져나온 겨울 햇빛이 어쩌면 이리도 발랄하고 생동감이 있을까. 시의 장면은 청춘 영화 속의 한 컷처럼 신선하다. 화자와 함께 걷는 햇빛의 움직임은 역동적인 이미지를 그린다. 몸에 쏟아지는 기하학적 무늬를 느끼며 화자는 '겨울 산이 풀어지는 소리'와 '눈부신 푸른 길'을 만나고 몸 안에서 새롭게 열리는 자신의 길과 생명의 흐름을 느낀다. 겨울의 차가움과 태양 빛의 따뜻함, 그 속을 걷는 화자의 발자국에서 무한하고 경쾌한 자연의 파동과 생명의 소리가 들린다. 대상의 모습에 따라 변하는 햇빛의 동선을 시인은 '햇빛의 큐비즘'으로 명명한다. 시시각각 양태를 바꾸는 변화무쌍한 빛의 잔치, 이보다 맑은 수채화가 있을까.

큐비즘(Cubism, 입체주의)은 20세기 초에 시작된 서양미술 사조의 한 갈래이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가 있다. 미술사가들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현대미술의 시발점으로 평가한다. 피카소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회화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작품들은 한 사람의 눈에 비친 사실적인 그림이었으나 이 작품은 여러 방향에서 본 입체적인 모습을 평면에 표현했다. 놀랍게도 이 거장에게 영향을 준 건 아프리카, 호주의 원시 예술 조각품과 가면이 뿜어내는 신비롭고 마술적인 힘이었다.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원시 예술을 보며 그는 자연적인 조형이 빚어낸 새로운 언어를 느꼈다. 위대한 예술의 창조는 자연에서 얻은 훌륭한 모방에서 비롯된다.

공원 벤치에 아이들 몇몇이 앉아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툼한 겨울 외투로 떨어지는 햇빛이 푸르다. 우울한 마음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호주머니에 햇빛 몇 줌을 담는다. 모든 문제에는 해답이 있을 것이다. 그 문제를 입체적으로 바라보아야 정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긍정의 마음을 햇빛에 태워 날린다. 나뭇가지 사이를 빠져나온 빛이 숲에 출렁이는 파도를 그리고 있다. 겨울나무가 하늘을 향해 긴 손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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